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은주 작가·사회학자

이은주 작가·사회학자. ⓒ이은주씨 제공
이은주 작가·사회학자. ⓒ이은주씨 제공

초등 6학년 딸과 보따리를 싸서 파리로 떠났다. 갑작스러운 사별로 한부모가 된 직후였다. 낙인 없는 사회에서 아이를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게다가 그토록 원했던 석사학위를 막 땄는데, 박사과정까지 마치지 못하면 눈을 못 감고 죽을 것 같았다. 아이는 씩씩하게 자랐고, 엄마는 “인생 최고의 공부량을 받아 내면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이은주 사회정보연구원 조사본부장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드라마틱한 삶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학 졸업 후 부친의 사업 실패 여파로 남들보다 빨리 취직했어요. 그러다가 결혼해 딸을 낳았고요. 이러고 사나보다 하다가도, 원하는 공부를 다 못한 한이 풀리질 않았어요.”

뒤늦게 다시 대학 문을 두드렸다. 사회복지 행정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마지막 학기에 신랑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아이가 왜곡된 시선을 받으며 자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프랑스로 떠났다. 파리 제9대학에서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밟았다.

“파리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어요. 불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았고.... 엄마를 믿고 따라와서 잘 적응해 준 딸이 너무 고마워요. 우리 딸 덕에 제가 살 수 있었죠. 한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이 적은 프랑스 사회 덕도 있었어요. 10년 전 이미 프랑스 초등학생의 절반가량은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어요. 이혼가정, 한부모 가정 같은 배경은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그래도 힘들 때면 동아줄을 부여잡듯이 매일 성당에 가서 기도했어요.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구나 싶어요.”

이 작가는 딸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 파리에서 함께 살다가 10년 만에 홀로 귀국했다. 국내 연구소, 대학 강단을 거쳐 지금도 연구·조사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딸은 의사가 됐고, 동료 의사인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이은주 작가 모녀. ⓒ이은주씨 제공
이은주 작가 모녀. ⓒ이은주씨 제공
이은주 작가의 저서 『그림에서 여성을 읽다』(북랩, 2016), 『인문학으로 파리를 거닐다』(북랩, 2023). ⓒ북랩
이은주 작가의 저서 『그림에서 여성을 읽다』(북랩, 2016), 『인문학으로 파리를 거닐다』(북랩, 2023). ⓒ북랩

드라마틱한 삶의 여정 사이에서 그는 책 두 권을 펴냈다. 미술관과 갤러리로 가득한 파리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양미술 걸작들을 보고 분석하게 됐다. ‘이방인’으로 10년 넘게 프랑스에 살면서 느낀 소회와 사회학적 분석도 글로 썼다.

“딸 부부를 만나러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여러 책을 읽다 보니 조금씩 제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됐어요. ‘개인의 기억이라는 스크린 위에 공동의 역사로 투영된 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니 에르노의 말에 용기가 났죠.”

최신작 『인문학으로 파리를 거닐다』(북랩, 2023)에서는 한국 사회학자의 관점으로 본 프랑스 사회와 문화를 소개한다. 비혼 동거 커플의 출산·육아 인정, 성소수자 가시화 등 “개인의 자유와 자율권의 행사가 사회제도나 단단한 교회법을 변화시킨 사례”를 언급한다. 또 “프랑스 정치권이나 노조 활동, 사람들의 인식에도 사회주의가 진한 질감으로 존재하고 있다”며 자본주의 맹신보다 민주주의와 평등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프랑스 사회를 조명한다.

그러면서도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계와 배타, 성차별 못지않은 인종차별로 프랑스인들의 톨레랑스의 근육은 점점 그 힘이 빠지고 있다”며 “프랑스 사회주의의 복지는 이제 자본주의 복지 시스템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듯하다. 재정을 부담해야 하는 자국민들의 불만, 이민 정책의 실패,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차별이 혼재된 프랑스 사회의 복지 딜레마는 평등의 가치를 지닌 사회주의를 흔들어 놓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앞서 여성 사회학자의 눈으로 본 서양미술 이야기도 책으로 펴냈다. 『그림에서 여성을 읽다』(북랩, 2016)에 새로운 분석과 해설을 추가해 이달부터 여성신문 칼럼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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