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 내년 2월 운영 중단
서울시 “지역경제활성화·시설 이용률 높이기 위해”
입주기업·운영진 “문 닫더라도 기한 달라”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 전경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 전경.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

국내 유일 여성공예인 창업보육시설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이 운영 7년 만에 문을 닫는다. 운영비를 지원해온 서울시가 지역경제활성화를 이유로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사업 중단 통보로 입주기업과 운영진은 대안을 구하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와 진보당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주기업에 대한 서울시의 일방적인 퇴거 통보를 규탄하며 시가 센터 운영 지속을 위한 대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이예빛 비대위원장은 “현재 센터에 남아있는 16개 기업은 지난 10월 입주연장평가에 응시해 내년 12월 31일까지 입주할 권한을 (센터에) 약속받았다. 그러나 서울시가 갑작스레 내년 2월 퇴거를 통보해 입주기업과 운영진이 한 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7년간 총 154억원 상당의 예산을 들여 운영한 센터를 빈 공간으로 방치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센터 운영을 계속할 수 있도록 예산을 배정하고, 퇴거를 결정하더라도 공정하고 올바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비대위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여성공예센터 운영예산 복구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이어갔다.  

서울여성공예센터 개인 작업실에서 여성공예인 A씨가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서울여성공예센터 개인 작업실에서 여성공예인 A씨가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여성공예인·시민 만족한 ‘국내 유일 여성공예센터’


서울시가 여성창업 및 경제활동 활성화와 경력단절여성 지원 등을 목적으로 2017년 설립한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은 공예산업에 첫 발을 들이는 여성 공예인들에 개인 작업실과 공유공간, 고가의 장비, 선후배 교류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왔다.

센터에 입주한 여성 공예인은 보증금 100만원과 월 12~14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면 최대 2년간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보증금 1000만원과 월 100여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타 시설 임대료의 10분의 1 수준으로, 자본이 부족한 초기 공예인의 경제적 부담을 덜게 했다. 

지하에는 유리, 금속, 목공, 도자기 등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맞춤형 작업공간과 고가의 기자재를 구비했다. “개인 작업실과 공동공간을 오가며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하고, 입주기업 간 협업을 통해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임대료와 무관하게 이만큼 작업하기 좋은 공간을 국내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이 입주자들의 설명이다.

서울여성공예센터가 주최한 강연에 수십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인스타그램
서울여성공예센터가 주최한 강연에 시민 수십여명이 참여해 경청하고 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인스타그램

센터는 입주기업뿐 아니라 공예에 관심 있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기초장비교육, 생활창작 워크숍 등 정기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은 다소 생소한 공예산업과 친해질 수 있었다. 예술가들은 공예수업 및 전시회를 통해 시민들과의 소통 및 자립을 위한 수익활동을 할 수 있었다.

센터의 지원 사업이 여성공예인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지표를 통해 드러난다. 비대위에 따르면 올해 초 입주한 53개 기업의 매출은 1년 전보다 54.12% 상승했으며, 입주 2년차 기업 32곳은 전년대비 89.68% 상승했다.

입주기업뿐만 아니라 센터를 이용한 시민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센터가 예비·초기창업가와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설문조사에서 창업가들은 5점 만점에 4.82점, 시민들은 4.85점으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줬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와 진보당은 2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주기업에 대한 서울시의 일방적인 퇴거 통보를 규탄하며 시가 센터 운영 지속을 위한 대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이예빛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장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와 진보당은 2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주기업에 대한 서울시의 일방적인 퇴거 통보를 규탄하며 시가 센터 운영 지속을 위한 대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이예빛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장

퇴거 통보에 운영진·입주자 수십 명 거리로


서울시는 지난 15일 센터에 “서울여성공예센터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다음해 2월까지 모든 입주기업이 시설에서 나가야 한다”고 구두 통보했다. 

센터 운영진과 입주자들은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 않은 상황에서 예고 없는 퇴거 통보를 받아 수십 명이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 센터 운영진은 서울시 민간위탁 운영평가위원회 심의결과에서 ‘재위탁사항 적정’ 평가를 받았다, 지난 11월 29일에는 시의회로부터 사업예산 증액안이 보건복지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고 전달받아 ‘내년까지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서울시의 퇴거 통보로 센터 운영인력 및 시설관리용역인력 21명은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센터 관계자는 “정책이 바뀌어 사업을 종료한다면 할 말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대안 없이 모두 일자리를 잃게 돼 안타까운 마음이다. 납득할 만한 계획 없이 센터의 성과와 장비들을 없애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센터에 입주한 16개 기업은 2024년 12월 31일까지 센터 입주를 전제로 창작활동과 수익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그러나 이번 통보로 모든 창작활동과 계약을 중단하고 직원을 해고하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다. 센터 운영진과 입주자들은 “센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한순간에 내쫓지만 말아 달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여성공예인만 지원하는 것이 문제면 남녀 모두 들이는 공간으로 바꾸자”라며 “공예인만 지원하는 것이 문제면 모든 창작자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바꾸자. 만약 내쫓더라도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달라”고 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지하 공유공간 ⓒ박상혁 기자
서울여성공예센터 지하 공유공간 ⓒ박상혁 기자

서울시, 정책 변화로 종료 불가피


서울시는 서울여성공예센터 사업을 지속하겠다고 결정한 적 없어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고, 정책 방향성 변화로 사업 종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21일 여성신문에 “지역경제활성화를 내년도 시 주요 운영 방침으로 보고 있으며, 센터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판단에 보다 효율적인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센터 운영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0월 사업 예산을 0원으로 정한 이후 예산 복구를 결정한 적은 없다. 센터에도 사업을 진행하되 부득이한 사정으로 변동될 수 있음을 외부에 고지해야 한다고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통상적으로 퇴거 30일 전 통보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여러 상황을 고려해 2개월의 퇴거기한을 줬고, 센터 운영비 3억6000여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며 시가 센터 운영진과 입주기업의 편의를 돕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센터 공간 및 수십여 개의 장비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사업을 운영하고, 창업지원기관 등 유사 시설에서 장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라고 답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