[만남] 권오남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세계적인 수학교육 연구자
수학선생님들의 선생님
정부 R&D 예산 삭감
투자감소, 경재력 약화 우려돼
여성 과학기술 인재들
혁신적인 아이디어 기대
권오남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권 회장은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0년간 재직한 경험이 있다. 그는 아시아 최초로 스벤드 페데르센 교육상을 받았으며, 국제 수학교육 분야의 탑 티어 저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수학교육 연구자이다. 동시에 대한민국 수학교육 개선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수학교육 리더이기도 하다. 국내 1세대 수학교육학자로서, 1990년대 말부터 탐구 중심의 수학 교수법을 주장하며 변화를 이끌고 있다. 국내 수학교육연구자 최초로, 세계적인 학술대회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한국 수학교육학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는 2025년 서울에서 개최될 제9차 동아시아수학교육대회의 조직위원장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한국수학교육학회 회장,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2009년에는 서울대학교 교육상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11일 취임한 권오남 회장을 만나보았다.
-여성과총 신임 회장 취임 소감은요.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의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여성과총은 생명과학, 환경, 에너지, 건설, 정보기술, 의학 등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를 아우르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주요 연합회입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큰 영광이지만, 부담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여성과총을 이끌어 오신 전임 회장님들께서는 리더십과 헌신으로 이 조직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제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여성과총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 중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성과총 회장으로서 앞으로 계획은.
“여성과총은 지난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여성과학기술인이 주도하는 과학기술 혁신, 사회적 포용, 함께 성장하는 미래’라는 2030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올해는 이 비전을 실행에 옮기는 첫해가 될 것입니다. 과학기술계에서 여성의 진출을 확대하고 그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과학기술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포용적인 문화를 확산시키고, 다양성과 평등을 존중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양성은 과학기술 혁신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임기 동안에는 국내외 유관 기관과 협력으로 외연을 확장하고자 합니다. 한국여성변호사협회, 한국여성기자협회,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등과 같은 여성 단체와 연대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또한, 2022년에 시작된 여성과총-EU 프로젝트를 확대해 국제적 협력도 더욱 강화하려고 합니다.”
-과학기술 분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는.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기초과학과 수학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과학기술 혁신의 기반은 튼튼한 기초과학 이해와 수학적 사고력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기초과학과 수학의 기본 원리를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필수적입니다. 지속 가능하고 윤리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강조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은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도구이자, 그 영향력과 책임이 큰 분야입니다. 실패를 용인하고 학습의 기회로 삼는 문화의 조성이 중요합니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연구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연구 결과와 데이터의 공유는 지식의 확산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생성에 기여합니다.”
-수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수학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자연 현상을 간결한 수학적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 매력에서 비롯되었어요. 아마 중학교 3학년 이차함수의 활용 단원을 배울때였던 것 같습니다. 단 몇 개의 변수를 사용해 복잡한 자연의 법칙을 명쾌하게 드러내는 수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수학이 단순한 계산을 넘어서 우리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강력한 언어임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됐어요.”
-성차별 같은 불공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수학적 공식으로 성차별과 불공정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불공정은 단순히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양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수학, 특히 통계학과 확률론은 불공정 현상을 간접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성별이나 인종에 따른 임금 격차, 고용 기회, 교육 접근성 등을 수치로 나타내,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있는지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학적 도구들은 불공정한 사회적 구조나 패턴을 드러내고, 정책 결정이나 공정성 증진에 기여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교수로서 가장 보람찰 때, 힘들 때는.
“가장 보람찬 순간은 학생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 성장해 나가는 것을 목격할 때입니다. 학생들이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고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흐뭇합니다. 졸업 후 사회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성공하는 졸업생들의 모습을 보며 큰 기쁨을 느낍니다. 올해 초 제 권유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 졸업생이 국내 최고의 사립대학 조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과 함께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 소식은 올해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은 학생이 학업이나 개인적인 문제로 고통받을 때입니다. 학생들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그들이 가진 능력을 실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 아픈 경험입니다. 의과대학 진학을 위해 자퇴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수학 교사나 수학자가 되고자 했던 학생들이 사회적 환경의 영향으로 진로를 변경하는 것을 목격할 때는 감정이 복잡해집니다.”
-정부에서 알앤디(R&D)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은 여러 측면에서 우려를 낳는 상황입니다. R&D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혁신 능력과 경제 성장에 중요한 기여를 합니다. 예산 삭감은 과학기술 발전 속도가 저하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R&D 예산의 감소는 젊은 연구자와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 예산 감소는 연구 기회를 제한하고, 경력 발전에 장애가 되며, 인재 유출을 가속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 연구자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R&D 예산 삭감은 특정 연구 분야, 특히 여성이 주도하거나 여성 관련 연구 주제에 대한 투자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부와 연구 기관이 구체적인 조치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학 등 순수학문이 외면받기도 하는데요.
“많은 사람이 순수 수학을 이론적이며 실용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수학이 어떻게 일상생활, 과학, 기술, 심지어 예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수 수학의 매력 중 하나는 그 아름다움과 창의적인 측면에 있습니다. 수학적 아이디어와 개념이 갖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강조함으로써 수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영화, 텔레비전, 소셜 미디어 등 다양한 대중 매체를 활용해 수학의 재미와 중요성을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무엇보다도, 교육 방법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정답만을 맞추는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도 시급합니다.”
-여성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여성 과학기술인의 인재 육성은 단순히 여성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 과학기술계의 발전과 혁신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성 과학기술 인재의 양성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문제 해결과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고, 자기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 과학기술인을 위한 교육, 연구 프로그램의 확대, 멘토링과 네트워킹 기회 제공,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과 성과를 홍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과학기술계 여성 후배에게 한 말씀.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이며 수학자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우리의 지적 힘은 무한한 것이며, 우리가 꿈꾸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이루어낼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러분이 여성으로서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 인정해 드리고 싶습니다. 여성의 열정, 창의력은 과학기술계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며, 새로운 발견과 혁신의 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자기 능력을 믿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지속적인 학습과 성장에 힘쓰세요. 멘토와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구축하세요. 선배들과 동료들과의 관계는 경력 발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세요. 여러분의 성공이 다른 여성에게 영감을 준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