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 펴내

최근 신작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을 펴낸 김혜진 작가. ⓒ김승범/문학과지성사 제공
최근 신작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을 펴낸 김혜진 작가. ⓒ김승범/문학과지성사 제공

‘대박’을 꿈꾸며 30년 넘은 빌라를 샀는데 재개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대출 이자와 세입자들의 여러 요구를 감당해야 하는 여자는 머리가 아프다. 이혼 후 홀로 어린 딸을 키우며 임대아파트를 빌려 살고, 고작 200만원이 없어서 대부업체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여자도 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 분양단지 거주민들과 어울리려 하나 노골적인 차별에 부딪힌다.

이런 이야기를 품위 있게 들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혜진(40) 작가의 신작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에서 답을 찾아도 좋겠다. 우리 시대의 누추하고 옹색하고 처연한 단면, 특히 여성이라면 모를 수 없는 감정과 문제들을 다루는 솜씨에 감탄했다. 

김혜진 작가의 신작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사 제공
김혜진 작가의 신작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사 제공

혐오와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린 화제작 『딸에 대하여』(2017) 때부터 김혜진 작가는 여성의 삶과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리얼리스트였다. 이번 소설집에선 ‘집’을 주제로 재개발 신화, 임대아파트에 대한 낙인,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위계 등 계급의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미애’, ‘목화맨션’처럼 다양한 한국 중년 여성의 삶과 감정을 전면으로 다룬 이야기들도 귀하다.

철저한 자료 조사보다는 작가가 “여러 집을 거쳐오면서 만나온 다양한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도움을 얻어 쓴 이야기들이다. 대구 출신으로 서울로 오면서 이사만 8번 정도 다녔다. 

“여덟 편의 단편을 쓰는 동안 집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거주의 문제는 삶에서 중요한 문제잖아요. 그 시기에 또래들과 그런 고민을 많이 나누기도 했고요. 집이라고 하면 평수와 형태 같은 겉으로 보이는 면면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요. 소설을 쓰는 동안 집을 구성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점을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집’이 단순히 거주의 공간을 넘어서서 내 삶 전반을 아우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요. 집을 주제로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 신작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을 펴낸 김혜진 작가. ⓒ김승범/문학과지성사 제공
최근 신작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을 펴낸 김혜진 작가. ⓒ김승범/문학과지성사 제공

보여 주기 싫은 내 안의 속물성이 까발려질 때의 아찔함과 통쾌함을 선사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부동산 스릴러’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싶다가도, 이 남루한 집에서도 아름다운 폭죽을 터뜨리면서 웃는 사람들의 표정을 그려 보게 한다. 해설을 쓴 이소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려 김혜진 작가는 “가난을 추문으로 만드느라 가난한 사람들까지 추문 속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는 일, 그들의 삶에 추문 대신 ‘미래’와 ‘축복’을 선사하는 일”을 했다. 이 “사려 깊은 소설가”의 다음 행보에 언제나 큰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김혜진 작가는 “글이 잘 써질 때는 드물다”면서도 “이따금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원했는지, 글 쓰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떠올려 보곤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힘이 난다”고 했다. “모두에겐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모습이 단일하게 고정돼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여러 모습을 상상하고 발견하는 일이 저에겐 의미 있고, 또 어떤 순간에는 큰 위로가 됩니다. 글을 쓸 때 부담스럽고 힘든 순간들도 있긴 한데요. 그보다는 좋은 순간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올겨울 새 단편을, 새해엔 장편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혜진 작가는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짧은 소설집 『완벽한 케이크의 맛』, 중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경청』 등이 있다. 중앙장편문학상(2013), 신동엽문학상(2018),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2020), 대산문학상(2020), 젊은작가상(2021), 젊은작가상(2022), 김유정문학상(2023)을 수상했다. 『딸에 대하여』가 영화화됐다. 일본, 베트남, 대만, 체코, 영국, 프랑스 등 다수 국가에 해외 판권을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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