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현진씨, 이은의 변호사, 유진목 작가, 천희란 작가
‘허위 미투’ 주장 박진성 시인 실형 선고
여성문인들, 소송비 모금하고 방청연대
느슨하지만 끈끈한 “모범적 연대 사례”
“재판 계속 참석하니 재판부가 활자 속
피해자 아닌 ‘살아있는 사람’으로 봐”
피해자들, 두려워 말고 목소리 내길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박진성(45) 시인의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피해자 김현진씨와 피해자 변호사, 연대자들이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천희란 작가, 김현진씨, 이은의 변호사, 유진목 작가. ⓒ여성신문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 박진성(45) 시인의 피해자 김현진씨와 피해자 변호사, 연대자들이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천희란 작가, 김현진씨, 이은의 변호사, 유진목 작가. ⓒ여성신문

17세 청소년이었던 습작생에 성희롱을 일삼고, 피해자가 이를 온라인상에 고발하자 ‘허위 미투’라며 피해자를 ‘무고범’으로 몰아가는 등 지독한 2차 가해를 자행했던 박진성(45) 시인이 지난 8일 대전지방법원에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1년 8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피해자의 최초 고발 이후 7년, 그중 재판만 4년을 거친 결과였다. 

가해자가 인터넷에 유포한 신상정보로 ‘98년생 김현진’으로 알려진 피해자 곁에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경험자로 성범죄 피해자들의 편에서 싸워온 이은의 변호사, 박진성의 또 다른 피해자이자 십시일반 소송비를 모았던 유진목 작가, 거의 모든 재판을 방청하며 기록을 남기고 피해자에 힘을 보태온 천희란 작가가 그들이다. 지난한 싸움 끝에 ‘승리의 기쁨’을 거둔 이들을 11일 여성신문사에서 만났다. 

2016년 10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피해자 김현진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시작된 ‘문단 내 성폭력’ 운동에 동참하고자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혔다. 2015년 문예창작과 진학을 꿈꾸며 박진성 시인에게 시강습을 받던 중 당했던 성희롱에 대해서였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내용을 통해 박씨는 본인에 대한 것임을 알았고 피해자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가해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하고 ‘치료비를 대주겠다’ ‘무료로 강습을 해주겠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모두 거절했고,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진씨 외에도 박씨를 고발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여느 ‘미투’의 가해자들이 그랬듯 가해자의 태도는 갑자기 돌변했다. 그는 메신저 대화 내역 등을 짜깁기해 피해자를 ‘무고범’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를 성찰 없이 받아들인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는 2차 가해를 계속했다. 그런 와중에도 현진씨는 대응하지 않을 요량이었다. 그럴 경제적 여유도 없었고, 자기 일상을 살아가기 바쁜 대학생이었으며, 무엇보다 박씨와 나눴던 카카오톡 메시지 등에 성희롱 발언과 그에 대한 사과 등 증거가 남아있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가장 ‘만만했던’ 피해자가 ‘잔 다르크’가 되기까지

그러는 사이 가해자는 자신에 대한 ‘문단 내 성폭력’ 고발 내용을 보도했던 한 일간지에 민사소송을 걸어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현진씨는 2심이 진행 중일 때가 돼서야 ‘도와줄 수 있냐’는 해당 언론사 기자의 연락을 받고 그 사실을 알게 됐다. “혼자였으면 당연히 어리고 돈이 없으니 못하겠지만 신문사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들 소송을 돕기로 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증언은커녕 참석조차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신문사와 가해자 간의 ‘합의’ 결정으로 소송은 허망하게 끝났고, 가해자는 이를 통해 ‘언론사의 보도는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근거를 얻었다. 이후 박씨는 “게임처럼 하나하나 클리어”하듯 판결문이라는 ‘무기’를 휘두르며 다른 언론사들을 상대로 연달아 소송을 걸었고, 이겼다. 그 마지막 ‘타깃’이 ‘어리고 돈이 없는’ 그래서 가장 ‘만만하게’ 여겼던 최초 고발자 현진씨였다고 연대자들은 입을 모았다.

판세는 느리지만 조용히 바뀌고 있었다. 가해자가 날뛰는 동안 피해자와 연대자는 다른 소송이나 피해 고발 경험을 토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박씨의 또 다른 피해자였던 유진목 작가는 자신의 소송을 위해 피해사실을 증언해 줄 사람을 수소문하다 현진씨와 연락이 닿았고, 역으로 그의 민사소송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유 작가는 “문단 안에서 (이 사건에) 다들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런 재판을 할 거고 돈을 내십시오’라고 얘기를 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주변 문인들에 돌린 연락으로 이틀 만에 현진씨의 소송 대응을 위한 초기비용이 마련됐다.

이 변호사는 “유진목이라는 사람이 없었으면 애초에 이 소송을 할 수가 없었다”며 “현진 씨 사건이 많은 것에 빚지고 있고, 혹은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순서가 절묘하게 토대 위에 쌓이고 쌓이면서 가장 취약했던 피해자, 가장 싸우기 어려웠던 피해자가 오히려 마지막에 아군을 다 구하는 ‘잔 다르크’처럼 된 것”이라고 평했다.

그렇게 민사 1심에서는 1100만원, 민사 2심에서는 피해자에 33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형사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최근 이어진 2심에서는 징역 1년 8개월 실형이 선고되기에 이르렀다. 민사 1심에서 패소하자 박씨는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를 확인 없이 ‘받아쓰기’했던 일부 언론이나 유명인들에 의해 ‘허위 미투로 무고한 사람을 자살로 몰아갔다’는 식의 2차 가해가 심화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그런 지점에서 “대한민국 언론이 사과해야 하는 사건”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 박진성(45) 시인과의 민사소송 2심이 진행됐던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김현진씨가 연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현진씨 제공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 박진성 시인과의 민사소송 2심이 진행됐던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김현진씨가 연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현진씨 제공

피해자중심적 재판으로 ‘공감의 언어’된 법

현진씨에게는 그래서 이번 판결이 더 뜻깊다.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관련 판결에서는 이례적으로 실형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그는 “제가 어리고 일반인이다 보니 ‘명예’가 별거 아니라고 판단될까봐 걱정됐다. 근데도 실형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언론이나 당연하게 2차 가해한 사람들의 처벌까지 박진성이 같이 받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천 작가와 유 작가는 피해자의 신분증을 유포하고 ‘허위 미투’라며 2차 가해를 선동하는 등 “클릭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피해자에게 미친 악영향이 크고 죄질이 나쁘다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판결이 나온 데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한 재판부가 있었다. 변호사와 연대자들은 이번 형사 2심 판결이 “모범적”이고 “감동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천 작가는 “현장에서 들었는데 솔직히 너무 감동적이었다”며 “1심의 양형 기준을 반박했을 뿐 아니라, 증거중심주의 때문에 양형에 포함할 수는 없으나 의심되는 가해자의 지점까지도 지적했다”고 전했다. 

또, 재판부는 단순히 이 사건뿐만 아니라 ‘형사 합의는 근본적으로는 피해자의 진정한 용서를 기반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 ‘(형사)공탁 제도라는 것이 아주 엄격하게 양형에 반영되어야 한다’ 등 법 절차 내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설명했다.

유 작가도 “피해자가 피해호소를 법정에서 정확히 할 수 있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며 “법이 ‘공감의 언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공감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동적인 재판인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변호사는 “모범적인 판결문”이라며 “처음에는 현진 씨 개인의 피해 사건이었는데, 판결문도 그렇고 이 사건의 끝이 다른 사람에게 다시 기여하는 걸로 끝난다. 이 판결문은 김현진의 삶에(만) 기여하는 판결문이 아니라 김현진의 삶에‘도’ 기여하는 판결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가해자 감옥가면 피해자 일상은 저절로 회복”

재판부의 태도가 피해자 친화적으로 변할 수 있었던 건 당사자와 조력자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다. 십시일반 소송비를 모았던 피해자이자 여성문인, 재판에 피해자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변호사, 거의 모든 재판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직접 목소리를 낸 피해자, 늘 그 자리에 함께하며 피해자를 지지해 온 연대자들. 이 변호사의 표현에 따르면 “21세기에 연대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아주 모범적인 사례”다.

피해자였던 현진씨는 법정에 서서 목소리 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민사 1심, 2심이랑 형사 1심, 2심(재판)에 한 번 빼고 다 참석했다. 변호사님께서도 제가 발언할 기회를 얻고자 많이 노력하셨다”며 “재판부가 저를 ‘활자 속에서만 존재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대우하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 다른 피해자들의 사건에서도 법원의 이같은 태도가 애원해서 얻어내야 하는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길 바라고 있다.

현진씨는 “실형이기 때문에 정의라고 하는 게 아니라, 보통 가해자 편에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던 재판부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이 판결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이 재판이)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존중할 수 있는 선례가 되었으면 싶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도 “정보통신망법상 사건은 원래 피해자 변호사가 안으로 배석이 안 되는데 계속 (자리를 달라고) 주장했고, 형사법정에서 1심, 2심 때 이 요구를 다 받아줬다”며 다른 사건들에서도 “이렇게 돼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진 씨는 선고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찬바람을 맞으며 비로소 ‘가해자 없는 세상’을 실감했다. 피해자들이 ‘엄벌’을 주장하는 건 단순히 당한 만큼 가해자를 응징하겠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자체가 이들에게는 비로소 ‘평범한 일상’의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일상은 가해자가 감옥에 가면 저절로 이루어지게 돼요. 재판 1달에 한 번씩 안 가도 되는 거. 그런 게 일상인데.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회복도 돼요. 출근하는 길에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이렇게 걷고 있는데, 그냥 저는 일상이에요. 출근해서 또 일하고 이럴 텐데 박진성은 감옥에 있어. 이게 내가 원했던 거구나. 그냥 이게 일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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