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냐 보존이냐를 놓고 수년간 논쟁이 이어져 온 영도다리가 드디어 확장, 복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도대체 낡은 다리 하나에 걸쳐 있는 사연의 무게가 얼마나 진중하기에 이토록 극진한 대접을 한몸에 받는 걸까.

"남한으로 갈라문 맨 끝탱이에 부산이란 데가 있다더라만,

살라문 거기로 가야 한다는기야. 기라구, 거기에 가문 말야. 무신 다리가 있는데,

기린데, 그 다리가 하루에 두 번씩 벌커덕, 든다는 거야."

- 윤진상 소설 <영도다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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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최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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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 야경. <제공 장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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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등대에서 바라본 해돋이 모습.

거대 도시 부산을 둘러보려면 우선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용두산 공원부터 찾은 것도 그래서다. 우리나라 최대 항구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벤치에 앉으면 청량한 겨울바다가 대번에 코앞까지 밀려온다. 뒤쪽으론 부산만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구릉들. 개중 한 가닥은 다대포 방면으로 뻗어나가고, 또 한 가닥은 해운대의 장산으로 이어진다. 다시 낙동강 하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번엔 드넓은 평야다. 저 너머가 '낙동강의 파수꾼', 요산 김정한 선생의 '모래톱 이야기'가 펼쳐진 을숙도일 테지. 욕심 가는 곳은 많지만 아쉬움을 접고 영도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내려가는 길은 부산호텔과 타워호텔 사이로 난 계단 길을 택했다. 그 유명한 '중앙동 40계단'을 직접 밟아보고 싶어서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극중 킬러로 분한 안성기가 살인사건을 일으킨(?) 현장은 겨울비에 젖어 스산하다.

한국전쟁 당시 이 부근엔 피란민들의 판자촌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시야를 가리는 빌딩들이 없었으니 이곳 40계단에서도 영도다리 쪽이 훤히 보였으리라. 아마도 계단에 기대앉아 낮에는 다리를 보며 피란살이의 고달픔을 삼키고, 밤에는 부산항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보며 향수를 달랬을 터.

피란의 이정표, 영도다리

어둑해진 계단 길을 내려와 곧장 바닷가로 질러가자 태종대가 있는 섬 영도가 나타났다. 뭍과 섬을 잇는 다리가 둘. 그 중 낡은 쪽이 사연 많은 영도다리다.

1934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66년까지만 해도 하루 두 번씩 '끄덕끄덕' 머리를 추켜올리며 큰 배를 지나가게 했던 도개교였다. 개통식 때는 이 진풍경을 보기 위해 6만여명의 구경꾼이 몰려들었을 정도.

그러나 영도다리가 더 널리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 때 수많은 피란민들의 이정표 구실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피란민들은 영도다리에만 가면 친인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모여들었고, 이들의 답답한 사연을 들어주던 점쟁이들이 성업했다.

영도다리 아래로 '점바치 골목'이 들어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 전쟁의 비극이 극에 달했던 수난의 시절, 생활에 지친 피란민들은 이 영도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리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는 가수 김상국의 노래가 끼니를 굶고 찬물을 들이키던 전쟁 피해자들의 애창곡이었다. 이처럼 민족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가 이제 한 시대의 아픔을 고이 접은 채 꽃단장에 들어간다.

6차로 교량에 도개부분까지 복원된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07년 새로 모습을 드러낼 영도다리가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잡는 상징물이 되길 기원하며 인근의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땅거미가 내려와 사위가 캄캄해지자 부산의 대명사 '자갈치시장'이 불야성을 이룬다. '자갈치 아지매들'의 억척스런 목소리와 첨벙대며 튀어 오르는 고기들의 향연.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정겨운 문구의 플래카드 아래로 죽 늘어선 생선가게에선 도미, 넙치, 방어, 전복, 멍게, 오징어, 낙지 등을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 자갈치시장은 부산사람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생선 파는 아낙네들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원없이 들을 수 있음은 물론, 우리나라 최대 어시장다운 번잡함을 한껏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떠들썩한 연회에 슬며시 끼어들어 매운 먹장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다 보니 부산의 밤이 아스라이 깊어갔다.

등대와 바다가 빚어내는 아우라

다음날 아침, 영도다리를 건너 반 시간쯤 달려 영도등대에 이르렀다. 18초 간격으로 바다를 비추며 부산항으로의 뱃길을 안내해주는 고마운 등대. 언덕 위의 하얀 성채는 검푸른 바다빛깔과 어우러져 기묘한 아우라(Aura)를 빚어내고 있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망망한 바다. 여기가 바로 대한해협이란다.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대마도까지 보인다나. 옳거니, 그럼 왼쪽에서 덤벼드는 저 돌섬은 오륙도인 게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생뚱맞게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입안을 맴돈다.

그때였다. 오륙도 바위 틈새로 이글이글 앳된 해가 별안간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말갛게 씻은 얼굴. 그러고 보니 누군가의 얼굴을 닮았다. 문득 그 사람이 보고싶다. 아- 아- 여기는 영도등대. 들리나요? 지금은 2004년 12월 17일 금요일, 오전 7시 40분 54초, 55초, 56초. 기온 섭씨 4도, 날씨 흐림, 바람은 미풍. 듣고 있나요? 당신을 좋아합니다. 여기는 영도등대. 응답하라, 오버!

여행코스

부산역 - 용두산공원 - 중앙동 40계단 - 영도다리 - 자갈치시장 - 영도등대 - 오륙도

문의: 부산광역시 종합관광안내소(051-888-3527)

홈페이지: www.visit.busan.kr

세 가지 색 부산 이야기

●남포동 먹자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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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바닷가 자갈치시장 입구에는 매콤한 먹장어 구이를 취급하는 포장마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www.jagalchimarket.org). 원조 남포동 먹자골목은 약국거리 옆에 위치. 이곳에서는 순대, 충무김밥, 국수, 비빔당면 등을 1000∼2000원 대의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금정산 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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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일대는 행동하는 작가로서 우리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기고 96년에 타계한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 선생이 나고 자란 곳. 선생의 중단편 '사하촌'의 보광사, '옥심이'의 백암사, '묵은 자장가'의 청운사는 금정산 범어사와 관련이 깊다(051-508-3122 www.beomeosa.co.kr). 범어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로 꼽히는 명찰. 인근의 금정산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성(www.kumjungsansung.com). 산성마을에 들르게 되면 우리나라 민속주 1호인 산성막걸리와 40여년 역사의 흑염소불고기는 꼭 맛볼 일이다.

●달맞이 언덕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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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해수욕장과 해운대해수욕장 사이에 바다 쪽으로 반달처럼 튀어나와 있는 와우산(臥牛山). 그 산 중턱이 바로 소문난 달맞이 언덕이다. 달맞이 언덕의 해월정(海月亭)은 이름 그대로 달과 바다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

언덕길을 따라 근사한 카페 20여 곳이 자리 잡고 있다. 언덕길 뒤편으로는 '여명의 눈동자'를 집필한 김성종 작가가 운영하는 '추리문학관'이 단연 눈길을 끈다(051-743-0480 www.007spyhouse.com). 달맞이 언덕 아래는 숨겨진 비경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름하여 미포, 청사포, 구덕포. 싸고 푸짐한 조개구이는 보너스.

글/ 권경률 여행칼럼니스트

사진제공/ 부산광역시 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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