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과학]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만든 독감 백신 접종 캠페인용 인포그래픽 디자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만든 독감 백신 접종 캠페인용 인포그래픽 디자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환절기가 되니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다시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사람도, A형 독감에 걸린 사람들도 늘고 있다. 

매년 호흡기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인해 사용되는 인적, 물적 자원은 공중보건과 경제적 문제도 함께 야기한다.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는 매년 독감 백신 캠페인을 열며 숫자를 큼지막하게 쓴 인포그래픽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2021~2022년 미국 내 독감 백신 접종을 통해서 버지니아주와 로드아일랜드주 주민 180만 명이 독감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텍사스주 오스틴 주민 100만 명은 독감으로 의사를 찾지 않아도 됐고, 각 병원에서 하루 60건씩 입원을 줄일 수 있었으며, 보잉 747 비행기 두 대에 타는 사람만큼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인류는 코로나19를 통해 이미 개개인의 백신 접종이 가족, 공동체와 사회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학습했다. 전 세계가 전력으로 백신 접종 캠페인에 달려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많은 희생과 더 오랜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을지 모른다.

반대로, 코로나19로 인해 24개월 이하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늘어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홍역 예방 접종의 경우 2021년 거의 어린이 4000만 명이 백신 접종을 놓쳤으며, 전 세계에서 홍역으로 인해 감염 약 900만 건이 발생하고, 약 13만 명이 사망했다. 백신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병인 홍역이 코로나19의 그림자 아래에서 고개를 내미는 것을 인류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조차도 원래는 백신의 역할이었는데 말이다. 홍역 백신 접종률 하나도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데, 지역 공동체에서, 한 국가에서 또 전 세계에서 영유아에게 수십 가지의 백신들이 제대로 접종되지 않았을 때 펼쳐질 일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악몽이다.

미국에서 거의 사라진 것으로 여겨지는 홍역이 유행할 때마다 늘 홍역 백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홍역 백신에 대한 악의적인 논문에 힘입어 미국 내에서 백신 반대론자들이 기승을 떨칠 때도, 이로 인해 지역사회에서 국소적인 홍역 유행이 발생할 때도 그는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홍역 백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로 미국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부인인 로절린 카터다.

미국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부인인 로절린 카터는 아칸소 주지사의 부인인 베티 범퍼스와 함께 1970년대부터 미국 아동의 홍역 백신 접종 확대에 힘썼다.
미국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부인인 로절린 카터는 아칸소 주지사의 부인인 베티 범퍼스와 함께 1970년대부터 미국 아동의 홍역 백신 접종 확대에 힘썼다.

1977년 영부인이 된 그는 아칸소 주지사의 부인인 베티 범퍼스와 함께 ‘입학 전 필수 예방접종 법안’ 제정에 힘을 쏟았다. 이를 통해 미국 아동의 95% 이상이 취학 전 예방접종을 받게 됐으며, 아동 질병률이 급감했다. 1989년 5만5000명 이상이 홍역에 감염되고, 1만1000명 이상이 병원에 입원하고, 120명이 홍역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카터와 범퍼스는 ‘Every Child by Two’(ECBT, 현 VFC(Vaccines for Children))라는 단체를 설립, 2세 이하 아동의 백신접종을 위해 정책 입안자, 서비스 기관, 시민단체로 구성된 예방접종 연합을 구축하고자 50개 주를 방문했다.

이들의 노력은 초당적 정책으로 이어져 백신 접종 제도를 국가의 우선순위로 삼는 밑거름이 됐다. 또 건강 보험이 없어 백신 접근성이 낮은 저소득층의 형편을 고려해, 매년 약 700만 명의 저소득층 여성과 아동을 지원하는 WIC(Women, Infants and Children)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무료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ECBT의 지원을 통해 1994년 이후 미국에서 백신을 접종한 아동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구했을 거라는 평가도 있다.

백신 접종 캠페인뿐 아니라 정신건강, 간병 정책 등 공중보건에 크게 기여한 카터는 지난 11월19일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코로나19로 낮아진 영유아 접종률과 함께 돌아온 홍역의 위험 앞에서, 백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외치며 50개 주를 돌아다녔던 카터의 사명을 다시 생각한다.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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