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AP/뉴시스]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달 29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도쿄=AP/뉴시스]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달 29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비자금과 세금 인상, 통일교 관련 의혹 등으로 취임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 언론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비자금 의혹 관료들이 사임하는 등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취임 후 최저  지지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16∼17일 이틀 간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의 지지율이 16%로 나타났다.

이는 11월 18∼19일 실시한 조사 때의 21%보다 5%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내각 발족 이후 최저 지지율을 2개월 연속 경신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은 지난번 조사(74%)보다 5%포인트 증가한 79%였다.

조사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진 것은 간 나오토 정권이던 2011년 8월(15%) 이후 처음이다. 불지지율 79%는 마이니치신문이 여론조사를 시작한 1947년 7월 이후 가장 높다.

당시 간 나오토 내각은 그해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대참사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지지율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민주당은 결국 이듬해 12월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정권을 뺏겼다.

지지통신이 지난 1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17.1%로 20% 선을 처음으로 밑돌았다.

교도통신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전달(28.3%)보다 6.0%p 추락한 22.3%였다. 이 역시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최저다.

비자금 

[도쿄=AP/뉴시스] 아베파 각료 사임으로 새 관방장관에 임명된 하야시 전 외무상이 총리관저에 도착하고 있다.
[도쿄=AP/뉴시스] 아베파 각료 사임으로 새 관방장관에 임명된 하야시 전 외무상이 총리관저에 도착하고 있다.

일본의 집권당 자민당 파벌들은 정기적으로 정치 자금 모금 행사를 개최해 기업과 단체 등에 초대권을 판매했는데, 초대권을 초과 판매한 일부 의원들은 초과 수입을 나눠 받은 뒤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고 비자금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히 신문에 따르면 일본 검찰은 20일 '비자금 의혹' 수사를 위해 집권 자민당 파벌 사무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앞서 아베파 소속 미야자와 히로유키 방위부대신은 지난 13일 기자들에게 "파벌로부터 3년간 140만엔(약 1천300만원)을 받으면서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다"고 사과하고 "기재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일본 검찰은 지난 19일에는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와 다섯번째 파벌 '니카이파'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벌였다고 NHK가 보도했다. 도쿄지검 특수부 관계자는 이날 오전 양 계파 사무실을 찾아가 압수수색을 했다.

아베파는 정치자금 모금 행사인 이른바 '파티'에서 파티권을 할당량 이상 판 소속 의원들에게 초과분의 돈을 넘겨줘 왔으며 계파 정치자금 수지보고서나 개별 의원 회계처리에 이를 반영하지 않고 비자금화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아베파 의원들이 파티권 할당량 초과 판매로 비자금화한 금액은 2018∼2022년 5년간 총 5억엔(약 46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요미우리신문은 니카이 도시히로 전 간사장이 이끄는 니카이파도 파벌 회계 책임자가 '파티'의 총수입을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적게 기재하면서 실제 총액과 기재액 간 차액을 파벌 내 비자금으로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니카이파가 수지보고서에 적게 기재한 금액은 최근 5년간 1억엔(약 9억1000만원)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아베파와 니카이파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할 전망이다.

비자금 의혹을 받는 일본의 집권 자민당 아베파(99명) '세이와 정책연구회' 소속 각료 4명은 사임했다.

일본 공영 NHK, 지지통신 등에 따르면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 미야시타 이치로 농림수산상, 스즈키 준지 총무상이 14일  기시다 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들 3명의 사표 제출 사실과 자신의 사임을 표명했다. 이들 4명의 각료는 비자금 의혹을 받고 있다.

마쓰노 관방장관은 아베파 소속 호리이 마나부 내각부대신, 호리이 이와오 외무부대신, 아오야마 슈헤이, 문부과학부대신, 사카이 야스유키 경제산업부대신, 미야자와 히로유키 방위부대신 등 5명의 부대신(차관)도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또 아베파 소속 와다 요시아키 방위대신 정무관(차관급), 사토 게이 대무대신 정무관, 우에노 미치코 총리 보좌관도 사표를 제출했다. 사표를 제출한 장차관급은 총 12명이다.

세금 인상 논란

진구 가이엔 공원에 모인 도쿄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AP/뉴시스]
진구 가이엔 공원에 모인 도쿄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AP/뉴시스]

지난해 일본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 관련 예산을 2027년부터 2%로 증액하는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했고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간 방위비 43조엔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부를 증세로 조달하겠다"며 소득세, 법인세, 담뱃세를 2027년까지 단계적 인상을 예고했다.

일본 정부의 세금제도조사회가 기시다 총리에게 전달한 '중장기 세제개편안'에 직장인의 각종 소득공제 폐지와 함께 퇴직금에 대한 과세 등이 포함됐다. 당시 개편안에는 근무 형태에 따른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세재를 개편하기 위해 소득세 주민세 건강보험료 연금보험료 금액을 올려야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담뱃세 인상은 서민 증세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세금을 연초 담배 수준까지 인상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연정책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들 국가들은 궐련형 전자 담배와 연초 담배에 세금격차를 두고 있다. 전자 담배가 연초 담배보다는 상대적으로 건강에 덜 해롭다는 인식때문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기시다 총리는 최근 세금 인상 계획을 사실상 철회했다. 세금 인상 시기를 2025년 이후로 연기한다는 설명이지만 무기한 연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통일교

[나라=AP/뉴시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8일 나라에서 선거 연설 중 총격으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다.
[나라=AP/뉴시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8일 나라에서 선거 연설 중 총격으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해 7월 8일 선거 유세 도중 산탄총에 맞아 숨졌다.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가두 유세를 하던 도중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야마가미 데쓰야는 "모친이 종교 단체에 빠져 고액의 기부를 하는 등 가정 생활이 파탄났다"고 주장했다.

NHK에 따르면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는 수사관들에게 아베 전 총리를 피격한 이유가 정치 신조 때문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경찰에서 아베 전 총리가 자신과 원한이 있는 단체와 연관이 있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야마가미는 "모친이 종교 단체에 빠져 고액의 기부를 하는 등 가정 생활이 파탄 났다"라고 주장했다. 야마가미 말한 종교단체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으로 알려졌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죽음이 통일교와 관련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 국민들은 자민당과 통일교의 유착관계에 대해 의심했다. 

기시다 현 총리도 과거 통일교 유관 단체의 간부와 만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4일 아사히신문은 2019년 10월 4일 당시 자민당 정조회장을 맡고 있던 기시다 총리가 일본을 방문한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원과 통일교 유관 단체인 천주평화연합(UPF) 간부 등을 만났다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망으로 통일교와 자민당의 오랜 유착관계가 부각되자 자신은 통일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일본의 정치권은 통일교와 밀착됐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일본의 통일교는 신도들의 고액헌금으로 논란이 돼왔다.

일본 정부는 법원에 통일교 해산명령을 청구하는 등 밀착관계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기 위해 안간함을 쓰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해산명령을 청구하면서 가정연합 관련 피해자가 약 1550명이며, 피해 규모는 손해배상액 등 총 204억엔(약 1848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 야당인 국민민주당 3당이 공동으로 제출한 이 법안은 해산명령이 청구된 종교법인이 부동산을 처분할 때 소관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세계평화통일연합 피해자 구제법안을 지난 5일 통과시켰다.

기시다의 버티기

[도쿄=AP/뉴시스] 마사히토 모리야마 문부과학상이 통일교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도쿄=AP/뉴시스] 마사히토 모리야마 문부과학상이 통일교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내각제인 일본에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임계점 아래로 내려갔다. 

내각제 국가들의 총리는 지지율이 낮으면 물러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코로나19 집합금지 기간에 총리관저에서 파티를 열었던 이른바 파티게이트와 거짓말 논란 등으로 지난해 7월 불명예 퇴진했다.

존슨에 이어 총리에 오른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부자감세와 대책없는 이른바 미니예산으로 역풍을 맞아 44일만에 물러났다.

정치 환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내각제 국가인 일본에서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기시다 총리는 버티고 있다. 기시다 못지 않게 야당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기대도 낮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이 이달 16~17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기시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23%, 부정 평가는 66%로 2012년 12월 자민당이 정권에 복귀한 이후 지지율/반대 여론 각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총리직을 사퇴하기를 희망하는 유권자는 58%에 달한 반면 총리직을 유지하기를 희망하는 유권자는 28%에 그쳤다.

자민당 지지층에서 기시다가 총리직을 유지해달라는 응답자가 66%였고, 무당파층에서는 사퇴 여론이 65%로 분열 양상을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 자민당을 대체할 세력으로 현재의 야당에 대한 기대감도 턱없이 낮았다. 야당에 '기대할 수 있다'는 응답자는 15%에 불과한 반면, '기대할 수 없다'는 응답은 78%로 높았다.

야당 제1당인 입헌민주당과 일본유신회의 지지층에서도 야당에 '기대할 수 있다'는 응답은 모두 20%에 그쳤고, '기대할 수 없다' 는 응답이 80%에 가까웠다.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며, 자민당은 국회의원과 당원(당비 납부 일본 국적자)·당우(자민당 후원 정치단체회원) 투표로 총재를 뽑는다.

기시다 총리가 맡은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에 끝나고, 중의원(하원) 선거는 2025년 10월에 치러질 예정이다.

다만 기시다 총리 지지율이 저공비행을 계속한다면 내년 봄에 기시다 총리를 총리직에서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은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하는 내년 3월까지 기시다 내각의 낮은 지지율이 이어질 경우 새로운 선거 얼굴을 뽑기 위해 '기시다 끌어내리기'의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요미우리 "다선 의원들은 '내년 봄까지 지지율을 회복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하기 위한 절대 조건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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