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에 빠져 음악 유학까지
올해 ‘레미제라블’ 에포닌 역으로 데뷔
“한국 배우들 인상적...여성이 돋보이는 작품도 많아
누군가에게 꿈과 위로가 되고파”

뮤지컬 배우 루미나. ⓒ포킥스 엔터테인트먼트 제공
뮤지컬 배우 루미나. ⓒ포킥스 엔터테인트먼트 제공

1년 전 이맘때 서울대 성악과 졸업 연주회 무대에 섰다. 지금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에포닌’으로 분해 민우혁, 최재림, 김우형, 카이, 조정은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무대를 누빈다.

배우 루미나는 지금 가장 주목받는 뮤지컬 신성 중 하나다. 작은 체구, 앳된 얼굴에 목소리는 거인처럼 쩌렁쩌렁하다. 안정적인 발성과 호흡, 끝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좇아 전쟁터에 뛰어드는 대담하고 애틋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오디션 당시 국내외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합격했다.

“신인 같아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제가 에포닌 역에 잘 어울린다고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일본인 어머니와 인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서울대 성악과 졸업 후 한국에서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다. 한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국적과 인종과 장르의 경계는 그에게 큰 의미가 없다. 수없이 받았을 질문에 상쾌하게 답했다. “제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할 때 생길 수 있는 고정관념을 꺼려요. 저는 ‘글로벌’한 사람이고, 그렇게 저를 소개해요.”

어릴 적부터 일본에서 뮤지컬 스쿨을 다니며 춤과 노래를 배웠다. 중학생 때 본 한국 창작뮤지컬 ‘셜록 홈즈’의 일본 라이선스 공연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에 가서 여러 공연을 보면서 이 배우들 사이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가족들도 하고 싶다면 해보라며 응원했다.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대 성악과에 외국인 전형으로 지원, 합격했다. “오페라보다 뮤지컬이 더 재미있어서” 계속 오디션을 봤고, 코로나19 감염을 딛고 ‘레미제라블’ 한국 라이선스 10주년 공연 오디션에 합격했다. 예술·흥행(E6) 비자로 소속사 없이 활동 중이지만 뮤지컬 배우이자 연출가 박칼린의 눈에 들어 박칼린이 이끄는 포킥스엔터테인먼트의 지원을 받고 있다. 

‘레미제라블’ 한국 라이선스 10주년 기념 공연 무대에 선 ‘에포닌’ 역 배우 루미나(오른쪽). ⓒ(주)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레미제라블’ 한국 라이선스 10주년 기념 공연 무대에 선 ‘에포닌’ 역 배우 루미나(오른쪽). ⓒ(주)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된 긴장과 설렘도 털어놨다. “대선배들이라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막내의 고충’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격의 없이 대해 주시고 잘 챙겨주세요. 바로 옆에서 배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죠.” 에포닌 역에 함께 캐스팅된 김수하 배우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상견례 때부터 너무나 밝게 맞아주셨고, 연습하면서 고민도 들어주시고 피드백도 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루미나의 목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창법을 구사할 수 있는 배우”, “누군가에게 꿈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공연 잘 봤다, 감동적이었다고 SNS로 메시지를 보내준 관객들께 감사해요. 뮤지컬의 꿈을 접으려다 저를 보고 자극받아서 계속 해 보기로 했다는 분들도 만났어요.”

전 세계적으로 여성 중심의 작품이 늘고 있다. 루미나는 “꼭 여성이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이야기이건 여성이 돋보이는, 주인공으로 보이는 작품도 많다. 한국엔 그런 작품이 많은 것 같다. 또 성별을 떠나 배우들이 정말 파워풀하고 인상적”이라고 했다.

최근 즐겁게 본 ‘여성 서사’ 뮤지컬로는 ‘알라딘’, ‘마리 앙투아네트’를 꼽았고, 함께 작업하고 싶은 국내외 여성 창작자가 있는지 묻자 “너무 훌륭한 배우들이 많다”면서도 “정선아 배우의 팬”이라며 웃었다. “새해에도 열심히 오디션을 볼 거예요. 해외 작품도 열심히 준비해 보려고요.” 뮤지컬 ‘레미제라블’ 서울 공연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2024년 3월10일까지 열린다. 이어 같은 달부터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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