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창간 35주년]

매주 한 호씩, 1773번에 걸쳐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1988년. 여성주의 담론의 대중화와 민주화의 열망이 가득하던 그해 국민주주 약 1000명이 주식회사 여성신문을 만들었다. 그해 10월28일 창간 준비호(0호), 12월2일 여성신문 제1호가 세상에 나왔다. 이후 35년간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독자들과 만났다.

여성신문의 표지는 그 시대 여성운동의 얼굴이다. 창간 초기 여성신문은 매호 여성들의 의지와 포부를 함축한 표지화를 선보였다.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여성 화가들이 함께했다. 개성 강한 작품들은 그 자체로 높은 미술사적 가치와 품위를 보여준다. 

‘페미니스트 미술가’ 윤석남 화백

1988년 10월28일 발간된 여성신문 창간 준비호(0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0월28일 발간된 여성신문 창간 준비호(0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여성신문 창간 준비호이자 여성언론의 출발을 알린 0호(1988년 10월 28일) 표지는 페미니스트 화가 윤석남 화백의 작품이다. 한국 여성의 삶과 현실을 담은 작품으로 여성주의 미술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대표적인 작가다. 여성신문을 손에 쥔 두 여성이 벽을 뚫고 뛰쳐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 옆에 ‘자매애는 강하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김효선 발행인은 ”여성신문은 강한 자매애 하나 믿고 시작됐다“고 말했다.

윤석남 화백은 1988년 12월9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2호, 12월23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4호 표지도 장식했다. 한국 여성들의 용기와 의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1988년 12월9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2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2월9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2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2월23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4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2월23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4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2월3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9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2월3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9호 표지. 윤석남 화백 작품. ⓒ여성신문
2018년 11월3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 1517호. 윤석남 화백의 여성신문 30주년 기념화가 실렸다. ⓒ여성신문
2018년 11월3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 1517호. 윤석남 화백의 여성신문 30주년 기념화가 실렸다. ⓒ여성신문
2018년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 자신이 그린 창간 준비호 표지를 보고 있는 윤석남 화백. ⓒ여성신문
2018년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 자신이 그린 창간 준비호 표지를 보고 있는 윤석남 화백. ⓒ여성신문

2018년 여성신문 창간 3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윤석남 화백은 여성신문 표지 작업에 참여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여성신문 창간은 말도 안 되는 역사적인 일이었어요. 우리의 존재를 언론화하는 일은 정말 기쁜 일이었죠. 그래서 표지 작업에도 기꺼이 참여했어요. 처음에는 솔직히 얼마나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매체를 만든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워요. 30년이나 됐다니 기특하고 감사하죠.” (윤석남 화백, 2018년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천재 화가’ 고(故) 김점선(1946~2009) 화백

‘천재 화가’라 불렸던 고(故) 김점선(1946~2009) 화백도 여성신문 표지화를 여러 차례 장식했다. 구도와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동화 같은 단순한 선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작품들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9년 1월6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6호 표지. 김점선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1월6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6호 표지. 김점선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2월1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0호 표지. 김점선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2월1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0호 표지. 김점선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3월24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6호 표지. 김점선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3월24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6호 표지. 김점선 화백 작품. ⓒ여성신문
고(故) 김점선(1946~2009) 화백. ⓒ이정민 제공
고(故) 김점선(1946~2009) 화백. ⓒ이정민 제공

김점선 화백은 1989년 신년호(제6회)를 비롯, 한반도를 나눠먹는 강대국을 비판한 제10호, 자연을 감싸 안는 모성을 표현한 제16호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으로 수차례 여성신문의 표지를 장식했다. 2006년 제900호엔 ‘놀라운 언니들이야! 900번이나 신문을 만들다니!’라는 축화와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성주의 미술 대표 화가’ 김진숙 화백

1988년 12월2일 여성신문 창간호(제1호) 표지. 각계각층 여성들의 머리 위로 성평등한 세상을 갈구하는 두 마리의 흰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윤석남·김인순 화백과 함께 한국 현대 여성주의 미술을 이끌었고 미국 뉴욕에서도 활동했던 김진숙 화백의 작품이다. 

1988년 12월2일 발간된 여성신문 창간호(제1호) 표지. 김진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2월2일 발간된 여성신문 창간호(제1호) 표지. 김진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2월16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3호 표지. 김진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2월16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3호 표지. 김진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2월3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5호(송년호) 표지. 김진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8년 12월3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5호(송년호) 표지. 김진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1월2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7호 표지. 김진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1월2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7호 표지. 김진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2008년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김진숙 화백. ⓒ여성신문
2008년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김진숙 화백. ⓒ여성신문

김진숙 화백은 이후로도 여러 차례 여성신문 표지를 장식한다. 그해 12월16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3호 표지엔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꼬집는 그림을 그렸다. 그해 12월30일 발간된 송년호(제5호) 표지엔 1988 서울올림픽에서 대한민국 탁구 사상 최초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여자복식 양영자-현정화조도 등장한다. 교육 민주화 운동을 다룬 제7호 표지화에선 학생 인권 보호 메시지를 담았다. 

김용님·유성숙·정지영 화백

민중미술 화가들과 여성신문의 만남도 눈에 띈다. 김용님 화백은 한신대 신학대학원 재학 중 민중신학과 여성운동, 여신영성운동에 눈을 떴다. 민중 중에서도 여성을 화폭에 옮겼다. 남북 분단의 슬픔을 끌어안은 어머니(제12호) 등을 주제로 여성신 표지화를 그렸다. 유성숙 화백, 정지영 화백도 농사 짓는 어머니(제13호, 제14호),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어머니의 손(제15호) 등을 그린 표지화를 선보였다.

1989년 1월27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8호 표지. 김용님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1월27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8호 표지. 김용님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2월24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2호 표지. 김용님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2월24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2호 표지. 김용님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2월17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1호 표지. 정지영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2월17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1호 표지. 정지영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3월1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4호 표지. 정지영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3월10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4호 표지. 정지영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3월17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5호 표지. 정지영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3월17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5호 표지. 정지영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3월3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3호 표지. 유성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1989년 3월3일 발간된 여성신문 제13호 표지. 유성숙 화백 작품.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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