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위한 투자를 기대한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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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을 처음 만난 지 35년이다. 
힘든 언론환경에서 잘 버텨왔다. 1988년 시작한 주간 신문을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꾸려 온 것 만해도 장하다. 게다가 어엿한 정론지로 자리매김했다. 이젠 온라인을 통해 매일 접할 수 있어 주간지의 경계마저 허물었다.

세계 주요 신문들 가운데 주간지만으로 자리 잡은 사례를 찾기 어렵다. 더욱이 여성들의 이슈를 앞세워 신문 만드는 곳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여성지라 하면 으레 월간잡지를 뜻한다. 보그, 엘르, 코스모폴리탄 같은 알려진 여성잡지가 모두 월간잡지일 뿐 심각한 이슈를 다루는 신문과는 거리가 멀다. 페미니즘을 표방했던 미국의 미즈(Ms.) 또한 1972년에 월간지로 창간해 한때 인기를 누렸지만 경영악화 탓에 격월간지로 선회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여성지라 하면 거의 모두가 패션, 뷰티 등에 집중한 화보 중심의 월간잡지다.

그만큼 주간발행의 여성 정론지는 운영하기 힘들다. 그래서 여성 정론지 만들기 35년이란 세월은 기네스 기록감이다. 왜 다른 나라, 특히 소위 선진국들에선 여성신문을 보기 어려울까. 

그들에겐 여성 관련 다양한 문제들이 이미 다른 기사들과 섞여 다루어졌다. 새삼스레 따로 다뤄야 할 이유가 없다. 사회 곳곳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제법 잘 반영되어 있다. 여성들의 입장이나 견해가 상시 부각된다. 그런 까닭에 여성 전문 매체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다.

개발도상국에서 여성신문을 보기 힘든 경우는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나설만한 사회 여건이 되지 않거나 운영의 어려움 탓이다.

아무튼 우리 곁엔 여성신문이란 자랑스런 매체가 35년이나 존재했고, 또 나름의 목소리를 꾸준히 키워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 여성신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 속에 한국의 독특한 위상을 말해준다. 치열하게 살아 온 한국 사회의 산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성 위주의 여의도 국회에서 비례대표의 절반을 여성에 배려한 결정은 한국 같은 나라에서나 가능하다. 이젠 국회 의석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게다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운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나는 국적기를 타고 나들이할 때면 기내에서 의례 여성신문을 골라 들었다. 주요 일간지들의 기내 진출 경쟁이 심했던지라 여성신문을 만나고 놀라웠던 기억이다. 느긋하게, 그리고 생각하며 읽어보기에 맞춤이었다.

각종 국가 고시에서 여성 합격자가 남성을 넘어선 지는 벌써 오래전이다. 새로 임용된 법관도 여성이 많다. 하지만 우리 여성들이 제 몫을 챙기기까진 갈 길이 멀다. 

나는 늘 주장했다. 우리나라가 또 한 차례 경제, 사회적으로 도약하려면 열정적이고 뛰어난 우리 여성들의 잠재력에 불을 붙여야 한다고. 이 단계에 이르면 국민들도 비로소 수치상의 선진국이 아니라 체감하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느낄 것이다. 

장년에 들어선 여성신문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순탄치 않다. 그래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는지는 알고 있다고 본다.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이 차지해야 마땅한 몫을 제대로 챙기려면 여성들이 힘을 합쳐 ‘여성적 가치’가 지닌 긍정적 역할을 부각시켜야 한다. 여성들이 나눌 몫 자체를 키우는 데 정론지가 앞장서야 한다.

매 주일 하나만이라도 생각을 자극하는 기사, 사회의 현안들을 ‘날을 세워’ 다루는 글을 실어야 한다.

이젠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주어진 과제를 넘어서 사회에 파장을 만들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매체로 거듭나야 한다.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이 만드는 매체를 넘어서서 많은 남성들이 여성신문을 정독하고 경청하는 발전적인 모습을 나는 꼭 보고 싶다. 다양성이 빛나는 나라, 나라 안팎으로 존경받는 매력적인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의 바램에 공감하는 우리의 대기업이(기회 놓치면 외국기업이) 여성신문의 미래에 통 크게 투자하여 성숙한 사회, 지속 성장이 가능한 나라 만들기에 힘을 보태는 순간을 나는 빨리 맞이하고 싶다.

길정우 전 국회의원, 한예종 발전재단 이사
길정우 전 국회의원, 한예종 발전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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