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제 삶입니다』
박채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이것도 제 삶입니다』(박채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이것도 제 삶입니다』(박채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여자들이 마른 몸을 선망해서 생기는 질환이라는 ‘납작한’ 오해와 달리, 섭식장애는 다양한 이유로 찾아온다. 저자에게도 식사를 거부한다는 건 곧 자기 삶에 대한 주도권을 갖는 행위였다.

일단 이 책은 ‘이렇게 하면 섭식장애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같은 명쾌한 ‘질병 극복 서사’가 아니다. 그저 15년을 섭식장애와 나란히 걸으며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그와 연결된 여자들, 더 나아가 그 여자들이 살아가는 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박채영은 섭식장애를 다룬 김보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의 식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엄마 ‘상옥’은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했고, 이혼한 여성으로 혼자 딸을 키워낸 사람이다. 대안학교에서 새 비전을 찾아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 딸의 섭식장애는 외면했다. 한편, 그의 딸 ‘채영’은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학교를 거부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자기 삶을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이다. 영화는 섭식장애라는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 이 모녀 관계를 섬세하게 파고들었다.

사회의 얄팍한 ‘진단’과 달리, 그에게 엄마가 주는 밥을 남기고 거부하는 것은 곧 엄마로부터의 ‘독립’을 뜻했다. 그에게 ‘거식’은 자기 몸 말고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불안한 세상 속에서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위해 선택했던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책은 영화의 확장판 격이다. 모녀 관계 뿐 아니라 자신의 할머니로 거슬러 올라간 가족사를 다룬다. 알고 보니 채영의 할머니 ‘금옥’도 가부장적인 삶 속에서 평생을 토하며 살아온 여성이었다. 엄마 대신 그를 길러내다시피 했던 수많은 ‘이모들과 언니들’도 등장한다. 순종적이기를 거부한 여자들, 그럼에도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 쳐온 여자들 속에서 자란 채영의 섭식장애는 그래서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질병을 오히려 시야를 넓히는 계기로 삼았다. 성별화된 이 질병은 그를 페미니즘으로, 정상성에서 미끄러진 삶은 그를 소수자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자신의 취약함을 알기에 돌봄의 가치 역시 깨닫게 됐다.

채영은 지금도 우울과 불안, 폭식과 구토를 오가는 삶을 산다. 하지만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것도 삶’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섭식장애 당사자로서 섭식장애를 가시화하고 사회화하는 데 앞장설 예정이다.

“아마 누군가는 내게 묻고 싶을 것이다. 폭식과 구토를 하면서, 알코올 의존증을 가진 채로 어떻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느냐고. 그럼 나는 되물을 것이다. 정상적인 삶이 무엇이냐고. 폭식과 구토 증상이 있어도 친구를 만나고 공부하고 영화를 보고 생계 활동을 하고 연애하고 반려동물과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데, 이것은 왜 정상적인 삶이 아니냐고 말이다.”(『이것도 제 삶입니다』, 216-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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