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가족 수차례 신고 '방관'…이명숙 변호사 사건 맡아

국가상대 첫 손배소 주목

가정폭력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껴온 40대 여성이 경찰에 수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이 소홀히 대처해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희생자의 가족이 12월27일∼28일경 국가를 상대로 3억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소송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희생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 묻는 첫 소송이란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20일 서울시 송파구에 사는 A모씨(41)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남편 B모씨(60)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고, 그 현장을 지켜본 A씨의 아들(13)도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희생자 가족의 진술에 따르면 A씨는 사건발생 5일전부터 경찰에 4회나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내일이면 팔짱을 끼고 다닐 사이 아니냐”혹은 “집안 일이니 잘 풀어라”는 등 안이한 대처로 일관했다는 것. A씨의 아들은 현재 두차례 대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으나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을 준비중인 A씨의 오빠는 23일 진행된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여동생이 죽고난 뒤 너무 허망해 한달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며 “우연히 신문에서 가정폭력방지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을 읽고 여성단체와 상담하면서 소송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생이 숨진 뒤 가정폭력방지법의 존재 여부를 알았다”며 “경찰이 법규정을 미리 얘기해주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동생이) 죽지 않았을 텐데, 힘없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경찰과 국가에 회의를 느낀다 ”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송란희 서울여성의전화 인권담당은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된지 만 6년이 됐지만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찰 조직의 내부 의식 때문에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송을 맡은 이명숙 변호사(대한변협 이사)측은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가정폭력방지법의 규정에 따라 가해자, 피해자를 격리하고 상황을 확인한 뒤 보호시설 입소 희망 여부 등에 관한 피해자의 의견을 물었어야 했는데, 경찰이 이런 부분들을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소송을 계기로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국가가 인식하고 피해자들을 사회, 제도적으로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관내 경찰 1명이 담당하는 주민 수는 701명에 달해 신고 받은 사건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기기 어렵다”며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면 법적 처리를 하고 있지만, 경찰이 한번 다녀간 뒤 (부부간에) 더 큰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찰들도 가정폭력 사건을 다룰 때 매우 조심스럽다”고 항변했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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