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치료의 대상이었던 정신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신경다양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정신장애인에 차별적인 제도들을 바꾸기 위해 신경다양인들 간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freepik
혐오와 치료의 대상이었던 정신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신경다양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정신장애인에 차별적인 제도들을 바꾸기 위해 신경다양인들 간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freepik

‘건강가정기본법’은 2004년 2월 제정될 때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무엇보다도 법률 명칭 ‘건강가정’은 처음부터 이분법적 편향성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법률 제3조1항에서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를 함으로써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생활을 영위해가는 사람들을 기본법 밖으로 밀어냈다. 또 제8조(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제9조(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에는 사회적 안녕을 위해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할 것 같은 기조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강했다. 이로 인해 건강가정기본법은 여러 번 개정을 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일부 강경 기독교 그룹과 보수적 사고에 갇혀 있는 정치인들의 반대로 초기 제정된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이 생겨난 이래 어언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사회구조는 변화했고 가족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더 다양해졌다. 건강가정기본법에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소위 건강가정으로 간주되는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루어진 가구는 2020년 기준 29.1%에 불과하다. 결혼하는 커플은 급격히 줄었고, 이혼하는 부부는 늘어가고 있다. 1인 가구는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가구형태이며,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같이 살아가는 생활공동체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동성커플이 결혼 후 정자기증을 통해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을 함께 하는 가족으로서의 삶을 공개했다. 만약 남녀로 이루어진 커플이었다면 기본법상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이들은 결혼, 임신, 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법률의 테두리밖에 있어야 했다. 이처럼 2023년 한국에서 가족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건강가정기본법이 상정하고 있는 법률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가족 개념에 의해 사회적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실제 여성가족부도 오랫동안 건강가정기본법이 갖고 있는 문제와 법률 내용상 모순을 받아들여,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4년)을 수립하면서 법률혼과 혼인제도에 한정된 가족 개념을 넘어 가족다양성 인정,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금지 등을 포함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여성가족부는 이 정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현행유지로 입장을 선회하였다. 22년 국감장에서 가족 개념정의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접고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두겠다는 모순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법률상으로는 가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아도 지원은 실질적으로 하겠다니..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특히 우려 되는 부분은, 건강가정기본법의 협소한 정의 때문에 가족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차별받으며, 사회적 무시·배제를 넘어 혐오를 받기까지 하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률의 존재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굳이 법의 정신을 다룬 몽테스키외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잘 지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가족은 초월적 명령처럼 하나의 이념형으로 존재하는 무기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분화, 다양화의 과정을 거치는 유기체이다. 가족의 다양성과 변화에 역행하는 건강가정기본법은 이제 수많은 가족들에게 무대를 내주고 내려와야 한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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