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랑 산다]

ⓒMike MacKenzie/Image via www.vpnsr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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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공개되고 11개월이 흘렀다. 빅테크 기업들의 연이은 AI 신규모델 및 서비스 발표가 올봄을 휩쓸었고, 숨을 고르는가 싶던 여름이 지나자마자 Dall-E 버전 3(OpenAI) 발표와 알렉사(Amazon)의 업데이트를 비롯한 테크 업계의 큼직한 뉴스들이 연달아 나왔다. 거시적으로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시장은 여전히 침체돼 있지만, AI를 둘러싼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투자 소식이 들리는 분야라곤 AI를 비롯한 몇 가지뿐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닐 테다. 그만큼 AI 기술 기반의 산업적, 사회적 변화에 다들 몰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상당히 많이 듣는 이야기는 “AI를 안 쓰면 뒤처지느냐”는 질문이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당연히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도입 타이밍과 창업자 성향에 대한 고려는 분명 필요하다. 저서 ‘권력과 진보’로 최근 여러 차례 언급되는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의 최근 보고서¹에 따르면, AI처럼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함에 있어 민간 기업들의 숨 고르기와 사회적 위험도가 상당 부분 맞물린다는 것이었다. 특히 기술의 성장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사회에서 발생 가능한 잠재적인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기술 채택까지 걸리는 시간도 더 걸린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공공 섹터에서 적정한 규제를 마련해야, 민간의 기술 채택에 대한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에서 제시된 모델링의 결과물이었다.

경제학적 설명이지만, 기술이 지닌 파급력이나 확장성을 생각하면 AI 기술 도입이 퍽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아이디어의 문제다. 자사 서비스의 가치사슬 안에서 어느 부분을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그리고 어디까지 구현 가능한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다음은 비용이다. 연구를 하거나 컨설팅을 받아 적절한 전환 파트를 찾아도, 서비스에 GPT 같은 언어 모델의 API 키(API를 사용하는 응용 프로그램 또는 사용자를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코드)라도 얹어서 체질 개선을 하려고 보면 막막하다. 관리도 문제다. 기존에 사람을 고용해서 진행하던 일을 AI 기술에 맡겼는데, 막상 결과물이 불만족스럽거나 혹은 불안감을 줄 수 있다. 결국 사람이 다시 뜯어보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완벽한 보정까지는 끝도 없는 것만 같다고도 한다. 설치하고 나면 밤잠 자고 일어나 출근했을 때 모든 것이 자동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손이 가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도 한다.

이런 가운데 미디어들은 AI 기술이 지닌 불공정성과 그럴듯한 거짓말, 가짜뉴스의 배포와 범죄 악용 같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분명히 AI 기술을 만든 이들이 악마는 아닐진대, 마치 그들의 생산물이 인류를 망쳐 놓을 것 같은 전망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아세모글루의 연구에 언급된 바에 따르면, 기술은 한 번 쓰면 안 쓰던 때로 돌아가기가 어렵기에 도입하는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다는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두려움 가득한 뉴스들은 기업들의 기술 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술 낙관론을 전제로, 나아가 사람과 기술이 더 잘 공존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그리는 입장에서, 이러한 기술적 도전들은 결국 풀릴 일이라 생각한다. 오랜 기간이 걸려야만 해결될 것 같았던 자연어 처리의 문제를 비약적으로 해결해 낸 챗GPT의 개발 이후로, 업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의식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다. 수학, 물리학이나 심지어 사회과학적인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도 AI 기술은 꽤 탁월하게 작동하고 있다. AI 자체의 문제도 결국 이해관계자들의 수요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기어이 풀릴 것이라고 본다. OpenAI가 인간의 가치를 AI에 학습시키는 얼라인먼트(alignment) 문제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한 사례다. 더 다양한 분야의 더 많은 사람들이 우려와 해결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만큼, 문제는 생각보다 더 빠르고 영리하게 풀릴 거라고 믿는다.

최근 미국 벤처캐피털 업계의 구루인 마크 안드레센이 ‘기술 낙관주의자 선언’이라는 글을 발표했다². 비관적인 전망을 접고, 기술의 발전이 생산성을 높이고 물가를 낮추는 한편, 사람들의 능력은 더욱 향상해 높은 임금을 얻게 하고, 그에 따라 수요는 더욱 늘고 인류는 풍요 속에 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동안 기계에 의해 생산이 과도하게 늘고, 기계에 의해 대체 당한 인간은 소득이 줄어 소비할 수 없는 세상이 올 거라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논리다. 다양한 변인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기술은 인류 번영의 밑바탕이 돼 왔고, “이번은 정말 다르다”는 주장들과 달리 혁신적 전환기 때마다 사람들은 비교적 일반 균형을 맞추며 문제없이 살아왔다는 주장도 있다.

AI로 인해 점차 더 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변화를 겪고, 업무의 과정과 역할에도 새로운 배열이 제시될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기회를 잡는 이들은, 대부분 치열하게 변화를 관찰하고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기업가들이었다. 리스크를 빠르게 인지하고, 업무 및 서비스 틀을 쪼개 보고 재조립해 가며 AI 기술을 적용해 보는 노력은 이러한 의미에서 너무도 필수적이다. 남들이 겪는 챌린지를 다 지켜보고 난 뒤에 그때 가서 안전한 과실을 따서 먹기엔, 기술 발전은 빠르고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환경은 무척이나 다르다. 위험하니 안 쓰는 것보다, 당장 어떻게 써먹을 때 우리에게 최고로 유리할지 고민하며, 자신의 사업을 다시 뜯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¹ Daron Acemoglu & Todd Lensman (2023) Regulating Transformative Technologies.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NBER), July 2023. DOI:10.3386/w31461

² https://pmarca.substack.com/p/the-techno-optimist-manifesto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AI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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