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과 여성농민’ 국회토론회
수해 피해 이후 트라우마 경험하고
저임금 돌봄노동으로 밀려나지만
그럼에도 ‘정의로운 농업 전환’ 앞장
“성인지적 농가실태조사 실시해야“

지난 5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인근 밭에서 농민들이 수확한 마늘을 망에 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5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인근 밭에서 농민들이 수확한 마늘을 망에 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나 폭염 등 재난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으며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 농업 종사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성 농민에게 재난 피해의 어려움이 집중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왔다.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후재난과 여성농민’ 토론회에서는 이번 여름 극심한 수해나 병충해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 토론회는 서삼석,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주최하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이 주관했다. 

충남 논산에 귀농한지 8년차를 맞은 유화영 농부는 올여름 극심한 폭우로 농작물 수해 피해를 입었다.

그는 “이번 여름비에 제가 농사짓는 2200평이 손바닥 크기도 남지 않고 다 잠겼다. 당시 단호박 2동이 막 수확 시작했고, 10분의 1이 수확된 상태였다. 하우스 그늘에 1000톤의 양파도 말리고 있는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그는 물이 허리까지 차오를 때까지 농작물을 옮겨야 했다. 유씨는 “비가 들이치기 시작하니 너무 공포스럽고 너무 절박하고. 올해 53세인데 태어나서 그렇게 절박한 심정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면서 울먹임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그때의 악몽은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 유씨는 “9월 추석 직전 비가 많이 온 적이 있었다. 트라우마처럼 겁이 나더라. 밤 9시 넘었는데 하우스를 떠나지 못했다”며 “앞으로도 비가 오면 그런 마음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15일 '기후재난과 여성농민' 국회토론회에서 충남 논산에 귀농한지 8년차를 맞은 유화영 농부가 수해 피해 사례를 발표하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수진 기자
15일 '기후재난과 여성농민' 국회토론회에서 충남 논산에 귀농한지 8년차를 맞은 유화영 농부가 수해 피해 사례를 발표하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수진 기자

올해 경남 거창에서 농작하던 사과 대부분에 탄저병 피해를 입었던 김태경 농부도 비슷한 막막함을 경험했다. 그는 “그동안 태풍이 와도 ‘농사는 반은 하늘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감정이 크게 동요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썩은 사과 던지는 소리가 비오는 소리처럼 들리니 감정이 평온하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저임금 돌봄노동, 임직이라도 알아볼까 이런 생각하면서 (농업을 계속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 현장에서 많은 여성 농민들이 겸농을 한다”며 “지금도 농업에 성비 차이가 심각한 상황이다. 앞으로도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여성농민들이 좌절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가장 취약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환경을 위한 농업 전환을 시도하고 지속해오고 있는 주체이기도 하다.

김정열 비아깜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은 ‘기후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자 독점이나 탄소를 대량 배출하는 대기업들이 내세우는 환경 대책은 “그린워싱”이라고 지적했다. 또 ‘위기는 기회’라며 열대과일 경작을 독려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농민들에게 모종, 묘목 파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 주도로 대규모 단지를 유치하는 스마트팜도 △고비용 △고에너지 △반생태적 △기업의 진출 통로 등의 이유를 들어 “농민들을 또다시 빚의 구렁텅이로 떠미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농업에도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김 위원의 주장이다. 그는 대안으로 △‘식량주권’ 관점의 농업 정책 추진 △에너지와 물을 덜 쓰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농생태학’ 적용 △종다양성, 생물다양성 보존 등 3가지를 제안했다.  

올여름 수해 피해를 입은 전북 익산시 한 농가의 모습. (사진=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공)
올여름 수해 피해를 입은 전북 익산시 한 농가의 모습. (사진=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공)

그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에서 앞장서 토종 종자를 확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여성농민은 생태적 지혜로 살아온 사람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공동체를 돌보는 사람들이다”고 강조했다.

오미란 젠더&공동체 대표는 “누가 오염의 주체인가, 원인인가를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 누가 피해자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확장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어진 토론에서는 기후재난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등은 민간보험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고 보장해야 할 문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김 위원은 “현재 민간보험은 내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못할뿐더러 올바른 방식도 아니다. 왜 정부는 여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개인 농민에 지게 만드나”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태경 농부도 “보험 설정 자체도 문제가 있고, 최저생산비 될까 말까 한 비용이 설정돼 있다”며 “재난의 모든 책임을 농민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는 온 국토를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근본적 위기의식을 갖고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은 정부와 국회에 △기후재난 수준과 피해규모 성인지적 측면을 함께 고려한 전면적 농가실태조사 실시 △농생태학 실천을 위한 토종종자 채집 △여성농민을 기후재난 대응 주체로 설정 △국내 식량 자급률을 높여 식량주권 실현 등의 정책을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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