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공고 속아 집결지 끌려가
한 달만에 극적 탈출...10여 년 만에 고발
‘부산 알바사이트 성폭력’ 등 유사 범죄 반복
“마음 아파...한 번 들어가면 탈출 어려워
구직업체 검증·탈성매매 지원 늘려야”

최근 부산에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자며 여성 수십 명을 유인해 성매매 업소에 넘기고 성범죄까지 저지른 일당이 붙잡혔다. 전형적인 인신매매형 성착취 범죄다.

유사한 방식으로 경기 파주시 성매매집결지 ‘용주골’로 끌려갔다 탈출한 여성이 자신의 피해를 고발했다. 어리고 힘없는 여성들이 같은 사기와 착취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 피해자 신변 보호를 위해 기사의 모든 내용은 본인과 반성매매 활동가의 동의를 거쳐 공개한다. 

거짓 구인 공고에 속아 경기 파주시 성매매집결지 ‘용주골’로 넘겨져 성착취를 겪은 A씨를 지난 18일 만났다. ⓒ이세아 기자
거짓 구인 공고에 속아 경기 파주시 성매매집결지 ‘용주골’로 넘겨져 성착취를 겪은 A씨를 지난 18일 만났다. ⓒ이세아 기자

“주간고정제 월 300, 야간고정제 500, 단순노무, 좌식근무. 그냥 공장 구인 공고 같았어요. 대형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었고요. 면접 때도 ‘성매매’, ‘유흥’ 이야기는 전혀 없었어요.”

2010년대 중반, 공장에서 일하던 A씨는 앉아서 일할 수 있고 월급을 더 준다는 말에 이직을 결심했다. 그해 3월 여행 가방에 짐을 챙겨 알선업자와 차를 타고 파주로 갔다. 성매매 집결지에 도착해서야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웃소싱 업체 관계자인 줄 알았던 여성은 돌변했다. “교통비 100만원을 내래요. 다른 데 취업해서 갚겠다고 해도 안 통해요. 캐리어를 빼앗겼어요. 저는 돈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취업준비생이었어요. 갑자기 빚이 생겼다니 무서웠어요.”

A씨는 업주들에게 소지품을 빼앗기고 성판매를 강요당했다. 업주들은 성매매 여성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여성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바깥에서 자물쇠로 문을 잠갔다. 외출하겠다고 하면 휴대전화를 뺏고 돌아와야 돌려줬다. 월경, 통증 등으로 쉬겠다고 하면 “다른 언니들은 다 일하는데 어떻게 너만 편의를 봐주냐, 엄살이 심하다”며 강제로 일을 시켰다. 병원에 보내지 않고 동네 ‘주사 이모’를 불러 정체불명의 약물을 강제로 맞게 했다. “일하기 싫다고 할 때마다 빚은 언제 갚냐, 고소할 거라고 했어요.”

같은 처지의 동갑내기 피해자도 만났다. “자기도 대형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구인 공고를 보고 용주골에 왔고, 도망가기 쉽지 않다고 했어요.”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반성매매 활동가들에 따르면 용주골 집결지 인신매매 성착취 피해자는 한둘이 아니다.

성구매자들은 “군인, 유부남, 결혼식 전날 ‘총각파티’를 하러 오는 남자” 등 다양했다. “때려 달라, 침 뱉어 달라 등 비정상적 요구를 했다. 콘돔을 빼겠다면서 거부하면 그만큼 돈을 까겠다고 협박”했다.

업주들은 월급날이 언제인지, 얼마를 왜 떼고 주는지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A씨는 오히려 비상식적인 지각비, 결근비 등을 물어야 했다.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생각지도 못한 빚이 계속 쌓여요. 개인적인 일로 쉬면 벌금 50만원을 내라는 식이죠.”

폭력은 일상이었다. “한 업주가 도망가다 잡힌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니며 폭행하는 걸 봤어요. 저한테 ‘너도 도망가면 이렇게 될 수 있어. 도망갔다가 내가 깡패 시켜서 두들겨 패서 사람 만들어 놓은 아가씨도 있어’라고 했어요. 무서웠어요.”

A씨는 업주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운 좋게 한 달 만에 탈출했다.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고소는 두려웠다. “부끄럽고 창피했어요. 잊고 살려다가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용주골 성매매 여성들 인터뷰를 보고 화나서 잠을 못 잤어요. 제 경험과 완전히 다른 왜곡된 내용이었어요.”

A씨는 파주시에 연락해 피해 경험을 털어놓았고, 시의 연계로 상담소의 지원을 받고 있다. “트라우마를 잊고 싶어서, 다른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며 인터뷰에 나섰다. 신원 노출을 피하고자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답답해 했다. “내가 강력범죄자도 아니고 왜 남이 나를 알아볼까 두려워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에 응해야 하나 속상하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고 당당해야 하는데....”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여성단체연합 등 37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알바사이트성폭력피해사건대책위원회는 지난 9월26일 오전 11시께 부산 동래구 부산성폭력상담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여성신문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여성단체연합 등 37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알바사이트성폭력피해사건대책위원회는 지난 9월26일 오전 11시께 부산 동래구 부산성폭력상담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여성신문

알선업자들이 ‘편한 고수익 일자리’로 위장해 여성들을 성매매로 끌어들이는 행태는 여전하다. SNS 등에선 ‘출퇴근 자유’, ‘초보환영’, ‘당일지급’, ‘며칠만 일하고 휴가비 벌어 가라’ 식의 홍보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러 플랫폼이 구직자들의 피해 방지를 위한 주의사항과 자체 신고 방법 등을 안내하곤 있으나 더 구체적인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 등은 성매매 알선을 위해 구직자에게 거짓 조건을 제시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직업안정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부산 알바사이트 성폭력 사건’을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는 A씨는 “한번 들어가면 그들(알선업자)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이상 나올 구멍이 없다”고 했다. 알바사이트를 포함해 구직자들이 성매매에 노출되지 않도록 검증·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업주들의 가스라이팅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이 일이 아니면 어디서 일할 수 있을까 무기력해지고 세상을 발을 딛기를 무서워해요. 낙인을 깰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A씨는 “병원비, 직업훈련 지원 등 탈성매매 자활 지원 제도가 많다. 언니들이 용기 있게 나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탈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취업 연계와 적응을 돕는 지원제도가 더욱 강화되면 좋겠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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