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한국형 ‘제시카법’ 입법예고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 내용
이수정 교수 “야간도 관리, 재범 여지 없어져”
여성계 “성범죄 피해 구제 어려운 현실 여전…
‘가해자는 괴물’ 등 성폭력 통념만 강화될 것”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경기 과천 법무부에서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한국형 제시카법) 등 입법 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경기 과천 법무부에서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한국형 제시카법) 등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법무부가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입법예고했지만 “‘가해자는 악마’와 같은 기존 성폭력 통념만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제시카법은 지난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제정한 법으로, 아동 대상 성폭행범에 의해 사망한 피해자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이 법은 12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게 출소 후 평생 전자발찌 부착 및 학교·공원 주변 최대 600m 이내 거주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4일 한국형 제시카법인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제시카법과 다른 점은 거주 제한 방식이다. 학교와 공원을 기준으로 주변에 거주를 못하도록 하는 미국 제시카법과 달리 한국형 제시카법은 고위험 성범죄자들의 거주지를 국가와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시설로 지정하는 형태다. 미국과 비교해 국토가 좁고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 인구밀집도가 높은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이 법안의 적용 대상은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자, 3회 이상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전자 감독 대상자 중 부착 원인 범죄로 10년 이상의 선고형을 받은 자 등이다. 또 법무부는 성범죄자 재범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성충동 약물치료 확대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 같은 법안을 추진하는 배경으로는 먼저 아동 성범죄자의 높은 재범률이 있다. 지난해 1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주요 범죄의 실태 및 동향 자료 구축(Ⅰ): 성폭력범죄’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5년간 13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중 26.8%가 재범이었고 13~18세 대상 성범죄자 중 재범 비율은 34.1%에 달했다. 법무부의 성범죄백서(2020) 통계에도 재등록 성범죄자 중 62.4%가 1차 범죄 뒤 3년 안에 범죄를 저질렀다.

성범죄자 김근식의 경우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징역형을 받은 뒤 출소 16일 만에 다시 범행을 했다.

또 김근식, 조두순 등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출소할 때마다 반복되는 거주지 논란 및 지역·주민 피해도 정부가 거주지를 제한하려는 배경 중 하나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안산, 화성 등 주민들이 불안해하면서 시위하는 건 이제 안 해도 되는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기존 전자감독 대상자들은) 앱으로 아동청소년을 유인해서 집에 불러들여서 성범죄를 많이 저지른다. 전자발찌는 지리적인 것만 (관리)하는 거라 (사각지대가 있었는데), 시설에서 관리를 야간에도 하게 되면 재범의 여지조차 없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자가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관리를 하면 된다. 현재 조두순 집 근처는 보안 수위를 높여서 보호관찰 지소도 만들고 순찰을 돈다. 그 수준으로 시설 경비를 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동의 강간죄’ 등이 도입되지 않아 여전히 성범죄 입증이나 피해 구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성범죄자를 ‘고위험군’으로 규정해 격리하는 방식만으로는 사회 안전이 담보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고위험 성범죄자만 격리하면 사회가 안전해질 것처럼 말하지만, 법에 포함되지 못하는 성희롱, 성차별 상황이 너무 많다”며 “강간죄에 여전히 폭행·협박 요건이 있어서 피해를 인정받기 어렵고, 신고해도 기소가 잘 되지 않고, 피해자를 의심하는 태도 등 때문에 여전히 피해 구제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여성이나 소수자가 겪는 불안이나 차별은 변함이 없는데,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성폭력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보이지도 않고, 지금 시행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성폭력은 일부 악마같은 사람만 저지른다’는 기존의 통념을 강화하는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 부소장은 “‘극악무도한 성폭력 가해자’라는 구도는 ‘가해자는 괴물같은 사람’이라는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강화하고, 일상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이나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인식을 무감하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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