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과학]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의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김승진 옮김/생각의힘) ⓒ생각의힘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의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김승진 옮김/생각의힘) ⓒ생각의힘

2023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끝났다. 올해 눈에 띄는 수상자는 누가 뭐라 해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로디아 골딘’이다. 하버드대 경제학부에서 종신직을 받은 첫 여성 교수이자, 경제학 분야에서 단독으로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골딘은 “수 세기에 걸친 여성의 소득과 노동시장 참여에 대해 사상 처음으로 포괄적인 설명을 했다”는 업적을 인정받았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무렵 골딘은 학술지가 아닌 대중서를 발간했다.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Career and Family)에서 그는 대졸 이상 여성들을 지난 100년간 세대 순으로 다섯 집단으로 분류한다. 가정과 커리어 중 하나에 집중한 여성들(집단 1)부터, 일자리 다음으로 가정을 우선한 여성들(집단 2), 가정 다음 일자리(집단 3), 커리어 다음 가정(집단 4)을 우선한 여성들에 이어 커리어와 가정 모두를 추구하는 여성들(집단5)로 나눴다. 여기서 커리어는 일자리와 달리 ‘일구고 진전시키는 데 온전한 관심과 집중을 쏟을 필요가 있는 일’로 정의했다.

가장 눈에 띄는 집단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후반에 대학을 졸업한 집단 4이다. 이 여성들은 결혼을 미루고 커리어를 우선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여성운동의 물결 속 여성들의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피임약 상용화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유지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전문직에 진출한 여성도 늘었다. 그러나 피임약이 여성의 신체 나이를 유지하지는 못해 가임 적령기를 놓치고 가정을 꾸릴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들도 늘었다.

가장 최근 집단인 집단 5의 여성들은 가정과 커리어를 둘 다 손에 쥐고 있다. 이들은 시험관 아기, 생식세포 자궁 관내 이식, 난자 냉동, 염색체 검사 등 생식 기술과 의료보험 확대를 통해 가임기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성의 임금은 동일 직종과 업무에 종사하는 남성의 80% 수준에 그친다.

그 이유는 ‘육아’에 있다고 골딘은 이야기한다. 오늘날 노동시장은 더 열심히 더 헌신적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 골딘은 이를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라고 표현했다. 같은 24시간 동안 기혼 여성과 남성이 퇴근 후 가정에서 어떤 상태로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쉽다. 여성은 퇴근 후 가사와 육아에 ‘근로 대기(on-call)’ 상태, 남성은 회사에 근로 대기 상태이다. 언제든 회사에 충성할 수 있는, 가사와 육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남성이 승진하고 높은 연봉을 받는 게 어쩌면 더 당연해 보이는 이상한 시대이다.

가정과 커리어 모두 포기하지 않으려는 고학력 여성 연구자들에게 일-가정 양립 제도는 중요하다. 캐나다와 미국의 어맨다 고튼(Amanda Gorton)과 테스 그레인저(Tess Grainger)는 박사과정 이후 포스트닥(박사 후 연수 과정)을 밟기 위해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이 시기의 여성들은 같은 상황의 동년배 남성들보다 두 가지를 더 고려해야 한다. 가정을 갖고 임신을 할 수 있는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인지다. 골딘의 언어로 바꿔 말하면 ‘탐욕스러운 일자리’인지 아닌지를 구인 공고 사이트나 대학이나 연구소의 홈페이지를 스스로 뒤져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정보는 어디에도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종종 홈페이지에 ‘우리는 가정 친화적(family friendly)인 공동체’라는 추상적인 설명만 나와 있을 뿐이다.

데이터를 다루는 이 두 여성 과학자는 미국과 캐나다 주요 대학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들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대학이 유·무급 산후휴가를 몇 주까지 보장하는지, 양육을 위한 시설이나 부모들이 긴급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휴가제도가 있는지, 출산 외 입양이나 위탁부모가 사용할 수 있는 휴가가 있는지, 유연한 근무제도가 있는지 등의 정보를 모아, 자신들과 비슷한 환경과 시기를 거쳐야 하는 이들을 위해 공유했다.

골딘은 지난 100년간 여성의 경력-가정 간 관계는 앞선 집단의 어려움과 실패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가정과 커리어를 모두 좇는 5번째 집단, 즉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어떤 기관이나 대학이 탐욕적 일자리를 지향하거나 방관하는지를 알릴 필요가 있다. 고튼과 그레인저의 노력은 법제화되지 않은, 느슨한 일-가정 양립 제도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정보가 공유될 때, 남성들도 공동양육을 위해 제도와 혜택이 확립된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커지고, 다른 기관들이 더 나은 제도를 구축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이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다음 세대, ‘집단 6’의 여성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 주길 바란다.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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