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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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전체 주택의 0.8%에 불과했다. 그사이 아파트가 대거 지어졌다. 2000년(47.8%) 아파트 비중은 절반 약간 모자라더니 2016년에는 60.1%로 높아졌다. 2022년에는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64%에 달한다. 아마도 수년 내에 70%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이 한강 변에 어지럽게 늘어서 있는 고층 아파트라고 한다. 여기를 가도, 거기에 가도 한국은 아파트 천지다.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아파트는 단독주택보다 가격이 많이 올라서 그동안 도시인의 재테크 욕망을 실현하게 해준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아파트가 중상층 이상의 고급 주거 공간이라는 이미지와 상징이 확산한 점도 한 요인일 것이다. 유럽에서처럼 노동자들이 사는 값싼 임대주택이었다면 지금처럼 아파트가 지천으로 깔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에도 주목하고자 한다. 편의성을 극대화한 주거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아파트의 가치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아파트 비중이 높은 곳은 어디일까?”라고 물으면 서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파트 하면 재테크 이미지를 금세 떠올린다. 아파트값이 많이 오른 곳이 서울이니 이곳에 아파트가 많을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틀렸다. 광주광역시가 아파트 비중이 더 높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광주광역시의 아파트 비중은 80.3%로 세종시(85.7%) 다음으로 높았다. 서울(58.8%)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뉴시스·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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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광주광역시의 아파트 가격은 최근 36년간(1986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288% 정도 올랐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률은 같은 기간 666%로 훨씬 높다. 그런데도 광주광역시에서 아파트 비중이 크다는 사실은 아파트 수요가 반드시 재테크 기대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파트 확산은 바로 편의성을 선호하는 여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집 안에서 가사노동을 하며 대부분의 일과를 보내는 사람은 여성이다. 

가끔 시골 논두렁 사이에 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알고 보면 이는 여성들의 주거 편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시골에 노총각이 많은 것은 다름 아니라 아파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한옥 같은 불편한 환경으로 누가 시집을 가겠느냐는 것이다. 여성들의 스위트 홈에 대한 꿈이 아파트라는 공간을 통해 성큼 다가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얼마 전 언론사 세미나에서 한 학자가 미래에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요즘의 주거 트렌드를 감안하면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가까운 미래에 현실로 다가오기 힘들다. 사는 공간으로서 단독주택 시대의 영광이 다시 오려면 여성의 가사노동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 있어야 한다. 아파트가 주목받는 것은 곧 여성의 가사노동 해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심 4~5층의 다세대·다가구주택을 허물고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으로 다시 짓기가 어렵다. 경제적 가치가 떨어져 단독주택으로 되돌리려는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중년 남자들은 아파트살이에서 벗어나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게 꿈꿔도 막상 아파트살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편의성을 중시하는 아내의 반대가 큰 요인이다. 단독주택으로 지어진 전원주택 살이는 주부의 동선이 짧아지는 주거 역사의 흐름에 역행한다. 이래저래 안락한 삶의 공간으로서 단독주택 시대는 쉽게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 자신만의 멋과 취향을 살리는 틈새 상품으로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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