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

“이 얼마나 소설 같은 삶이란 말인가.” 나폴레옹이 했던 말이다. 막스 갈로의 장편소설 『나폴레옹』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나의 생에서 사람들은 물론 잘못들을 끄집어낼 것이다. 하지만 아르콜레, 리볼리, 피라미드 전장, 마렝고, 아우스터리츠, 예나, 프리트란트에서의 일들은 화강암과도 같다. 질투의 이빨로도 그것들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막스 갈로는 그런 나폴레옹을 ‘불멸의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열정과 사랑의 인간이었다. 권력의 최고 자리에 있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열정과 사랑의 불꽃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개봉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에서는 그와는 거리가 먼, 여인 앞에서 유약하기만 했던 나폴레옹이 나온다.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끌려올라가 처형당하고 이를 장교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이 지켜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실제로는 나폴레옹은 그 광경을 지켜본 일이 없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혼돈 속에서 나폴레옹이 영웅으로 떠오르고 몰락했던 과정을 압축한 영화는 세인트헬레나에서 그가 생을 마치는 것으로 끝난다.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160분의 시간으로 압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인간 나폴레옹’을 다룬 영화라는 소개였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나폴레옹의 일생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화 ‘나폴레옹’ 스틸 ⓒ소니 픽쳐스
영화 ‘나폴레옹’ 스틸 ⓒ소니 픽쳐스

 대신 영화는 오직 황후 조제핀(바네사 커비)과 나폴레옹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나폴레옹이 아니라 조제핀이 중심 인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나폴레옹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조제핀으로 인해 일어난다. 아예 조제핀은 나폴레옹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나나 당신 엄마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야.”

실제로 영화 속 나폴레옹은 조제핀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 한 눈에 반한 조제핀과 결혼을 하고 이집트 원정 전쟁을 갔다가도 그녀의 불륜 소식을 듣고는 전쟁을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황당한 장군으로 나온다. 실제 역사에서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영국군에게 밀려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사기가 저하된 나머지 전쟁을 포기하고 프랑스로 귀국했다. 당시 지휘권을 넘겨받은 클레베르는 장교들 앞에서 나폴레옹을 이렇게 비난했다. "나폴레옹은 바지에 똥만 잔뜩 싸놓은 채 우리를 떠났다. 우리는 유럽으로 돌아가 나폴레옹의 얼굴에 그 똥을 문질러줄 것이다." 나폴레옹은 쥐노의 입을 통해 죠제핀의 불륜 사실을 알기는 했지만, 영화에서처럼 그 일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것 뿐만 아니다. 나폴레옹은 조제핀의 불륜 사실을 알고서도 그녀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남자, 조제핀의 불임으로 후계자 문제 때문에 이혼하지만 계속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영화 속에 나오는 나폴레옹은 조제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로 나온다. 

영화 ‘나폴레옹’ 스틸 ⓒ소니 픽쳐스
영화 ‘나폴레옹’ 스틸 ⓒ소니 픽쳐스

그래서 영웅 나폴레옹의 모습을 담은 웅장한 대서사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거장 감독 리들리 스콧과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함께 한 영화 아닌가. 영웅 나폴레옹의 인간적 면모는 어떤 것일까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의 모습은 간 데 없었고, 여인에 대한 사랑에만 갇혀 그녀의 품안에서 놀아나는 우스꽝스러운 황제의 모습만 남았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했던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의 장면까지도 참으로 우연하고 즉흥적인 사건으로 그려진다. 나폴레옹은 의사당에서 쫓겨 나오다가 병사들 덕분에 얼떨결에 권력을 쥐게 된 운 좋은 장교일 뿐이었다.

우리가 알던 나폴레옹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프랑스 대혁명 후 피가 피를 부르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프랑스의 영웅으로 등장하여 19세기 유럽 영토의 절반을 정복하고 황제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그는 근대식 교육제도를 마련하고 프랑스 중앙은행을 창설하는 등 현대 프랑스 국정운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제국주의를 옹호한 전쟁광이며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프랑스군 300만명을 전사하게 했다는 비판, 폐지됐던 식민지 노예제도를 부활시켰다는 비판도 따른다. 그래서 나폴레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오늘날 프랑스 좌우파 정치인들 간의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영화 ‘나폴레옹’ 스틸 ⓒ소니 픽쳐스
영화 ‘나폴레옹’ 스틸 ⓒ소니 픽쳐스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에 대해 영화는 감독의 예술적 상상력에 따라 어느 한 측면을 부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비틀면서까지 한 시대의 영웅을 비루하기 이를데 없는 존재로만 격하시킨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영화를 통해 역사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일이 위험한 이유이다. 죠제핀에 대한 나폴레옹의 사랑이 각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영화에서처럼 나폴레옹이 죠제핀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리들리 스콧은 기존의 통념이 아닌 자기 해석대로 인물을 표현하는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도 감독은 나폴레옹을 영웅이 아닌 평범하고 나약한 한 인간으로 그리려 했다. 애당초 리들리 스콧이 담으려 했던 것이 ‘영웅 나폴레옹’도 '역사 속 인간'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에서는 자신들의 영웅을 비루한 존재로 그린 이 영화를 가리켜 ‘역사를 왜곡한 반프랑스적 영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영화를 관통하는 나폴레옹과 죠제핀의 러브 라인은 실제였을까. 절반은 사실에 근접하고 절반은 과장되거나 만들어진 내용의 것이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많이 의지했던 인물이었음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랭크 매클린은 전기 『나폴레옹』에서 나폴레옹이 모성의 감정과 훈련이 필요한 남자였다고 평한다. “나는 여자와 함께 있을 때면 수줍어했다. 보나파르트 부인(조제핀)이 내게 자신감을 심어준 첫 번째 여자였다"였다는 나폴레옹의 말에는 성적 자신감의 부족을 의식했던 나폴레옹의 상태가 드러난다는 해석이다. 그렇게 보면 나폴레옹의 삶이 조제핀에게 휘둘렸던 영화의 내용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조제핀과 이혼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루이즈와 두번째 결혼을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 결혼을 후회하고 자신의 사랑은 조제핀에게 있었음을 말했다. "나는 마리 루이즈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조제핀을 더 사랑했다. 그녀는 진정한 아내. 내가 선택한 아내였다. 그녀는 우아함으로 가득했다. 내게 아들을 하나 낳아 주었다면 결코 그녀를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기록을 보면 영화에서 나폴레옹이 이혼한 뒤로도 조제핀을 사랑하며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바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의 시선처럼 나폴레옹에게 벌어진 모든 일들이 조제핀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지는 것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설정이다. 

영화 ‘나폴레옹’ 스틸 ⓒ소니 픽쳐스
영화 ‘나폴레옹’ 스틸 ⓒ소니 픽쳐스

특기할 사실은 나폴레옹이 여성혐오의 사고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수년에 걸쳐 페미니즘과 여성의 권리는 발전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법전은 여성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여성에게는 근신이 필요하다. 여성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여성에게 주도권을 주는 것은 프랑스답지 않다. 여성은 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불륜이 죠제핀의 것으로만 나온다. 실제로 죠제핀은 문란한 사생활과 사치 때문에 나폴레옹의 경계를 받았다. 그러나 나폴레옹 또한 특히 1802년부터 1804년 사이에 여러 여인들과 정사를 벌이며 병적일 정도로 성적인 탐닉을 했음이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처럼 나폴레옹이 죠제핀을 향해 순애보 같은 사랑을 했던 것은 아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뿐 아니라 마지막 패배를 겪은 워털루 전투까지 웅장한 전투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전투를 지휘하는 나폴레옹은 영웅답지 않게 긴장하고 쩔쩔맨다. 나폴레옹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관'이라는 찬사와 그것이 과장된 평가라는 반론이 엇갈림을 감안하면 이 또한 한쪽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폴레옹의 모습일 것이다.

어느 시대든 영웅은 어느 정도의 사실 위에다가 과장과 미화의 탑을 세워 신화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영웅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폴레옹을 나약한 존재로 비틀어버린 리들리 스콧의 시도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비틀다 보니 극단적으로 한 면만 그린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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