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앞에 나선 피해자 A씨의 목소리
가해자 “페미는 맞아야 한다”며 무차별 폭행
검사 “여중·여고 다니면 페미니즘 배우냐”
이어지는 2차 가해에 피해 회복 어려워

범행 당시 편의점 내부 폐쇄회로(CC)TV 화면 캡쳐 ⓒ연합뉴스
범행 당시 편의점 내부 폐쇄회로(CC)TV 화면 캡쳐 ⓒ연합뉴스

“검찰에서 피해자 진술을 마무리할 때쯤 검사님이 제게 ‘여중·여고에 다니면 페미니즘 그런 거 당연히 배우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가르치든 말든 사건의 진술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편의점 숏컷 폭행 피해자 A씨)

‘편의점 숏컷 폭행’ 피해자가 공개된 자리에서 목소리를 냈다. 담담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와 잦은 침묵은 현재까지도 충격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했다.

피해자 A씨는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여성의당 주최 여성 테러범죄 좌담회에 참석해 “모든 범죄 사건의 해결 과정에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피해자의 안녕과 회복을 위해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 “페미는 맞아야 한다”며 폭행 정당화

‘편의점 숏컷 폭행’ 사건은 지난해 11월 4일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20대 남성이 ‘머리 짧은 너는 페미니스트니 맞아야 한다’며 여성 점원 A씨를 폭행한 사건이다.

피해자 A씨에 따르면, 가해자는 “나는 여성을 절대 때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고 A씨에 말하며 폭행을 정당화했다.

A씨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해본 적도 없다”고 말해도 가해자는 “내가 페미니스트를 못 알아볼 리 없다”고 막무가내였다.

가해자는 폭행 중 경찰에 신고하려는 A씨의 휴대전화를 뺏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딸을 기다리던 50대 남성이 상황을 목격하고 폭행을 말리자 가해자는 이 남성을 플라스틱 의자로 내려치고 목과 귀를 물어뜯었다.

가해자는 남성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기절시키기도 했으며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체포돼 특수상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 ⓒ연합뉴스
검찰 ⓒ연합뉴스

“피해자 진술 듣던 검사가 ‘여중·여고 다니면 페미니즘 배우냐’고 묻더라”

A씨는 사건을 겪고 난 후 회복 과정에서 ‘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를 향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A씨에 따르면, 검찰에서 피해자 진술을 받을 당시 A씨는 학력을 묻는 검사의 질문에 ‘여중·여고를 다녔다’고 답했다. 그러자 검사는 “여중·여고에 다니면 페미니즘 이런 거 당연히 배우나요?”고 A씨에 되물었다.

A씨는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가르치든 말든 사건의 진술과 무슨 상관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제가 다닐 땐 아니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편, 보도 직후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은 "피의자는 A씨가 '한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자신을 도발했다고 주장했고, A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며 "피해자 진술이 맞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에서 물어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치료 과정에서 수많은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은 A씨는 어렵사리 한 방송사와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A씨는 돌이킬수록 생생해지는 기억에 공황 증상을 느끼며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방송국 기자들은 촬영이 끝나자 A씨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라’는 말만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

그는 “공황 증상을 겪고 있는데 잠시 상황을 지켜봐주거나 바로 앞 병원까지의 동행 여부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며 “피해자를 위해 촬영하겠다는 사람들이 저는 안중에도 없이 득과 실만을 따지는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숏컷 여성 폭행사건 대응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성북구 성신여자대학교 잔디밭에서 ‘숏컷 여성폭행사건 엄벌촉구 집회’를 열고 “정부는 혐오범죄 방관말고 여성 생존권 보장하라”고 외쳤다. ⓒ여성신문
숏컷 여성 폭행사건 대응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성북구 성신여자대학교 잔디밭에서 ‘숏컷 여성폭행사건 엄벌촉구 집회’를 열고 “정부는 혐오범죄 방관말고 여성 생존권 보장하라”고 외쳤다. ⓒ여성신문

키우는 고양이에 “앞으로 내가 너랑 살 수 있을까”…무력감·죄책감 느껴

A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끼며 피해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나는 단지 머리가 짧았을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극단적인 폭력에 노출됐다”며 “일상의 회복을 위해 자꾸만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또한 “폭행을 막으려 나선 중년 남성이 나 때문에 다쳤다는 죄책감, 어르신은 나를 지켜주었는데 나는 당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무척 고통스럽다”고 했다.

진료와 진술을 위한 외출 자체만으로도 우울감, 불안증, 사지불안증 등의 증상을 느끼고 있는 A씨는 함께 사는 고양이에게 “이런 삶이 반복되면 계속 너랑 함께할 수 있을까”라며 고통을 털어놓기도 했다.

A씨는 현재 검찰의 병원비·생활비 산정과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의 피해지원 등의 지원을 받으며 피해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금전적 지원은 대개 두세 달에 그쳐 기간 안에 빨리 회복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되려 피해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 안녕과 회복에 성별 따로 없어

‘편의점 숏컷 폭행’ 사건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오는 3월 2차 공판이 열린다. A씨와 지원단체는 법원에 제출하기 위한 온라인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 5일 기준 1만3000여명이 탄원서를 작성했다.

A씨는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 “잘 맞았다”, “여자들은 무조건 페미 편을 들 것이다” 등 현재까지도 온라인 상에서 이어지는 2차 가해에 “왜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계속 설명을 해야 하나. 이 사건이 젠더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게 속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겨우 첫 공판이 열렸고 이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갈 길이 멀다. 피해자가 언제까지나 피해자로만 남지 않도록 안녕과 회복을 위해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 일에는 남성과 여성이 따로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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