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100만원 선고유예 확정
대법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 자체는 공적 관심 사안 아냐"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박상혁 기자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박상혁 기자

양육비 안 주는 ‘나쁜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현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운영자에 대한 명예훼손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번 판결로 추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 또한 유죄로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본창(61)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를 내린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배드파더스의 활동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라는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며 공익적 측면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하더라도,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 자체가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유죄 확정 이유를 설명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얼굴, 이름, 거주지, 직장명 등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양육비 지급을 촉구해온 사이트다.

양육비이행명령 등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법원의 서류를 확인한 뒤, 미지급자에게 연락해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고, 그래도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온라인에 신상을 공개하는 식이다.

구씨에 따르면 이 같은 방식으로 신상공개된 ‘나쁜 부모’는 현재까지 수천 명에 달하고 양육비를 지급해 신상 공개를 중단한 사건은 1000여건에 이른다.

수원지방법원 앞 양육비 제도 개선 촉구.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수원지방법원 앞 양육비 제도 개선 촉구.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배드파더스에 의해 신상이 공개된 미지급자 중 5명이 구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검찰은 2018년 9~10월 구씨를 기소했다.

2020년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배심원 7명은 “피고인의 활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무죄로 평결했으며, 재판부 또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021년 2심 법원은 신상공개의 공공성을 인정하면서도 “사적인 제재가 제한 없이 허용되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구씨는 이번 재판을 포함해 현재까지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총 29건의 고소를 당했다.

대법원 선고 후 구씨는 기자들과 만나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한 것이 아니라 양육비 지급을 촉구했을 뿐”이라며 “향후 사이트 운영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결정한 바 없다”고 밝혔다.

지난 9월 26일 11년에 걸쳐 4000여만원의 양육비를 주지 않고 잠적한 아이 친부의 신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이모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모씨 제공
지난 9월 26일 11년에 걸쳐 4000여만원의 양육비를 주지 않고 잠적한 아이 친부의 신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이모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모씨 제공

대법원은 구씨에게 전남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신상공개 인터넷 주소를 게시한 A씨에 대해서도 벌금 70만 원을 선고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번 판결로 양육자들이 1인 시위 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한 경우 유죄를 선고하는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는 사건에 따라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리거나,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하는 등 각각 다른 판단이 나왔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2021년부터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근거로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폐쇄했으나, 여가부 명단에 채무자 사진이 없고 구체적인 직장명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사이트를 개설하고 신상공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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