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대그룹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대그룹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다국적 기업인 ‘쉰들러 홀딩 아게’(Schindler Holding AG·쉰들러)와의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을 끝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난 7일 만료를 앞둔 자사주 신탁 계약 중 일부 물량에 대해 만료 기간을 연장했다.

적대적 지분과의 경영권 분쟁은 누그러진 모양새지만 자사주주 비중을 유지하며 지분 방어 효과를 누리고, 향후 지주사 전환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5월 8일 한국투자증권에 1000억원 규모의 신탁운용을 맡겼다. 계약 만료는 11월 7일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신탁운용 자금 1000억원 중 500억원에 대한 계약을 2024년 1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쉰들러, 국정감사서 현대엘베 지분 통정매매 의혹

쉬와러 피터존 쉰들러코리아 대표는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도 과정에서 제기된 시장 교란과 통정매매 의혹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쉰들러가 시장을 교란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쉰들러가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쉰들러는 전 세계에 걸쳐 기존 회사 인수 혹은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시장점유율을 많이 올렸다”고 쉰들러를 겨냥했다. 쉰들러 측은 ‘통정매매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여러 차례 나눠 고의적으로 주가를 낮추려 했다는 시각도 있어 금융감독원의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윤 의원은 “1대 주주와 경쟁하고 있는 2대 주주가 지분을 매도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쉰들러코리아는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으며, 스위스 본사에서 다 관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조사하고 불법행위를 밝혀내는 데 전문적인 조사기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 사안이) 불공정거래행위인지에 대한 결론을 이 자리에서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다만,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한국증권회사 창구를 통해 주문이 났고 거래소에 관련 자료가 있으므로 분석은 가능하다. 살펴본 이후 보고드리겠다”고 말했다.

쉰들러 CI
쉰들러 CI

쉰들러와 현대엘리베이터 20년간 이어진 논란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등을 상대로 지난 20년간 20여건에 이르는 소송을 이어왔다.

지난 3월,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이자 스위스 승강기기업인 쉰들러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이 일부 승소 판결한 2심 판결이 인용되면서 재계를 중심으로 ‘제2의 소버린 사태’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현대엘리베이터측은 쉰들러 역시 2대 주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에는 절대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지난 20여년간 각종 소송 제기는 물론 주총 안건에 대한 묻지마 반대 등 2대주주로서의 책임 있는 행동과는 거리가 먼 정상적인 경영활동마저 방해하며 적대적 M&A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했다.

쉰들러는 2004년, 당시 KCC와 경영권분쟁을 하던 현대그룹에 접근해 우호적 세력으로 도와주겠다면서 대신 ‘현대엘리베이터의 승강기사업권 요구’에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이 LOI는 법적 구속력은 없는 것으로 이후 쉰들러의 의도가 드러나면서 2005년 양자합의로 해지됐다. 이에 쉰들러는 2006년 KCC로부터 현대EL지분 25.5% 매입, 2대주주로 등극했다. 당시 쉰들러는 ‘경영참가를 위한 매입’이라고 공시했다.

2010년 현대건설 인수전 당시, 쉰들러는 현대그룹의 우호 세력이 되는 조건으로 승강기사업부를 넘길 것을 요구한다. 실제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라자드 제안서에는 ‘승강기사업 전부를 인수하는 것이 명백히 선호하는 방안’이라고 명시됐다.

쉰들러의 알프레드 회장은 2014년 5월 국내 일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취득 이후 한국에서 엘리베이터 사업을 최소화해 유지해 오고 있다”며 “이유는 한국 정부의 독점금지(antitrust)를 피하기(avoid)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과점을 피하려고 점유율을 최소화했다는 것은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 인수를 전제로 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논란이 됐다. 

승강기 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쉰들러가 한국 시장에서 10%대 점유율을 확보하고 이런 상태에서 현대엘리베이터를 인수하면 점유율이 50%를 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독과점 사업자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잇따른 지분매입 등 경영권 위협에도 불구하고 현대엘리베이터의 승강기사업부 인수가 쉽지 않자, 쉰들러는 각종 소송으로 경영권을 흔들었다.

일각에선 제기된 소송이 신주발행가처분 등 금융·증권관련 소송임에도 금융전문변호인단이 아닌 M&A전문변호사 위주도 선임해 의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재계 관계자는 “쉰들러가 잇따른 소송전으로 그룹의 지배구조를 위태롭게 만들어 결국 현대엘리베이터를 탈취하기 위한 고도의 적대적 M&A 전략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권 흔들기를 통해 주가 차익을 거두고 빠지는 전략은,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을 공격하는 일반적 패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소버린 사태 이외에도 2004년 헤르메스 자산운용은 삼성물산 지분 5% 사들이며 결국 380억원 차익을 거뒀고 2005년 KT&G-칼아이칸 역시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주가를 올린 뒤 약 1500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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