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온라인 공개된 웹예능 ‘미니 핑계고’ 방송 캡처화면. 박보영과 다른 출연진이 조카들과 놀이공원에 놀러 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모차’라는 말을 여러 차례 썼는데, 자막에는 ‘유아차’로 대체됐다. ⓒ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 3일 온라인 공개된 웹예능 ‘미니 핑계고’ 방송 캡처화면. 박보영과 다른 출연진이 조카들과 놀이공원에 놀러 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모차’라는 말을 여러 차례 썼는데, 자막에는 ‘유아차’로 대체됐다. ⓒ유튜브 영상 캡처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한 웹 예능 프로그램이 ‘유모차’를 ‘유아차’라고 표현해 온라인 커뮤니티가 달아올랐다. ‘유아차는 페미니즘 단어’라는 반발부터 ‘여성주의자들의 방송 검열’ 주장까지 등장했다.

지난 3일 공개된 웹예능 ‘미니 핑계고’에는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로 돌아온 배우 박보영이 출연했다. 박보영과 다른 출연진이 조카들과 놀이공원에 놀러 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모차’라는 말을 여러 차례 썼는데, 자막에는 ‘유아차’로 대체됐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2018년~2022년 법령·행정 용어와 관공서 서식 등에 남아있는 성차별적 언어를 시민 제안으로 바꾼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발표 내용.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2018년~2022년 법령·행정 용어와 관공서 서식 등에 남아있는 성차별적 언어를 시민 제안으로 바꾼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발표 내용.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새로운 흐름은 아니다. ‘유아차’는 2018년부터 공식 정책용어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유모차’(乳母車)엔 ‘어미 모’(母)자만 들어간다. 아빠라고 유모차를 끌 수 없는 건 아닌데, 평등 육아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조하는 유모차 대신 아이가 중심이 되는 ‘유아차’(乳兒車)로 바꿔야 한다는 데 시민과 전문가들이 동의했다.

그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시민 공모를 거쳐 발표한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에 ‘유아차’가 ‘유모차’의 대체용어로 들어간 이유다. 2020년 서울시인권위원회도 같은 이유로 ‘유아차’를 순화용어로 권고했다.

2021년 파주시도 우선적으로 정비할 성차별적 행정용어 중 하나로 ‘유모차’를 꼽고, ‘유아차’로 순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파주시 제공
2021년 파주시도 우선적으로 정비할 성차별적 행정용어 중 하나로 ‘유모차’를 꼽고, ‘유아차’로 순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파주시 제공

다른 지자체·기관들도 변화에 나섰다. 2020년 경기도는 ‘유모차’를 ‘개선 대상 공공언어’로 보고 ‘유아차’, ‘아기차’ 등으로 순화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파주시도 성차별적 행정용어를 정비한다며 ‘유모차’ 대신 ‘유아차’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 수원시가 제작·배포한 ‘성평등한 홍보물 만들기’ 가이드북엔 성차별적 용어인 ‘유모차’를 ‘유아차’로 대체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7월에도 충청북도교육청이 학교·교육기관에서 쓰이는 성차별 행정용어 중 하나로 ‘유모차’를 들며 ‘유아차’로 순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립국어원도 2022년 11월 ‘유모차와 유아차 중 표준어가 무엇이냐’는 시민의 질문에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유모차’와 ‘유아차’가 모두 표준어로 등재돼 있으므로, 두 표현 모두 표준어로 볼 수 있다. ‘유모차’를 ‘유아차’나 ‘아기차’로 순화한 이력이 있다는 점에서 되도록 ‘유아차’나 ‘아기차’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권장되기는 한다”고 답했다.

지난 9월 발의된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최혜영의원 등 12인) 제안 이유. ⓒ개정안 내용 캡처화면
지난 9월 발의된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최혜영의원 등 12인) 제안 이유. ⓒ개정안 내용 캡처화면

국회에서도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꾸려는 개정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2019년(황주홍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 대표발의), 2020년(이명수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에 이어 지난 9월(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까지 세 차례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렇게 언어 사용에 더 높은 인권·젠더 감수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방송가 전반의 감수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토론은커녕, 모든 논의를 가로막는 ‘페미 낙인’이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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