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서 행불 목격자 없어 수사 난항…24시 방범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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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전문가들은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실종·살해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여성전용 휴대폰에 의무적으로 주소 신호 버튼을 장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종 사건이 난 뒤엔 저녁9시만 돼도 엄마들이 와서 데리고 가요.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요”

수원대 정문에서 300미터 가량 떨어진 와우리공단 버스정류장. 한달 전 수영장에서 귀가하던 여대생 노모(21)씨가 버스 하차 후 실종된 뒤 “인근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는 분식집 주인 김모(46·여)씨의 말이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서 분식집을 하는 김씨는 “그날도 밤 12시까지 가게문을 열었고, 8시30분쯤 노씨가 버스에서 내려 오른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고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

일명 '화성 여대생 실종 사건'이 발생한 지 27일째 되던 11월 22일, 수원대 부근 주민들은 언론의 관심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서인지 비교적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한 주민은 “실종 사건은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일어나는데 '공포의 화성' 운운하니 화성에 사는 사람들로선 불쾌하다”고 전했다. 분식집 앞에서 담소를 나누던 한 주민은 “사건 발생 후 한 달이나 지났는데 왜 왔느냐”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정작 경찰과 가족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노씨의 행방에 수사상의 어려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정남면 치안센터에서 만난 이상준 수사과장은 “제보가 없다”며 “차가 많이 다니고 주변 상가들이 있어 납치 가능성이 있는 지점이 아니기 때문에 목격자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현재 화성은 노씨가 실종된 이후 지구대 체제로 수사를 전환하며 24시간 방범 체제에 돌입했다. 화성경찰서를 비롯해 지역의 민간 기동순찰대, 해병전우회, 어머니자율방범대, 어머니 포순이 봉사단, 치안 모니터 요원, 무선 봉사대 등이 야간 순찰을 돌며 치안 유지에 나서고 있는 것. 김지호 화성경찰서 생활안전계장은 “사건 이후 주민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태안읍, 봉담읍, 정남면, 통탄면 등을 순찰하고 매일 밤 6개 중대 400명의 경찰 인력을 동원해 버스정류장 부근을 순찰하고 있다”며 “주민들은 불안해하지 않으니 10년도 훨씬 넘은 예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연결짓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서울 면적의 1.4배 불구 경찰인력 4분의 1 '치안 사각'

“서울은 경찰 인력이 2만 명이 넘지만 화성은 서울보다 1.4배나 면적이 큰데도 경찰은 500명 가량에 불과합니다”

김 계장은 “화성 도로망을 거쳐가는 하루 교통량이 155만대가 넘고 현재 상주하는 인구가 적을 뿐이지 유동인구는 상당히 많기 때문에 사실상 수도권 전체 치안을 맡고 있는 셈”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제는 지역의 여성들이 심리적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원대 근처에서 만난 최순례(65)씨는 “우리도 무섭다”며 “환갑이든 칠순이든 밤에는 조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수원대 앞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하는 김미경(23)씨는 “밤에 너무 깜깜하다. 사건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늘 똑같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염건영 광운대 마약범죄학과 교수는 “화성은 안개가 많은 지역인데, 인간은 은폐성에 대한 동경이 있어 성범죄 등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경찰서, 관공서 등 도로나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한 후에 도시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를 먼저 지어 놓고 도시개발을 하다 보니 신도시의 경우 치안 부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주민들 “9시 통금이 따로없다”…'연쇄살인' 공포 경계

한편 인근 지역에서 실종과 성추행 사건이 빈발하자 수원대는 어두운 곳에 CCTV를 설치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정희영(24·일본어과)씨는 “전에는 학교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지만 사건 이후엔 되도록 학교에 안 있고 일찍 집에 간다”면서 “경비 아저씨들이 있지만 순찰이 강화되거나 하는 것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화성가정폭력상담소 전윤복실 간사 또한 “가정폭력 피해자 프로그램을 수원대 쪽에서 하는데 집단 상담을 하고 나면 시간이 늦어 불안하다”면서 “화성 여성들은 사건 이후 심리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했다.

애끊는 실종 여대생 부모

“생사라도 알았으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10월 27일 수원대 부근 와우리공단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된 여대생에 대해 아버지 노모(48)씨는 “부모된 심정 외엔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다른 사건은 목격자라도 있는데 이 사건은 목격자가 전혀 없고, 시간이 많이 흘러 알고 있던 사람도 잊을 만한 시간이어서 안타깝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노씨는 “아직 수사 중인데 '미궁에 빠졌다'등의 기사를 보면 분통이 터진다”며 최근 딸의 실종을 보도하는 기사들에 불만을 터뜨렸다.

“밤에 잠을 못 자요. 혹시나 올 것 같아서. 수사본부에서 여러 각도로 수사하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막연히 살아서 돌아올 것만 같은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생사라도 알면 어떻게든 결정할 텐데…. 살아서 돌아오길 바라야죠.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노씨는 딸의 실종 이후 “대문을 열어놓고 방 불도 켜놓고 생활하고 있다”며 “딸의 생사를 모르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씨의 어머니는 기자가 방문했을 때 몸져누운 상태였다. 노씨는 “아내가 식음을 전폐하다 병원에 두 차례나 실려갔다”면서 “살아있어야 찾을 수 있다고 죽만 먹으면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방문하기 사흘 전인 19일 노씨의 어머니는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편지를 보내 딸의 실종에 대한 심경을 털어놨다. 김씨는 편지에서 “살아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살아서 돌아올 거라 믿는다”며 “만약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시신이라도 돌려달라”고 눈물겨운 호소를 했다.

최근 여성 살해·실종 일지

유영철부터 화성 미제까지

경기 화성 일대에서 86년 9월부터 91년 4월까지 여성 10명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됐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여덟번째를 제외한 나머지 사건은 미제로 남겨졌다. 최근 발생한 대표적인 여성 살해·실종 사건은 다음과 같다.

▲2003년 9월∼2004년 7월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유영철은 부유층 노인과 여성 등 연쇄적으로 21명을 살해했다. 그는 출장마사지 여성을 칼이나 망치 등을 이용해 살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토막내 야산에 묻었다.

▲2004년 포천 여중생 살해 사건

2003년 11월 5일 실종됐던 포천의 엄현아 양이 실종 96일 만인 2004년 2월 8일 도로변 배수관 안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11월 28일 엄 양의 소지품이 발견되었지만 아직 미제 사건이다.

▲2004년 충남 천안 여고생 실종·피살 사건

10월 9일 여고 1학년 박모(16)양이 귀가 도중 실종됐다. 11월 10일에는 2학년 이모(17)양이 목 부위가 찔려 죽은 채로 발견됐다. 두 경우 모두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화성 여대생 실종 사건

화성시 봉담읍에 거주하는 여대생 노모씨는 11월 27일 저녁 버스를 타고 와우리공단 정류장에서 하차한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휴대전화, 점퍼, 티셔츠, 청바지, 속옷 등 노씨의 유류품이 도로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자료 제공: 염건영 광운대 마약범죄학과 교수>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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