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역량·다양성 인정받는
새해를 기대한다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 1508~11), 로마, 바티칸 미술관 소장.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 1508~11), 로마, 바티칸 미술관 소장.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는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등장한다. 그림 중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피타고라스 등 철학, 문학, 수학 등 거의 모든 대학자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남성이지만 여성들도 눈에 띈다. 몇 안 되는 여성들 중,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Hypatia)가 그림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에서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속 여성 최초 수학자 히파티아(Hypatia).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속 여성 최초 수학자 히파티아(Hypatia).

4세기 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히파티아는 당시 많은 학자들이 통합적 지식을 섭렵했던 것처럼 수학뿐 아니라 천문학, 철학에도 높은 식견을 지녔다. 그의 지식, 학자로서의 재능과 왕성한 지적 욕구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세계에서 당당히 인정받았다.

히파티아의 지성을 키운 것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던 아버지 테온이었다. 히파티아가 편협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냉철하고 이성적·논리적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종교적으로도 중립성을 지키도록 교육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거의 없었던 시기에도 히파티아는 지적 능력을 학문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젠더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종교는 히파티아를 치명적으로 차별했다. 종교적 편협성을 갖지 않고 객관적이고 냉철한 사유로 지식체계를 넓혀온 그를 광신 기독교인들은 이단자이자 마귀 같은 존재로 여겼다. 정치적인 음모였다는 해석도 있지만, 광신 기독교인들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히파티아의 수많은 업적은 불태워졌고 그는 너무나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아테네 학당 그림 속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이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느라 바쁘지만, 히파티아는 홀로 그림 밖 관중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지적인 냉정함이 지나쳐 다소 냉소적이기도 한 표정을 한 그의 얼굴엔 그 어떠한 억압에도 자신의 진리와 학문적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결의가 들어 있다. 그 죽음을 초월하는 용맹성은 거의 1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많은 여성들과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감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환경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새해에는 모든 이들이 그림 속 히파티아와 같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은주 사회학자·작가 ⓒ이은주씨 제공
이은주 사회학자·작가 ⓒ이은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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