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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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가구 주택과 빌라 등 비(非)아파트 주인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전세 사기’ 혹은 ‘빌라 사기’가 속출하자 두려움에 전세 입주를 꺼리고 있어서다. 세입자 입장에선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잃지 않으려는 손실 회피의 본능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어찌 보면 전세제도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커진 결과다. 이러다 보니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런(run)’이 나타난다. 전세 런은 부도난 은행에서 돈을 앞다투어 빼가는 뱅크런처럼 세입자들이 전세시장을 떠나는 현상이다. 전세로 입주하더라도 전세보증보험에 확실히 가입할 수 있는 곳을 고르거나 아예 월세를 찾는다. 특히 세입자가 많이 거주하는 다가구, 다중주택에서 전세 거주를 꺼린다. 그만큼 잠재된 위험이 크다고 생각해서다.

회사원 김재원(가명·33) 씨는 다가구주택에서 전세를 구하려고 했으나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도무지 자신이 하는 전세 계약이 안전한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거래가 흔치 않은 주택의 특성상 매매나 전세 시세 포착이 힘들었다.

더욱이 선순위 세입자를 미리 알기도 어렵다. 현 제도하에서는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을 하기 전에는 스스로 전입세대를 열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난 뒤 이를 지참해야 마침내 주민센터에서 열람할 수 있다.

김 씨는 깡통전세를 미리 막고 싶은데, 이미 계약한 뒤에 전입세대를 확인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집주인의 말이 맞는지 사후 검증용일 뿐이다. 그는 전입세대확인서를 떼어본다고 해도 막막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가구나 다중주택일수록 선순위 임차인과 보증금 액수를 체크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입세대확인서를 통해 선순위 세입자는 누군지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세입자가 전세로 사는지, 월세로 사는지는 알기 힘들다. 선순위 보증금 총액 파악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등기부등본을 떼어봐도 근저당 내역은 알 수 있지만 대출금을 어느 정도 갚았는지 알 수 없다. 집주인이 감액등기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감액등기는 대출금을 상환, 해당 근저당 채권의 최고액을 낮추는 변경등기를 말한다. 김 씨는 “집주인의 양심만 믿고 계약해야 한다. 세입자는 보증금이 많을수록 위험한 사적 계약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다가구주택이나 다중주택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매우 강한 시장이다. 세입자로서는 ‘깜깜이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보 사각지대에 있는 주택부터 ‘안심 거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가령 다가구주택이나 다중주택은 계약 시 집주인에게 선순위 세입자와 보증 금액, 실제 대출금액을 계약서에 첨부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정보 우위에 있는 집주인에게 좀 더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사실 부동산시장에서 불확실성은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사기도 불확실성을 먹고 자란다. 그러므로 정부는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제거해서 시야를 맑게 해주는 정책적 접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세입자를 비롯한 시장 참여자들이 안심하고 거래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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