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기다리는 건 그만 잊으라는 산울림
그들을 기다리는 건 그만 잊으라는 산울림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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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야 나는 내가 만난 그 여가수가 은자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많이도 넘어져가며 그 애는 미나 박이 되었지 않은가. 울며 산등성이를 타오르는 그 애, 잊어버리라고 달래는 봉우리, 지친 어깨를 떨구고 발아래 첩첩산중을 내려다보는 그 막막함을 노래 부른 자가 은자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 양귀자 '한계령'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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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만상의 기암괴석과 끝 모를 골짜기로 이루어져 위용을 자랑하는 한계령 용아장성의 한겨울 풍경.


저 산이 내게 울지 말란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양희은이 부른 노래 '한계령' 얘기다. 달빛 아래 젖은 계곡 사이로 쌓인 한이 두터워서 호기심 많은 나그네의 예고 없는 발길은 냉큼 한계령을 향했다.



겨울 언저리 아침 일찍 닿은 한계령 휴게소는 때마침 구슬비 운무에 휩싸여 있었다. 가랑비가 촉촉이 적시는 차창 너머로 설악의 서북릉과 주걱봉, 가리봉 능선이 반갑다. 천태만상의 기암괴석과 끝 모를 골짜기들이 이중 삼중으로 에워싼 천험의 요지엔 진즉 발을 들여놓은 바지런한 여행객들이 제각기 한 모퉁이씩 차지하고 있다.



야외 커피숍 처마 밑에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여성이 아까부터 동편 하늘을 바라보는 중이다. 그 하늘 아래론 낙산 바다가 펼쳐져 있을 터. 문득 얼마 전 어느 결혼정보회사가 실시했던 설문조사 결과가 떠올랐다. 미혼남녀가 늦가을과 초겨울, 첫눈이 내리고 외로워질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짝사랑女'와 '차버린男'이란다. 간편하고 일방적인 남자들의 세계관에 입각해 볼 때 그녀는 자신을 좋아했던 남자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옛 애인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낙산 바다? 그녀가 간직하는 사랑이 바다의 파도처럼 규칙적으로 그 바다에 묶여있는 느낌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 그러나 검정 코트 밑으로 보이는 구두굽이 너무 높다. 그래,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옳고 말고. 버지니아 울프의 언어를 빌리자면 '파도의 철썩임, 파도의 키스는 차고 에일 것'이기 때문이다.



화석처럼 우두커니 남겨진 '민중의 얼굴'



뜨거운 커피를 들고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쪽으로 돌아왔다. 저만치서 초로의 행상이 머리에 고무대야를 이고 허겁지겁 쫓아온다. 내 앞에서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그이. 개시란다. 개시라니 무조건 살 수밖에.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건네고 돌려받은 것은 한 쌍의 풀피리였다. 벚나무 껍질을 가공한 게 상품이고 갈대 잎을 만 건 보너스인가 보다. 인근의 오지 마을에서 직접 만든 수제품이라나.



운전석에 앉자마자 백미러를 통해 비를 맞으며 사라져가는 그이의 뒷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그이 역시 예의 오지마을 사람일 것이다. 또한 깊은 주름이 파인 채 화석처럼 우두커니 남겨진 '민중의 얼굴'이기도 하다. 때때로 긍휼히 여겨질지언정 역사를 움직이는 불가사의한 힘의 근원이기도 했던 어느 격동기의 테마 말이다. 풀피리를 가만히 입에 대고 불어보았다. 윗입술로부터 휘파람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퍼져 나왔다.



“산봉우리를 향하여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두고 온 길은 잡초에 뒤섞여 자취도 없이 스러져버리곤 하였다. 그들을 기다려주는 것은 잊어버리라는 산울림, 혹은 내려가라고 지친 어깨를 떠미는 한줄기 바람일 것이었다. 또 있다면 그것은 잿빛 하늘과 황토의 한 뼘 땅이 전부일 것이었다” - 양귀자 '한계령'중에서 -



지상 최후의 피난처 : 3둔과 4가리



차에 시동을 걸고 양양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한계령은 원시의 생명력이 충만한 곳이다. 옥녀탕, 하늘벽, 장수대, 대승폭포, 소승폭포, 상투바위, 귀때기청, 용아장성 등이 병풍처럼 에워싸며 여행객들의 시선을 붙들어 맨다. 한계령을 내려오다 오지마을인 귀둔과 곰배골로 빠지면 내린천이다. 이 부근엔 정감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 유명한 피난처 '3둔'과 '4가리'가 자리하고 있다. '둔'은 산 속에 숨어 있는 평평한 둔덕이라는 뜻이고 '가리'는 겨우 밭을 갈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땅을 일컫는다.



3둔과 4가리는 예로부터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고, 흉년이나 역병이 없으며, 전쟁의 환란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홍천 쪽 내린천 상류에 자리한 3둔(달둔, 살둔, 월둔)엔 아직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살지만, 인제 쪽 방태산 북쪽 기슭에 숨겨진 4가리엔 이제 사람이 없다.



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주민 대다수가 이 '불편한 피난처'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나마 방태산 휴양림이 들어선 적가리골이나 탐방객들이 찾을 뿐 연가리, 곁가리, 아침가리(조경동)는 인적이 끊긴 빈 자리를 청정한 원시림이 메우고 있을 따름이다.





권경률 월간 여행에세이 편집장



사진제공 인제군청







가볼 만한 곳



진동리 설피마을 : 오지 중의 오지, 겨울 중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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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리 설피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오지 중의 오지, 겨울 중의 겨울로 소문난 마을이다. 강원도 땅에서도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 이곳 주민들은 겨울이 되면 설피라는 독특한 눈신을 신고 다닌다. 설피는 눈 위를 걸을 때 빠지지 않도록 넓적하게 만든 겉신.



그래서 진동리 이름도 아예 '설피밭'으로 굳어졌다. 설피마을을 지나 좁은 길을 따라 우측으로 계속 올라가면 야생화 천국 곰배령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인근에 있는 방태산 자연휴양림과 원시림 보존지구인 아침가리도 가볼 만한 곳. (양평-44번국도-철정검문소 삼거리-우측 길-내촌- 상남-덕다리마을-진동리 설피마을)





인제 산촌 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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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 사람들의 생업, 신앙, 음식, 놀이 등을 모형과 실물,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접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산촌 민속 박물관이다. 인제읍 상동리에 위치. 성인 1000원, 어린이 500원. 만 65세 이상 노인과 6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관람. (033-460-2085)

















양양 오색온천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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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휴게소에서 양양 방면으로 내려가면 오색온천이 나타난다. 오색온천의 가장 큰 특징은 탄산천이라는 점이다. 지하에서 용출되는 탄산수는 사이다처럼 기포가 일고 톡톡 쏘는 특이한 느낌을 준다. 이 온천수로 목욕을 하고 나면 미인이 된다고 해 일명 '미인온천'이라고도 불린다. 오색온천 주변에는 약수를 이용해 지어낸 돌솥밥과 산채류 음식들, 머루주가 일품이다. 통나무식당(033-672-3523)과 소나무식당(033-672-3157)이 맛있다.







찾아가는 길



서울 망우리 고개 - 6번국도 - 양평 - 44번국도 - 한계리 민예단지휴게소 삼거리 - 한계령휴게소 - 오색온천



▶문의 : 한계령휴게소(033-672-2330)

인제군 문화관광과(033-460-2082)

▶홈페이지 : www.inje.gangw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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