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달고 떠밀고 현수막 빼앗아도
나는 동지들과 함께 계속 데모한다”

지난 5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 공장 앞 전광판. 이곳 노동자들은 1년가량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공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5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 공장 앞 전광판. 이곳 노동자들은 1년가량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공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12월 둘째 주는 절망의 한 주였다. 계획했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올해 1년 동안 함께 했던 집회들을 한꺼번에 다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내년에도 쉽지 않겠다는 결론만을 얻어서 슬펐다. 

지난 5일에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 본사 청산팀이 온다고 해서 지원하러 갔다. 본사와의 대치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찰이 굉장히 많았고 교차로부터 길을 막아서 긴장했지만 별일 없이 마무리됐다. 본사 청산팀은 거의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찾아온다. 이제 겨우 열두 명 남은 조합원들을 평택 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고용승계해 달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본사의 입장은 강경하다. 2018년에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해고했던 직원들을 4년이나 지나서 2022년에 굳이 다시 재고용한 뒤에 반년 만에 또 해고하는 작태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본사인 일본 닛토덴코는 결단코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 7일 ‘세종호텔 정리해고 2년, 복직없이 끝나지 않는다’ 투쟁문화제가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에서 열렸다.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7일 ‘세종호텔 정리해고 2년, 복직없이 끝나지 않는다’ 투쟁문화제가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에서 열렸다. ⓒ정보라 작가 제공

7일엔 서울 명동에 있는 세종호텔 해고자 문화제에 갔다. 세종호텔은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경영이 나빠졌다며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만 골라서 해고했다. 2023년 현재 호텔 경영 상태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좋아졌지만 호텔 측은 해고했던 노동자들을 다시 고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정규직도 아예 충원하지 않고 있다. 세종호텔 정규직 직원은 팬데믹 이전의 10분의 1로 줄었다. 호텔 측은 식음료부서 직원들을 모두 해고했다. 아침식사를 제공할 직원이 없어서 간편식 자판기를 운영하고 룸서비스 제공도 중단했다. 식음료부가 없어서 호텔 등급도 4성급에서 3성급으로 낮춰야 했다. 그런데도 해고자 재고용도 정규직 충원도 거부하고 있다. 

문화제 공연을 하고 발언을 듣는 동안 집회장 중간 통로로 외국인 숙박객들이 계속 드나들었다. 집회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 숙박객도 있었고 반대로 집회를 외면하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숙박객도 있었다. 우리는 공연을 보고 발언을 듣고, 타악기 연주인 ‘바투카타’의 신나는 연주에 발맞추어 명동 거리를 행진했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은 2024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과 기자회견을 연 지난 8일, 경찰들이 현장에서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에워싸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과 기자회견을 연 지난 8일, 경찰들이 현장에서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에워싸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8일 오전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기자회견에 갔다. 4일부터 8일까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노총, 4대 종단(기독교, 원불교, 불교, 천주교)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에서 하루씩 번갈아 전장연 기자회견을 지원하러 왔다. 8일엔 여러 종교인들이 참여했는데, 이날 몸싸움이 벌어졌다. 서울교통공사와 지하철 보안관들이 기자회견을 막고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든 소형 현수막과 피켓, 사회자가 든 마이크 등을 뺏으며 우리를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어째서인지 혜화역장은 ‘전국장애인철폐단체(차별을 철폐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을 철폐하는 단체?)의 집회 때문에 열차가 정차할 수 없다’고 방송했다. 지하철은 혜화역을 지나쳤고 나는 수녀님과 목사님과 원불교 교무님과 함께 지하철 보안관들에게 이리저리 밀렸다. 그 와중에 지하철 보안관이 내 손에 있던 소형 현수막을 낚아챘다. 

우리는 저항하거나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저 말하고 있었을 뿐이다. 휠체어를 탄 전장연 활동가들은 밀리거나 깔려도 저항할 수도 없다. 지하철 승강장의 협소한 공간에서 벽 쪽으로 밀리면 도망칠 곳도 빠져나갈 곳도 없다. 굉장히 무서운 경험이었다. 이날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해 8명이 연행됐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님은 휠체어를 뺏기고 구급차로 강제 이송됐다. 내 개인 SNS에 이날 이야기와 사진을 올렸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조롱하고 악담하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대략 2015년 정도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악플을 달아도 벽으로 밀어붙여도 현수막을 빼앗아도 나는 전장연 동지들과 함께 계속 데모한다. 2014년, 2015년에는 더 심한 일도 겪었다. 나는 광화문에서 이미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들었다. 장애인 이동권은 인권이고, 전장연 동지들이 옳다.

몸싸움 끝에 지하철역에서 쫓겨나서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가한 후, 시청역으로 가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국회 앞까지 행진했다. 8일이 국회 본회의 회기 마지막 날이라서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이날 꼭 통과시켜야 했다. 행진은 오전 10시29분에 시작해 오후 1시 45분쯤에 끝났다. 이른 아침부터 몸싸움을 하고 바로 세 시간 행진했더니 여의도에 도달할 때쯤에는 당장 아무 데나 앉고 싶었다. 그 와중에도 이상하게 민주당사 앞에 경찰이 많고 입구가 닫혀 있는 것이 못내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2시부터 국회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알게 된 것은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않았다는 참담한 사실이었다. 유가족들은 여야 국회의원들이 “1주기가 되기 전에 진상규명” “올해 안에 특별법 제정” 등을 약속했는데 본회의에 안건으로 상정조차 안 했다고 분노했다. 국회 임시회의 회기가 시작됐지만 특별법 본회의 상정은 또 연기됐다. 유가족들은 21일 입장문을 발표해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내년 2024년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추모공원 건립은 아직 시작도 못 했고 참사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특별조사위원회의 결론은 결론이라 할 수 없는 불분명한 ‘제안’ 수준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사회적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 협의체인 재난참사피해자연대가 16일 발족돼 이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8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는 5일차 10.29km 보라리본행진을 열고 국회까지 행진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8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는 5일차 10.29km 보라리본행진을 열고 국회까지 행진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김용균 5주기 추모위원회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김용균 5주기 추모대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김용균 5주기 추모위원회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김용균 5주기 추모대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9일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김용균님 5주기 추모제에 참여했다. 김용균님 사망사건에 대해 원청이 무죄 판결을 받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됐고, 이른바 ‘노란봉투법’, 즉 노조법 2조와 3조 개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용균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님이 아들의 영정을 들고 무대에 선 모습을 보니 세월호 부모님들이 각자 자식의 영정을 들고 청운동주민센터 마당에 앉아있던 광경이 다시 떠올랐다. 

내년은 아마 올해보다도 더 쉽지 않을 것 같다. 제발 내년에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산업재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인권이 존중받고 생명이 존중받기를, 안전하고 무사한 한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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