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노조, 전국학교영양사 실태조사 발표
10명 중 8명 “업무 과도하게 많다”
응답자 95% “정신질환 발생할 수 있어”
조리사와 같이 일하고 같은 질환 앓는데
‘직접 조리’ 따져 폐암 산재 승인 어려워
격무 와중 영양교사와 임금 격차도

학교 급식실의 환기시설 미비로 인한 조리사들의 폐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음에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영양사들은 여전히 폐암과 업무의 연관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 급식실의 환기시설 미비로 인한 조리사들의 폐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음에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영양사들은 여전히 폐암과 업무의 연관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 영양사 대부분이 조리실 및 식당에서 일하며 식재료 썰기, 볶고 튀기기 등 조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근로복지공단은 업무공간이 분리돼있고 조리 업무를 직접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양사의 폐암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해경 영양사)

학교 급식실 영양사들이 고유 업무 외에도 조리·안전 등 급식실 업무 전반을 총괄하며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양사들은 근무여건 개선과 함께 환기시설이 미흡한 조리실에서 근무하다 폐암에 걸린 영양사의 산재를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영양사는 안전·행정 전문가 아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는 지난 9월 21일부터 27일까지 전국 시도교육청 산하기관 유·초·중·고·특수학교 영양사 1044명을 대상으로 ‘학교 영양사 근무건 실태조사’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는 지난 9월 21일부터 27일까지 전국 시도교육청 산하기관 유·초·중·고·특수학교 영양사 1044명을 대상으로 ‘학교 영양사 근무여건 실태조사’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는 지난 9월 21일부터 27일까지 전국 시도교육청 산하기관 유·초·중·고·특수학교 영양사 1044명을 대상으로 ‘학교 영양사 근무여건 실태조사’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영양사들은 고유 업무 외에 △산업안전보건 관련 업무 △산재 발생 보고 등 후처리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안전점검 후 개선조치 △급식실 결원 시 대체인력 충원 △급식실 환경개선 △전기공사 등 사실상 급식실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전남에서 근무하고 있는 24년차 전현옥 영양사는 “영양사는 영양 전문가지 안전·행정 전문가가 아니다. 진짜 책임자는 학교장 또는 담당 교직원인데도 영양사가 모든 일을 떠맡고 있다”고 토로했다. 

급식실의 고질적 문제인 인력난으로 대다수 영양사들은 식재료 썰기, 볶고 튀기기 등 조리 및 배식 업무에도 투입되고 있다. 하루 평균 조리실이나 식당에서 2시간, 길게는 4시간 이상 현장 업무를 수행하는 영양사 비율이 66.4%에 달한다. 

격무에 시달리는 탓에 절반 넘는 영양사들은 하루 평균 30분~2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이에 응답자 83.3%는 “부여받은 업무가 과하다”고 답했으며, 업무뿐 아니라 학교 내 갑질, 부당업무 지시, 외부 민원 등에도 시달려 “영양사 직무 특성과 근무환경으로 불면·우울증·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이 95%에 달했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응답자 83.3%는 “부여받은 업무가 과하다”고 답했으며, “영양사 직무 특성과 근무환경으로 불면·우울증·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이 95%에 달했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격무에 시달리는 탓에 절반 넘는 영양사들은 하루 평균 30분~2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응답자 83.3%는 “부여받은 업무가 과하다”고 답했으며, 업무뿐 아니라 학교 내 갑질, 부당업무 지시, 외부 민원 등에도 시달려 “영양사 직무 특성과 근무환경으로 불면·우울증·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이 95%에 달했다.

폐암 산재 승인 ‘하늘에 별따기’

학교 급식 영양사들이 환기시설 미비로 ‘폐암 발병률’이 높은 노동 환경에 노출돼 있지만, 산업재해 승인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3월 전국 학교 영양사 중 55세 이상·5년 이상 근무자 1079명이 폐CT 검진을 받았고, 이중 폐암 확진자는 3명, 폐암 의심자는 4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양성결절이거나 경계선 결절에 걸린 영양사는 20%에 달했다.

급식실 내 조리실과 영양연구실 모두 환기시설 부족으로 조리과정에서 나오는 매연이 빠져나가지 않는데, 이로 인해 폐질환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 영양사들의 설명이다.

앞서 폐암에 확진된 조리실무사 117명(10월 16일 기준)은 발병 인과성을 인정받아 산재를 승인받기도 했다.

학교 급식실의 환기시설 미비로 인한 조리사들의 폐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음에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영양사들은 여전히 폐암과 업무의 연관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 급식실의 환기시설 미비로 인한 조리사들의 폐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음에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영양사들은 여전히 폐암과 업무의 연관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명목상 직접 조리사로 분류되지 않는 영양사는 폐암에 걸려도 산재를 인정받기 어렵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급식실에서 15년가량 근무하다 폐암에 확진된 경남 영양사 A씨는 2차례에 걸쳐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조리과정에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조리실무사와 달리, 영양사인 A씨가 조리에 참여한 정도와 주방에 머무는 시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철원에서 근무하는 정해경 영양사는 “학교 영양사 대다수가 조리 업무를 맡고 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영양연구실 문을 열어놓는 탓에 조리 매연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근로복지공단이 급식실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그야말로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일 해도 영양교사는 추가 수당 

강성희 진보당 의원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14일 서울 영등포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학교 영양사 실태조사 및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강성희 진보당 의원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14일 서울 영등포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학교 영양사 실태조사 및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영양사들은 교육당국이 영양사들의 격무와 열악한 근로환경뿐 아니라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영양교사와의 임금 격차도 외면하고 있다며 처우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난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영양사의 월 급여액은 257만3000원으로 집계됐다.

전현옥 영양사는 “영양사는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영양교사에 비해 50~70% 상당의 임금을 받고 있다”며 “영양사 또한 식생활지도 수당 등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헀다.

경남에서 근무하는 김민소 영양사도 “국가인권위원회와 2021, 2023년 국회 예산안 부대의견 모두 영양사에 대한 적정 규모의 식생활지도 수당을 권고했다”며 “친환경 무상급식을 위해 학교 영양사들의 처우 개선에 이제라도 교육 당국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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