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활약하는 세계적 성악가 연광철
데뷔 30년에 첫 한국 가곡 음반
‘신박듀오’ 피아니스트 신미정과 호흡
클래식 전문점 풍월당 20주년 맞아 제작·배포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데뷔 30년 만에 첫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을 냈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피아노 듀오 ‘신박듀오’의 신미정이 반주자로 호흡을 맞췄다.  ⓒ풍월당 제공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데뷔 30년 만에 첫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을 냈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피아노 듀오 ‘신박듀오’의 신미정이 반주자로 호흡을 맞췄다. ⓒ풍월당 제공

“나의 살던 고향은/꽃피는 산골...” 그리움을 노래하는 깊고 따스한 목소리는 힘이 셌다.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무반주로 부른 ‘고향의 봄’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었다. 강렬하고 모던한 멜로디와 비트에 익숙해졌는지 우리 가곡은 어쩐지 고루하게만 느껴졌다. 그 편견을 다정하게 깨부수는 음악이었다.

유럽 무대에서 최고의 성악가로 인정받는 연광철이 데뷔 30년 만에 첫 한국 가곡 음반을 냈다. 애달픈 국민 가곡 ‘비목’부터 ‘고향의 봄’, ‘청산에 살리라’, ‘그대 있음에’ 등 18곡을 들려준다. 대부분 1920~1970년대 가곡이나 김택수 작곡가의 신작 ‘산 속에서’(나희덕 시), ‘산복도로’(황경민 시)도 수록했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피아노 듀오 ‘신박듀오’의 신미정이 반주자로 호흡을 맞췄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클래식 전문점 풍월당이 제작, 배포했다.

“외국에서 저는 이방인이었고, (그들의 음악과 감성을) 내가 잘 전달하고 있나 늘 생각했습니다. 한국 가곡을 부르는 일은 온전히 제 것을 부르는 일이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연광철 성악가가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소회다. “우리말처럼 노래하기 좋은 언어가 없다”며 “우리 가곡을 더 많이 연주하고, 새로운 해석, 새로운 감동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라고 했다.

연광철 성악가, 피아니스트 신미정, 박종호 풍월당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풍월당 20주년 기념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 발매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풍월당 제공
연광철 성악가, 피아니스트 신미정, 박종호 풍월당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풍월당 20주년 기념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 발매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풍월당 제공

연광철은 베를린, 밀라노,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최고의 바그너 가수로서, 또 콘서트와 가곡 분야에서도 인상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세계 최정상 베이스로 꼽힌다. 2018년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캄머쟁어’(Kammersaenger) 칭호를 받았다.

그는 충북 충주 출신이다. 13살 때까지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 살았다. 지난 7월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과 함께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음반을 녹음하며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과 정취, 그 속에서 상상했던 것들”을 자주 떠올렸다. 극적이거나 화려한 해석보다 덜어내고 덜 꾸며서 시정(詩情)을 위한 여백을 살렸다.

피아니스트 신미정의 반주도 우리 가곡에 깃든 시정과 음악적 풍경을 따뜻하고도 풍성하게 재현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 유학 시절을 회상하며 “유럽 가곡의 시어나 정서를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한국 가곡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뭉클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라며 “빈에 살고 있지만 갈수록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 제 고향 진도를 떠올리게 하는 통영에서 음반을 녹음하면서 저를 지금까지 지탱해 준 게 그 유년의 추억임을 깨달았다”라고 했다.

풍월당 20주년 기념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 ⓒ풍월당 제공
풍월당 20주년 기념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 ⓒ풍월당 제공

‘고향의 봄’은 우리 가곡을 알리고자 만든 음반이다. 그래서 책자 형태로 제작했다. 가사를 영어, 일본어, 독일어로 번역해 실었다. 정새벽(Jack Jung, 영어), 요시카와 나기(일본어), 박술(독일어) 번역가가 참여했다. 최근 작고한 고(故) 박서보 화백의 단색화 ‘묘법 No.980308’을 박서보 재단 후원으로 표지에 사용했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가 온라인 음원을 유통한다.

연광철 성악가는 “앞으로 많은 우리 시인들의 작품이 계속 가곡으로 만들어지고 발전할 것”이라며 “저도 성악가로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늘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겠다”고 했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우리가 듣고 불러야 비로소 우리 시와 우리 노래를 가지게 된다. 풍월당의 지난 20년을 기념하고, 한국음악계에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우리가 우리 음악을 잘 듣지 않잖아요. 1970~80년대 이후로 한국 가곡은 사멸하다시피 했지요. 듣는 이들도 옛 음반에 의존하고, 가곡을 부르던 성악가들도 노쇠하거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번 음반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많은 분들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진짜 우리 음악을 듣고 부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 ⓒ풍월당 제공
박종호 풍월당 대표. ⓒ풍월당 제공

2003년 클래식 전문 음반매장으로 시작한 풍월당은 20년 만에 음반매장은 물론 연간 약 300회의 클래식 전문강좌를 운영하고 50여 권의 전문도서를 출간하는 문화예술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박종호 대표는 “20주년이라니 감개무량하다. 고객들에게 늘 감사하다. 여러분들이 끌어오셨다”며 웃었다. 우연히 풍월당을 알고 고국 방문차 찾아온 재미교포 할머니가 1만 달러를 쾌척한 이야기, 옛 단골의 자식이 장성해 풍월당을 찾아온 이야기도 들려줬다. “20년이 되니 이 공간이 가진 가치를 생각하게 되지요. 그래서 이사도 못 갑니다. 매달 월세가 2000만원가량 나가는데....(좌중 웃음) 열심히 살게 됩니다. 음악의 좋은 점을 널리 알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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