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여성주의(들)과 함께 미래로 간다

1988년 10월 28일자 여성신문 0호 지면. ‘안동주부사건’ 피해 여성 기사로 여성과 성폭력에 대한 세상의 통념을 반박했다. ⓒ여성신문
1988년 10월 28일자 여성신문 0호 지면. ‘안동주부사건’ 피해 여성 기사로 여성과 성폭력에 대한 세상의 통념을 반박했다. ⓒ여성신문

1988년 10월 28일자 여성신문 0호는 당시 엽기적 가십 사건 정도로 여겨지던 ‘안동주부사건’ 피해 여성 기사로 여성과 성폭력에 대한 세상의 통념을 반박했다. 사건은 그 해 2월 26일 오전 1시10분경 일어났다. 길가던 30대 여성을 두 남성이 붙들었다. 여성은 강제로 붙잡고 입을 맞추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 여성은 ‘과잉방어’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유죄 판결 이유는 “가해자를 놀라 피하게 하는 것으로 그쳐도 될 것을 물어뜯어 혀를 잘랐다”는 것과 “범행 장소가 상가밀집지역이고 가해자가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으니 피해자가 공포에 떨어 혀를 깨물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반 언론들도 여성이 왜 그 시각에 다녔는지, 얼마나 술을 마셨고 얼마나 취했는지, 가족들과 불화했는지를 두고 여성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여성의 눈으로

1988년 10월28일 발간된 여성신문 창간 준비호(0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0월28일 발간된 여성신문 창간 준비호(0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여성신문은 달랐다. “진실과 목숨을 바꾸겠다”는 실명 인터뷰를 통해 경찰이 자신을 술취한 여자, 남성을 유혹한 여자로 몰고 갔다고 항변했다. 여성신문 기사를 계기로 1심 재판의 성차별적 관점이 강력한 비판을 받았고, 항소심 변론을 위한 공동변호인단이 구성되었다. 여성신문 보도 석달 후, 항소심에서 여성은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여성신문이 오늘날까지 달려온 35년의 전주곡이었다.

1988년 10월 28일자 여성신문 0호는 벽을 찢고 뛰어나오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윤석남 그림)으로 세상에 태어남을 알렸다. 0호 특집은 ‘여성정치역량과 13대 국회’. 여성신문은 여성의 정치적 역량에 주목했다. 여성신문의 탄생 자체가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맺은 열매이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루고, 대한민국이 민주 정치의 새로운 장에 들어서면서 여성신문도 1,000명의 시민을 주주로 탄생했다. 권위주의 체제가 끝나고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그 시기,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한 여성 저널리즘 매체의 등장은 민주화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고, 여성 인권 신장은 민주화와 함께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여성신문의 창간 정신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35년간 발행되고 있는 여성신문은 그렇게 태어났다.

시대의 사명

여성신문 창간은 시대의 사명이었다. 민주화 요구와 함께 성평등 인식이 높아지고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사회 규범이나 관행, 그리고 법률은 여전히 가부장제에 기반한 남성우위의 기존 질서를 바탕으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실생활에는 의미도 없는 호주제(戶主制) 때문에 아들이 없으면 양자라도 들여서 집안을 이어야 했고, 남성 혈통을 따라 이어지는 성(姓)을 기반으로 한 동성동본 금혼제가 숱한 사람들의 삶에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과학고등학교에 여학생의 자리가 없었고, 여성의 사관학교 입학을 틀어막고 있었다. 태아의 성별을 ‘감별’해 여성이면 지워버렸다. 특정 지역에서는 남녀 성비와 극도로 왜곡되어 나타났다. 여성신문은 창간준비호에서 여성도 민주사회의 평등한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민주주의 제도로서의 의회 정치와 입법 기관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1988년 5월 30일 개원한 13대 국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제6공화국의 첫 번째 국회였지만, 여성 의원은 지역구에서는 단 1명도 없고 비례대표만 6명으로, 의원 총수 2백99명의 2.0%에 불과했다. 2020년 출범한 21대 국회의 여성의원은 19%(여전히 30% 목표에도 못 미치고 있지만). 여성신문이 지켜보고 격려해온 여성 정치, 의회 진출 이슈는 여전히 진행 중인 목표다.

가부장제를 넘어서

1988년 12월 2일 여성신문은 “대한민국의 성차별 문화를 극복하고 진정한 민주사회를 앞당긴다”고 선언하며 공식 출범했다. 사회 곳곳에 엄존하는 가부장적 성차별 제도와 관습의 제약 속에서 여성의 법적, 사회적 지위 향상 뿐 아니라 성평등 문화의 확산을 이루는 것이 여성신문이 저널리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첫 번째 목표였다. 기존 매체들이 극히 부분적으로, 또 관습적으로 다뤄 온 여성 이슈를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심장으로 줄기차게 보도했다.

여성신문은 주부의 가사 노동이 갖는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여(1989년) 여성이 법적으로 경제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여성신문이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산정하자고 주장한지 12년만인 2001년 통계청이 처음으로 가사노동 가치를 돈으로 환산했다. 당시 가사노동의 월 가치는 최고 153만원이었으며, 연간 가치는 국가적으로 138조원에서 230조원에 달해, 국내총생산(GDP)의 28.2~47.8%로 추정되었다.

관습적 시각 거부

2005년 3월2일 호주제 폐지가 확정되자 여성계 인사들이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남인순, 김상희, 지은희, 곽배희, 유경희(사진 오른쪽부터, 직함 생략). ⓒ여성신문
2005년 3월2일 호주제 폐지가 확정되자 여성계 인사들이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남인순, 김상희, 지은희, 곽배희, 유경희(사진 오른쪽부터, 직함 생략). ⓒ여성신문

여성신문은 또 가족 내에서 여성이 감당해 온 육아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독박 육아’라는 말이 아직 널리 쓰이기 전, 여성신문은 육아야 말로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부르는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 주목, 공공보육 입법을 촉구했다. 여성에 적용되는 차별정년 철폐, 부부라도 강요된 성관계는 강간, 고령화 시대 여성 노인의 빈곤 문제, 국내 첫 직장 내 성희롱 사건으로 기록된 서울대 신교수 사건 등 1990년대 여성신문이 ‘여성 인권’ 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새롭게 들춰낸 문제들은 기존의 관습적 시각을 거부한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이슈들이었다. 한 살짜리 아들이 호주가 되어 엄마의 법적 지위를 결정할 수 있었던 호주제가 2005년 폐지되기까지 여성신문은 줄기차게 호주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업이 여성을 고용하면서 “결혼할 거냐” “임신하면 그만둬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 딸들은 우리가 겪은 성차별을 겪지 않게 합시다!” 창간 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대선후보 여성정책 점검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신문은 88개 여성단체를 대표해 최초로 대선후보 초청 범여성계 토론회를 주최했다. 11월 3~7일 각 100분간 열린 이 토론회는 TV(KBS 2TV)로도 생중계됐다. ⓒ여성신문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신문은 88개 여성단체를 대표해 최초로 대선후보 초청 범여성계 토론회를 주최했다. 11월 3~7일 각 100분간 열린 이 토론회는 TV로도 생중계됐다. 여성신문 제 415호에 대선후보 4인의 토론회가 지상 중계됐다. ⓒ여성신문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신문은 88개 여성단체를 대표해 최초로 대선후보 초청 범여성계 토론회를 주최했다. 11월 3~7일 각 100분간 열린 이 토론회는 TV(KBS 2TV)로도 생중계됐다. 사진은 당시 김대중 대선 후보의 토론회 모습. ⓒ여성신문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신문은 88개 여성단체를 대표해 최초로 대선후보 초청 범여성계 토론회를 주최했다. 11월 3~7일 각 100분간 열린 이 토론회는 TV로도 생중계됐다. 사진은 당시 김대중 대선 후보의 토론회 모습. ⓒ여성신문

여성신문은 기사를 통해 여성의 지위와 인권 이슈를 활발하게 문제 제기하는 한편, 다양한 기획 이벤트와 사업을 통해 ‘여성’ 관점의 이슈가 사회적으로 주목받도록 했다. 그중 가장 돋보인 기획이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시작한 ‘대통령 후보 초청 여성정책 TV 토론회’다. 여성신문이 주최한 첫 토론회는 주요 후보들의 여성 정책을 평가할 뿐 아니라 여성들이 요구해 온 주요 현안들을 공론화하는 자리였다. 첫 토론회에는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조순 민주당 총재 등이 참가해 △여성부 신설 △장관직과 국회 비례대표 여성 할당 △주부 연금수급권 인정 △중고교 학교 급식 실시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등 여성신문이 제시한 주제들에 대해 의견을 발표했다. 이후 대선, 총선 등 주요 선거에서 여성신문 토론회가 이어졌는데, 2002년 대선과 2006년 서울시장 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를 거쳐 2007년에는 대선 경선 후보 초청 여성정책토론회로 확대되었다. 여성신문은 성차별 철폐와 양성평등 문화 확산에는 남성들의 이해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유엔여성(UN Women)의 남성 참여 성평등 캠페인 히포시(HeForShe) 확산에 앞장섰다. 2014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첫 히포시로 나선 뒤 오바마 미국대통령 등이 앞다퉈 참여했지만 한국은 히포시 캠페인 참여가 최하위 수준이었다. 여성신문은 히포시코리아 스피릿, 히포시 틴(10대) 캠페인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이끌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산업정보학교 학생들이 자신이 서명한 히포시 사인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여성신문
서울 마포구 아현산업정보학교 학생들이 자신이 서명한 히포시 사인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여성신문

여성 리더십을 키우다

여성주의 언론으로서 여성신문은 성평등과 여성 리더십을 널리 확산하는 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03년부터 시상해오고 있는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미지상)’과 2007년 시작된 양성평등문화상이 대표적이다. 미지상은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살려 여성 인권 증진과 성평등 확산에서 성취를 이루며 여성 리더십을 발휘해온 여성들을 시상한다. 양성평등문화상은 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확대해온 남녀에게 주는 상으로, 개인과 단체, 신인에게 고루 시상한다. 2023년까지 총 173명이 수상했다. 

제16회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이 1일 서울 마포구 소극장산울림에서 열렸다.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자인 김경민(미르) 작가·시민단체 활동가, 들개이빨 만화가,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작가, 이소연 시인, 장서윤 작창가,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만화평론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혜련 사진작가
2023년 9월 1일 서울 마포구 소극장산울림에서 제16회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자인 김경민(미르) 작가·시민단체 활동가, 들개이빨 만화가,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작가, 이소연 시인, 장서윤 작창가,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만화평론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혜련 사진작가

여성신문 35년은 변화와 격동의 시기였다. 1987년 시민 1,000명을 주주로 출발한 ‘여성주의’ 저널리즘 매체는 이제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한 ‘다양한 여성주의’ 저널리즘으로 발전하며, 면모를 새롭게 하고 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은 수많은 여성들이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주장하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부터의 안전을 국가에 요구하고 나섰다. 혜화역에 모인 7만 명의 여성들은 일상화된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여성 연대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듬해 유명 정치인과 거물급 문화예술인 남성들의 성폭력을 폭로한 ‘미투’는 우연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의 분출이었다. 여성주의는 이제 하나가 아니며, 수많은 갈래의 여성주의들이 다양성과 차이를 드러내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신문도 이러한 변화 속에 ‘다음 세대’ 여성들의 여성주의(들)에 주목하고 있다.

2023년 10월 30일, 여성신문은 ‘꽃 피우는 사람들’을 선언한다. 다양함을 바탕으로 더욱 단단해진 여성주의(들)와 여성 인식(들)을 바탕으로, 35년 전 거칠고 힘찬 목소리에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더해 더욱 탄탄해진 여성주의 저널리즘의 산실이 될 것이다. 여성신문은 이제 미래로 나아간다. 

2018년 5월 서울지하철 혜화역 인근에서 수사기관의 ‘불법촬영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혜화역 시위’다. ‘디지털성폭력’이라는 단일한 의제로 12월까지 6차례 이어진 혜화역 시위는, 주최 쪽 추산 총 36만명이 참여했다. ⓒ여성신문
2018년 5월 서울지하철 혜화역 인근에서 수사기관의 ‘불법촬영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혜화역 시위’다. ‘디지털성폭력’이라는 단일한 의제로 12월까지 6차례 이어진 혜화역 시위는, 주최 쪽 추산 총 36만명이 참여했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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