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골드스미스 외곽지역에 설치된 석유시추기 ⓒ[AP/뉴시스]
텍사스 골드스미스 외곽지역에 설치된 석유시추기 ⓒ[AP/연합]

국제유가가 12일(현지시각) 4% 가까이 떨어지며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68.61달러로 전날보다2.71달러(3.8%) 하락했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 6월 27일(67.70달러) 이후 5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배럴당 70달러 아래서 마감한 것은 지난 7일 이후 3거래일 만이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내년 2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도 전보다 2.79달러(3.7%) 내린 배럴당 73.2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국제유가는 고물가에 따른 공금리 장기화 우려와 자발적인 감산에 대한 시장의 회의감 때문에 급락했다. 

미 노동부는 11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달보다 3.1%, 전달보다  0.1% 각각 상승했다고 밝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있을 회원국들의 자발적인 감산으로 시장을 실망시킨 이후 유가는 자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자발적인 감산량 하루 220만 배럴 중 150만 배럴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는 이미 합의된 사항이다. 추가적인 감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가는 즉시 하락했고, 이후 가격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석유 순추출국 미국

미국 석유기업 셰브론의 캘리포니아 포인트리치먼드 정유공장 ⓒ[AP/뉴시스]
미국 석유기업 셰브론의 캘리포니아 포인트리치먼드 정유공장 ⓒ[AP/연합]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국 이지만 순수출국이기도 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2020년 처음으로 석유 순 추출국이 됐다. 2020년 미국의 석유 수출량은 하루 920만 배럴, 수입량은 833만 배럴 이었다.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순수출국 지위를 이어갔다.

EIA는 지난해 미국의 연간 총 수출량이 수입량보다 많았지만 석유에 대한 국내 수요와 국제시장 공급 차원에서 원유와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유는 순수입국이다. 미국은 지난해 하루 평균 628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358만 배럴을 수출했다.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 중 일부는 휘발유, 난방유, 경유, 제트 연료 등으로 정제돼 일부는 수출된다.  

미국의 석유 수입은 지난 2005년에 정점을 기록했다. 2005년 이후 미국내 석유 생산과 수출 증가하면서 석유 순수입이 줄었다.

수입선도 다변화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미국산 석유 수입 점유율이 감소하고, 캐나다산 수입 점유율이 증가했다. 

1970년대 미국의 석유 수입은 특히 OPEC 회원국들로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1977년  OPEC 국가들로부터의 미국 전체 석유 수입의 70%, 미국 원유 수입의 85%를 차지했다.

지난해 미국 석유 수입 중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비중은 12%, 원유 역시 12%에 머물렀다.

미 원유생산량 '역대 최대'

미국의 원유 생산량 ⓒ에너지정보청(EIA)
미국의 원유 생산량 ⓒ에너지정보청(EIA)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최근 몇 주 동안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12월 첫주 에너지 기업들의 하루 생산량이 1320만 배럴로 지난 9월 생산량과 같았다.이는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의 하루 생산량보다 많은 것이다.

과거 원유를 가장 많이 생산했던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유가 상승을 노리고 생산을 줄인 탓에 미국은 압도적인 생산량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미국의 하루 평균 생산량은 1310만 배럴로 사우디(890만배럴)의 1.5배에 이른다. 전쟁 비용을 조달하려고 시설을 최대로 가동 중인 러시아(990만배럴)의 생산량보다도 훨씬 많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하루 약 80만 배럴씩 증가했으며,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지금보다 하루 50만 배럴을 추가 생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사우디 주도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생산량을 늘려 미국 셰일 가격이 70% 가량 하락했던 지난 2014~2016년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전 기록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경제 침체가 시작되기 이전인 2020년 2월 하루 1310만 배럴이었다.

석유 생산량의 꾸준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간 석유 시추장치 수가 정점이었던 2014년 1600개보다 훨씬 적다. 지난주 미국의 활성 석유 시추 장치는 502개에 불과했다. 이는 2014년 정점보다 69% 감소한 것이다. 

이는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유가가 하락한 기간 이후 미국의 에너지 산업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바이든-푸틴-빈 살만의 '동상이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6일(현지시각) 사우디 왕국에서 회담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6일(현지시각) 사우디 왕국에서 회담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사우디를 방문해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했다.

푸틴과 바이든의 빈 살만과의 회담은 석유와 관련이 있지만 목적은 달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각) 중동을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아랍에미리이트를 거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가진 뒤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모두가 원유 감산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로이터는 푸틴의 사우디 방문은 급하게 결정됐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푸틴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면서 빈 살만 왕세자와 반갑게 악수했다.

푸틴의 사우디 방문은 OPEC+가 지난달 30일 각료회의에서 강제적인 감삼 합의에 실패한 뒤 일주일 뒤 이뤄졌다. 각료회의 이후 자발적 감산이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하루 22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했으나 아프리카 회원국들은 강제 감산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다.

[제다=AP/뉴시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사우디 제다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다=AP/연합]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사우디 제다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했던 시기인 지난해 7월 중순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승인했다고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얼굴을 마주했다.

로이터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를 국제사회에서 '왕따' 시키겠다고 말해온 터라 이날 주먹 인사는 양국 관계 재설정에 본질적인 의미를 규정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주먹 인사가 '사우디 왕따' 시대를 끝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은 사우디의 증산을 유도해 유가를 끌어 내리려는 의도가 있었다.

CNN은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 이후  "준 것은 많고 받은 것은 적다"는 평가를 내렸다.

바이든은 성공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제재로 줄어든 러시아 석유를 대신할 석유 공급이 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개적인 증산 약속은 없었다. 이 문제를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을 늘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몇 주안에 공급이 늘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주유소들이 휘발유 가격을 내리는 것을 보게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이 왕궁에서 세 시간 가까이 보낸 것은 모하메드 왕세자의 외교적 승리로 여겨졌다. 모하메드 왕세자는 그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그의 개혁 계획을 위해 왕국에 투자를 유치하고, 미국과의 왕국의 안보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 푸틴의 사우디 방문과 지난해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은 각기 다른 목적에서 이뤄졌다. 푸틴은 빈 살만과 유가를 지지하기 위해 만났다. 바이든은 유가 하락을 기대하며 껄끄러운 관계였던 빈 살만과 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바이든의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우디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푸틴의 목표도 현재까지는 달성되지 않고 있다. 푸틴과 빈 살만의 목표는 새로운 석유 강국 미국이 가로막고 있다. 

사우디, 석유전쟁 일으킬까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기업 아람코의 원유시추기 ⓒ아람코 홈페이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기업 아람코의 원유시추기 ⓒ아람코 홈페이지

미국의 비지니스 인사이더(는Business Insider) 최근의 유가 하락은 국제 유가가 70% 가량 하락했던 2014~2016년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 세일기업들의 초기 성장을 가로막기 위해 공급을 확대해 유가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9월 하루 평균 1320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데 이어 2주 전에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사이더는 2010년대 중반의 미국과 현재의 미국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ewYork Times)도 미국 석유기업들이 단단한 셰일암을 관통하는 측면 유정을 연장해 몇 년 전에 가능했던 것보다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분석했다.

미국 생산자들이 공고해졌으며 가격 전쟁에 훨씬 더 탄력적으로 대처할수 있게 됐다. 반면 사우디 아라비아와 걸프 동맹국들은 아마 2014년보다 더 위험 회피적일 것이다. OPEC+ 국가들은 감산을 바라지 않지만 유가 위기가 걸프 국가들이 그들의 역사상 처음으로 긴축 정책을 채택하도록 촉발했다.

석유 전문가는 사우디가 현재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수도꼭지를 틀어 미국의 셰일을 다시 한번 죽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가 원유 가격을 낮추는 추가 공급을 계속해 미국의 석유 시추를 수익성이 없게 만들어 미국 산업을 근본적으로 '파산'시키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다. 2014년과 2020년 리야드가 유가를 다시 통제하기 위해 사용한 전술이다.

하지만 이는 사우디와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종의 자폭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시장은 최근의 감산 발표에 대해 예상과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규모 감산이 아니면 거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회사인 크플러(Kpler)는 사우디가 2024년 내내 하루 100만 배럴의 감산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들과 그들의 동맹국들은 계속 감산을 약속하고 있지만, 그것은 최근 몇 달 동안 미국과 국제 유가를 떠받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국제유가가 떨어지는 가운데 미국의 원유 증산분이 OPEC의 감산분을 메우면서 석유시장에서 사우디와 OPEC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회의에서  OPEC+는 이전과 달리 한 목소리를 내는데 실패했다. 7개 회원국이 자발적으로 내년 1·4분기 하루 220만배럴을 감산한다는 두루뭉술한 합의만 이끌어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2014년처럼 미국 셰일기업을 고사시키기 위해 석유전쟁을 감행할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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