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인을 비롯한 이주민과 157개 국내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지난 10월22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집단학살 규탄 집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팔레스타인인을 비롯한 이주민과 157개 국내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지난 10월22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집단학살 규탄 집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10월7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폭격을 시작해 1만 1000명 이상이 숨졌다. 아기, 어린이, 여성, 노약자를 포함한 민간인 희생자도 다수 포함됐다. 세계적으로 민간인 학살 반대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서울 광화문에서 10월22일,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광장에서 10월28일에 팔레스타인 폭격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전미도서상 시상식에서 최종후보자 19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팔레스타인 학살 반대 성명에 참여했다.

나도 사실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스라엘이 1947년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했다. 팔레스타인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편입되기를 거듭하다가 1994년 자치권을 얻었다. 2006년 하마스가 정권을 잡자 이스라엘은 좁고 기다란 땅인 가자지구에 민간인 230만 명을 몰아넣고 봉쇄해서 일종의 수용소 상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은 이 가자지구에 폭격을 가한다. 물과 전기가 끊어지고 병원이 폭격당해 가자지구 주민들은 매일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점령하고, 가둬놓고, 죽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폴란드와 유럽 유대인들에게 저질렀던 짓이고, 2014년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2022년 전면전을 시작한 뒤 저지르는 짓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전쟁의 기본은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다. 일단 폭격이 시작되면 중립은 없다. 나는 학살에 반대한다.

팔레스타인인을 비롯한 이주민과 157개 국내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지난 10월22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집단학살 규탄 집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팔레스타인인을 비롯한 이주민과 157개 국내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지난 10월22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집단학살 규탄 집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한국 서울과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같은 구호를 외쳤다. “Ceasefire now”(당장 폭격 중단하라). “Free, Free Palestine”(팔레스타인에 자유를). 광화문 동화면세점 건너편 하늘에 팔레스타인 깃발이 펄럭이는 것은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한국 기업들이 이스라엘에 자동차처럼 얼마든지 군수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10월22일 집회에서 처음 알았다. 또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반도체 만드는 장비를 이스라엘에서 중점적으로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 집회에서 배웠다. 군수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을 팔고, 이스라엘 정부와 기업에 돈을 주고 거래를 계속하면 한국도 결국 간접적으로 가자지구 폭격을 지원하는 결과가 된다. 시민단체 관련자, 인권운동 활동가들이 한국 정부와 기업의 태도를 비판했다.

나는 발언을 들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한국 정부가 전쟁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가 “비우호 국가”로 낙인찍혀 버린 일을 생각했다. 한국은 어째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반대하면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에는 침묵하는가? 짙은 피부색의 중동 이슬람 국가 사람들은 폭격당해도 되고, 유럽 백인들은 침공당하면 큰일 나는가? 사람 목숨은 다 똑같다. 어린이와 노약자와 비무장 민간인은 보호받아야 하고, 물과 식량과 안전한 쉼터를 공급받을 권리가 있다.

정보라 작가가 지난 10월28일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광장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집단학살 규탄 집회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이 ‘Wolna Palestyna’(자유로운 팔레스타인), ‘Stop okupacji’(점령을 중단하라), ‘Stop Apartheidu’(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중단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가 지난 10월28일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광장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집단학살 규탄 집회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이 ‘Wolna Palestyna’(자유로운 팔레스타인), ‘Stop okupacji’(점령을 중단하라), ‘Stop Apartheidu’(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중단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가 지난 10월28일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광장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집단학살 규탄 집회에 참가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가 지난 10월28일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광장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집단학살 규탄 집회에 참가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폴란드 크라쿠프에서도 우리는 “폭격을 중단하라”,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울 것이다”(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 등 서울에서 외쳤던 것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광장을 행진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크라쿠프 사람들은 “크라쿠프와 가자, 공동의 문제다”(Kraków, Gaza, Wspólna sprawa = Krakow and Gaza, Mutual Issue)라고 외쳤다는 점이다.

크라쿠프는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점거하고 아우슈비츠 1-2-3 수용소를 세웠던 (그렇다, 광활한 땅에 수용소 단지가 세 개나 있었다) ‘오슈비엥침’과 68.7km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다. 아우슈비츠는 현재 박물관이 돼 학살과 강제노동과 점령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폴란드 사람들은 학살은 학살일 뿐, 인종청소는 피부색과 관계없이 인종청소일 뿐이며, 자신들이 겪었기에 다른 민족도 인종 학살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공동의 문제”라는 표현으로 외쳤던 것이다.

두 집회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인근 아랍 문화권 사람들도 많이 참여했다. 크라쿠프에서는 팔레스타인 이민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특이한 점은 폴란드 집회에는 머리를 가리지 않은 팔레스타인과 아랍권 여성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함께 참여한 남성들도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나도, 다른 참가자들도 모자나 목도리로 목과 머리를 꼼꼼히 감싸고 있어서 겉모습만 봐서는 다들 똑같아 보였다. 그 점이 나는 조금 좋았고, 머리를 가렸는지 말았는지 추워서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게 안심이 됐다.

정보라 작가와 안톤 허 번역가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3 전미도서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와 안톤 허 번역가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3 전미도서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그리고 미국으로 날아가서 안톤 허 번역가와 함께 대학 특강과 도서관, 서점 북토크 등을 하고 있었을 때 작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자였던 작가님께 메시지를 받았다. 올해 최종 후보자들이 시상식에서 가자지구 학살 반대 성명을 낼 계획인데 참여하겠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당장 동의했다. 그리고 안톤 선생님을 끌어들여 최종 후보자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모의(!)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시상식까지 닷새 정도 남아 있었는데, 논의는 아주 빠르고 놀랄 만큼 부드럽게 진행됐다. 『블랙아웃』(Blackout) 저자 저스틴 토레스(Justin Torres) 작가가 논의를 주도하고 교통 정리를 했다. 여러 의견이 오간 끝에 소설 부문이 가장 마지막에 발표되고 가장 많이 주목받으므로 소설 부문 수상자 발표 때 다 같이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템플 포크』(Temple Folk) 저자인 알리야 빌랄(Aaliyah Bilal) 작가가 쓴 성명의 목적과 의도가 우리 모두의 의견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데 다들 동의했기 때문에 빌랄 작가가 성명을 읽기로 했다. 그러다가 시상식 이틀 전에 소식이 유출돼 미국 언론들이 “최종 후보자들이 이스라엘에 반대한다, 반유대주의적인 성명을 한다”는 식의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괴롭히는 데 반대한다”며 전미도서상 후원을 취소한 기업도 있었다.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학살과 폭격을 중단하라는 것이 우리 입장이었지만, ‘노 코멘트’로 일관하기로 함께 결정했다.

시상식 당일, 저스틴 토레스 작가가 소설 부문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토레스 작가는 수상 소감을 짧게 끊고 우리를 모두 무대 위로 불렀다. 빌랄 작가가 앞에 나서서 성명문을 읽었다. 즉각적인 폭격 중단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촉구하며 “우리는 반유대주의와 반팔레스타인 감정과 이슬람 혐오에 동등하게 반대하며 (...) 계속되는 살육이 이 지역의 지속적인 평화 보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안다”고 차분하지만 명확하게 선언했다.

시 부문 최종 후보자 존 클라크(John Lee Clark) 작가는 시각장애인이자 청각장애인이라서,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박수 대신 발을 구른다고 했다. 빌랄 작가의 낭독이 끝나자 우리는 모두 무대 위에서 박수치며 발을 굴렀다. 그것이 시상식 전체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순간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학살과 폭격에 반대하며 우리는 전미도서상 무대가 꺼져라 발을 굴렀다.

올해 영국 부커상 후보에도 오른 폴 하딩(Paul Harding) 작가는 부커상 최종 후보자들과도 가자지구 학살 반대 성명을 조직해 줄 수 있냐는 문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 소식에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자들 모두 기뻐했다.

지난 20일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5일간 교전 중단에 합의했다. 그러나 가자지구에는 아직도 물과 식량과 의약품이 모자라고 기간시설과 주거시설은 파괴됐으며 어린이와 노약자와 장애인과 비무장 민간인들이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갇혀 고통받고 있다.

학살은 멈춰야 한다. 교전 중단이 아니라 완전한 전쟁 중단을 촉구한다. 무엇보다도 가자지구 시민들의 생존을 위한 물자지원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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