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왼쪽부터) ‘2023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진흥부문 수상자 안부영 KISTI 과학데이터교육센터장, 산업부문 수상자 김희정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센터 시니어 엔지니어, 학술부문 수상자 공수현 고려대 물리학과 부교수.
(왼쪽부터) ‘2023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진흥부문 수상자 안부영 KISTI 과학데이터교육센터장, 산업부문 수상자 김희정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센터 시니어 엔지니어, 학술부문 수상자 공수현 고려대 물리학과 부교수.

물리학, 조선해양, 교육·지원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여성들이 ‘2023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고성능 반도체 개발의 새 가능성을 열었고, 뛰어난 친환경 선박 개발 성과를 거뒀고,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담당관으로서 다양한 세대·현장 간 다리가 돼 왔다.

이런 소식이 들릴 때면 ‘이제 유리천장은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여성들의 성취가 인정받는 사회가 꼭 여성들에게 문을 쉽게 열어주는 사회는 아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 인력 신규 채용자 중 여성 비율은 이제 30%를 넘겼다. 그나마도 2012년 24.6%에서 2021년 30.7%로 늘었다(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2021년도 여성과학기술인력 활용 실태조사).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이 보이지 않는 건 그대로다. 인구는 줄고 기술 혁신은 빨라지는 시대, 성차별과 편견을 깨고 여성 인재에게 활짝 문을 여는 사회로 나아갈 때다. 

안부영(61)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과학데이터교육센터장. ⓒ안부영 센터장 제공
안부영(61)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과학데이터교육센터장. ⓒ안부영 센터장 제공

진흥부문 수상자 안부영 KISTI 과학데이터교육센터장
“여성 과기인 경력개발·일·생활 균형 확산, 국가적 이익”

안부영(61)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과학데이터교육센터장은 2013년부터 10년째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을 위한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양성평등·워라밸 조직문화 활성화, 여성 과기인 고충 처리, 연구 활동 멘토링 등을 맡아 왔다. 또 이공계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슈퍼컴퓨팅·빅데이터·인공지능 교육 개발·운영, 미취업 청년층 대상 빅데이터 분석가·소재 연구 데이터 전문인력 양성까지 맡아 다양한 세대와 산학연을 잇는 다리가 돼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스템공학연구소(SERI)를 거쳐 2001년 KISTI에 입사했다. “당시 저는 어느 부서에 가도 홍일점이었어요. 이제 우리 조직 어디에도 여성이 홍일점인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 연구인력 비율은 20%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 센터장은 “현장에서 만나는 교육생은 여전히 남성 비중이 높다. 여성들이 이공계에 진출하고 지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과학기술 분야별 인재 양성 교육, 재직자들의 신기술 역량 강화 교육, 경력단절 여성 과학기술인의 복귀를 위한 재교육 등을 강조했다.

일-생활 균형을 위한 조직문화 확산과 정책 시행 확대도 강조했다. “유능한 여성들이 출산·육아의 적합한 해법을 못 찾고 연구 현장을 떠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일-생활 균형을 위한 제도가 확대되면 그 혜택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가 누리게 될 겁니다. 여성들이 과제 책임자나 보직을 맡을 기회가 더 많아지고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단순히 개인 또는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이익을 가져올 겁니다.”

“세대·조직·성별 간 갈등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특히 MZ 세대와의 소통은 매우 중요합니다. 근무 여건도 일-생활 균형 정책으로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일보다는 생활의 여유와 풍요를 즐기려는 경향이 커진 지금 세대 간 생각의 차이 극복과 해소가 필요합니다.”

25개 출연(연) 여성과기인담당관협의회장으로 활동했던 안 센터장은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각 기관의 여성협의회가 활성화돼 여성 과기인들이 만나 생각을 공유하고 갈등을 해소·극복할 지혜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여성과학기술인담당관 역할을 하며 기관 안팎의 동료·선후배들과 교류했어요. 각 기관의 제도와 규정을 비교하며 서로의 기관에 적용하려 노력했고 실제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네트워크가 많은 힘과 위로와 격려가 됐습니다. 여러분들도 지속적인 네트워크와 커리어를 쌓고, 많은 우수한 여성들이 빛을 발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현재 내가 맡은 업무와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집중해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김희정(47)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센터 시니어 엔지니어. ⓒ김희정 엔지니어 제공
김희정(47)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센터 시니어 엔지니어. ⓒ김희정 엔지니어 제공

산업부문 수상자 김희정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센터 시니어 엔지니어
특허만 40개...24년간 선박 개발 한우물 파

24년간 선박 개발 한우물을 팠다. 김희정(47)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센터 시니어 엔지니어는 매년 1척 이상의 선박을 설계하고 시운전, 성능 검증까지 맡는 전문가다. 그간 국내에서 등록한 선박 기술개발 관련 특허만 40개다. 

자동/체계적 설계 기반 삼성 선형설계시스템(SPeN)을 최초로 개발했다. 가상현실, 딥러닝 등 최신 기술을 선형 개발에 처음으로 적용, 선형설계 기술력 향상에 기여했다.

기존 선박보다 오염물질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선박’ 개발에도 두각을 보였다. 선형, 추진기, 에너지 절감 장치를 최적화해 연비 성능이 뛰어난 친환경 LNG 선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LNG선 40척 수주, 매출 약 440억원 기여를 인정받았고, 2023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산업부문)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누렸다.

보람과 성취감이 그의 원동력이다. 길이 300m 대형 선박이 컴퓨터로 디자인한 그대로 완성돼 바다에 나갈 때면 짜릿하다. 몇 년 전 북극 얼음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을 개발하고 직접 한 달간 북극 항해에 참여하기도 했다.

“오늘의 영광은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 덕분입니다. 앞으로 여성 진출이 희박한 제조업 분야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도 힘쓰겠습니다.”

조선해양 업계의 유리천장이 지금보다 더욱 단단하던 시절 업계에 뛰어들었다. 여전히 “여성 관리자는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라며 “조선해양 분야에서도 우수한 여성 관리자가 많이 배출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친환경 고효율 선박의 수요가 늘고 있지만 국내 친환경 선박 보급률은 0.1%로 미미한 수준이다. 김 엔지니어는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과 보급 확대를 위해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소형 조선소에서 이러한 기술 개발 비용을 부담하기는 어렵고, 국가연구소에서 개발 후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수한 기술은 우수한 인력에서 나오고, 우수한 인력의 확보는 연구환경 개선과 처우개선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과학기술인들의 연구 환경 개선과 처우개선에 대해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전했다. “여성이라서 도전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선입관이거나 용기가 없어서 고정관념과 싸우지 못하고 안주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길 바랍니다. 후배들도 과학기술 분야에 자신 있게 도전하고 후회 없이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공수현 고려대 물리학과 부교수. ⓒ고려대 제공
공수현 고려대 물리학과 부교수. ⓒ고려대 제공

학술부문 수상자 공수현 고려대 물리학과 부교수
2차원 반도체 이용 빛 제어 연구로 주목받아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초고속통신 등을 우리 일상에 도입하려면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프로세서가 지금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고성능 반도체 연구·개발이 활발한 이유다. 특히 2차원 반도체가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 대신 얇은 원자층으로 이뤄진 반도체로 얇은 두께, 투명성, 유연함 등 장점을 갖췄다.

공수현(36) 고려대 물리학과 부교수 연구팀은 이 2차원 반도체와 관련된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반도체는 직접형과 간접형으로 나뉘는데, 빛과 상호작용을 잘하는 직접형 반도체 물질에서만 레이저의 발광·발진이 관측됐다. 반면 간접형 반도체를 이용해 레이저를 만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공 교수 연구팀은 외부 광공진기와의 결합 없이 2차원 반도체 자체적으로 빛을 가둘 수 있었고, 2차원 반도체 디스크 구조를 이용해 그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간접형 반도체 레이징 현상을 처음으로 관측했다. “큰 기술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는 평을 받았다.

“그래핀(2차원 반도체에 이용되는 물질)처럼 스카치테이프로 한층 한층 박리되는 2차원 반도체를 이용해 빛의 파장 두께의 1/50 수준인 얇은 2차원 반도체를 이용해 빛을 가두고 제어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빛을 2차원 반도체를 이용해 아주 작은 공간에 가두게 되면 소자 크기가 작아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재미있는 새로운 물리현상이 관측될 수 있습니다.”

공 교수는 “연구는 99번의 실패 끝에 1번 성공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자랑스러운 순간을 쫓기보다는 항상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과정 자체에 재미와 만족감을 느끼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제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논리와 정답이 명확하고 성과가 객관적이라는 점입니다. 여전히 여성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낮을 순 있더라도 객관적인 성과를 많이 쌓는다면 오히려 기회는 더 많을 수 있습니다.”

후진 양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펼쳐 왔다.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많은 후배들의 멘토로 나섰다. “여성 후배들을 만나면서 이제는 성 불평등과 젠더 이슈 문제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점점 인식과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여학생들의 미래의 결혼과 육아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사회적 시선이 주는 본인의 역할에 본인을 스스로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여성을 저평가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본인이 본인을 저평가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본인의 가능성을 너무 낮게 생각하지 말고 본인이 제일 원하고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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