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 구로구청에 민원 제기
“모두의 화장실, 성범죄·성적 수치심 야기” 주장
대학 ‘2호’ 카이스트 ‘모두의 화장실’은 존치 결정
미 논문 “모두의 화장실, 강력 범죄와 연관성 없어”

17일 서울 구로구 상공회대 새천년관에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최초로 설치됐다. ⓒ홍수형 기자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최초로 설치됐다. ⓒ여성신문

국내에서 처음 설치된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이 문 연지 1년 7개월 만에 폐쇄 위기에 놓였다. 한 시민단체가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반대하는 민원을 구청에 제기한 것이다. 모두의 화장실은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모두가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일컫는다. 성중립 화장실로도 불린다.  

학인연 “모두의 화장실은 성범죄와 성적 수치심 야기할 수 있어”

여성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구로구청 직원들은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수차례 성공회대학교에 방문해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 시설 존치에 대한 행정명령을 교직원들과 논의했다.

지난 6월 학생학부모교사인권보호연대(학인연)가 구로구청을 찾아 “모두의 화장실에 폐쇄명령을 내려달라”고 제기한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학인연은 앞서 지난 6월 가수 화사의 대학교 축제 무대 퍼포먼스를 두고 “화사의 행위가 변태적 성관계를 연상시켜 목격한 대중에게 수치심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며 경찰에 고발한 시민단체다.

학인연이 구청에 제출한 민원서를 보면, 학인연은 모두의 화장실 설치에 대해 “자연적인 성별 구분의 표지, 생리적 특수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성범죄와 성별에 따른 수치심을 야기할 수 있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한 △공중화장실법 제7조(공중화장실 설치 시 남녀화장실을 구분해야 한다) △제13조(공중화장실을 관리하는 자가 이를 위반한다고 판단될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은 시설의 개선·폐쇄·철거명령 등 조치를 할 수 있다)에 근거해 “구청은 성중립화장실(모두의 화장실)에 대해 즉각적인 행정조사와 그에 따른 개선·폐쇄·철거명령을 하라”고 촉구했다.

폐쇄 확정 아니지만…“남녀 분리 명령하겠다” 게시물 올라오기도

지난 6월 30일 학인연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오늘 구로구청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성공회대 성중립화장실에 남녀 분리하고 안전 문제 해결하라고 개선명령 내릴 예정이라고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네이버 카페 캡처
지난 6월 30일 학인연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오늘 구로구청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성공회대 성중립화장실에 남녀 분리하고 안전 문제 해결하라고 개선명령 내릴 예정이라고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네이버 카페 캡처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구청이 조만간 모두의 화장실에 대한 성별분리 또는 폐쇄명령을 내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학인연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오늘 구로구청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성공회대 성중립화장실에 남녀 분리하고 안전 문제 해결하라고 개선명령 내릴 예정이라고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또한 성공회대학교 학생 A씨는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 24일 구청 직원과 교직원들이 모두의 화장실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에 있었던 학우가 녹취한 내용을 들어보니 ‘왜 구청의 허락 없이 (모두의 화장실을) 지었냐’, ‘성별분리 요구를 제때 받았으면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 등의 취지를 한 발언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로구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구청이 공식적으로 결정한 행정명령은 없다. 학인연이 카페에 올린 게시물 내용도 착오가 있는 것 같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입장이다.

성공회대학교 또한 “시설 개선·폐쇄와 관련해 구청과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으나, 모두의 화장실 폐쇄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학생들의 입장이 있어 아직까지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국내 대학 ‘2호’ 카이스트, 모두의 화장실 존치 결정

카이스트 정문 전경 ⓒ뉴시스
카이스트 정문 전경 ⓒ뉴시스

지난해 12월 국내 대학 중 두 번째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한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또한 화장실을 폐쇄하라는 민원을 받았으나, 카이스트는 모두의 화장실이 공익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보고 폐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전 유성구청은 지난 6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카이스트에 있는 모두의 화장실 6곳을 폐쇄하라”는 민원을 받았다. 민원인은 구로구청에 같은 내용의 민원을 제기한 학인연이었다.

구청 측은 “모두의 화장실에 대한 명확한 시설 기준이 없어 카이스트에 구체적인 개선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다만 지속적으로 민원이 들어오는 만큼 해당 내용을 검토하라는 개선 권고를 내렸다”고 밝혔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기관 내 남녀 구분된 화장실이 설치돼있고 △정부 및 지자체에서도 ‘가족화장실’ 등 비슷한 형식의 화장실이 존재하며 △각종 안전장치를 추가해 공익이 침해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모두의 화장실을 존치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휠체어 장애인의 화장실 이용 시 불편함이 우려된다’ 등의 일부 민원을 수용해 보다 쾌적한 화장실을 만들 수 있도록 보완하겠다”고 덧붙였다.

미 논문 “모두의 화장실, 강력 범죄와 연관성 없어”

17일 서울 구로구 상공회대 새천년관에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최초로 설치됐다. ⓒ홍수형 기자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최초로 설치됐다. ⓒ여성신문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나이·성 정체성·성적지향·장애를 떠나 누구나 쓸 수 있는 형태의 화장실을 뜻한다. 유아용 변기 커버, 기저귀 교환대,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럭, 자동문, 휠체어에 타서도 보기 편한 각도 거울, 외부 비상 통화 장치 등을 갖추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발행한 ‘공공청사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안내’를 보면, 기존화장실과 별도로 가족 혹은 보호자와 함께 사용이 가능한 다목적 화장실을 1개소 이상 설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성공회대학교는 2017년 첫 논의를 시작해 지난해 3월 완공 후 운영을 시작했다. 카이스트도 같은 해 12월 학내 총 6개의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화장실(Toilet for all)이 여러 공공·주요 시설에 설치되는 추세다. 미국 백악관, 200년 역사의 런던 올드빅 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모두의 화장실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쓰기 때문에 성범죄 등 위험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지난 3월 영국의 한 학교 ‘성중립 화장실(모두의 화장실)’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2018년 UCLA 로스쿨 연구 결과, 트렌스젠더에게 포용적인 성중립 화장실, 라커룸, 탈의실을 조례로 의무화한 지자체와 아닌 지자체 간 범죄 사건의 수나 빈도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보고서는 “(성중립) 화장실 등에서 발생한 사생활 보호나 안전 위반에 대한 보고는 매우 드물고 일반적으로 강력 범죄를 보고하는 주 전체 비율보다 훨씬 낮다”고 결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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