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우리말 쓰기] 13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얼마 전 국회상임위에서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질의와 답변 도중에 ‘당신’이라는 표현이 나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은 하대하는 말일까? 존대하는 말일까? 공식적인 영역에서 써도 될까?

우리말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 ‘당신’은 여러 형태로 쓰인다. 말하는 사람인 ‘나’와 듣는 사람인 ‘너’의 관계에서 사용한다면 평대칭관계이거나 하대할 때다. 즉 부부사이에 서로를 가리키거나 나이가 비슷하면서 어느 정도 친한 어른들 사이에서 쓰인다. 대등한 관계를 생각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이거나 감정이 상해서 싸우는 상황이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끼어들어” “지금 나한테 당신이라고 말했어?” 등의 상황은 길거리 시비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하는 장면이다. 이 부분이 책으로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들에겐 낯선 장면일 것이다. 영어 You를 너 또는 당신으로 번역해 사용했다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신’은 삼인칭대명사로도 쓰이며 그때는 존칭어 또는 극존칭어가 된다. 문맥 속에서 앞의 사람을 다시 가리키는 재귀대명사로 쓰일 때다. “할머니, 당신께서는 ~ ” “선배님은 당신께서 직접 ~ ” 등 윗사람을 존대할 때 쓴다. 시어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는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이에 초점을 맞춘 언어라는 점이다. 긍정으로 묻는지, 부정으로 묻느냐에 따라 듣는 이의 대답이 달라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또는 친구끼리 흔히 하는 “밥 안 먹었니?”의 물음에 “응, 안 먹었어”나 “아니, 먹었어”라고 답하는 거다. 답하는 이의 상황에서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새겨들어야 한다.

또 듣는 이가 기분 나쁘지 않게 표현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특별히 사용할 직함이 없을 때에 ‘선생님’을 붙이기도하고 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씨”로 표현할 때는 성만 쓰지 않고 이름 또는 성과 이름을 쓴 다음 ‘씨’를 써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영어와는 다른 점이다. “Mr.김” 대신 “김씨”라고 부른다고 상상해보자.

일반명사인 “아줌마”(아주머니의 낮춤말)나 “아저씨”로 불렸을 때, 기분좋아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을 하기에 우리는 식당에 가면 “이모님”을 부르고 “사장님”을 찾기도 한다. 덕분에 카페나 마트에 가면 “고객님”으로 불린다. ARS콜에서는 “VIP고객님”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그만큼 호칭에 민감하기에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980년대만 해도 사무실에선 “김양” “이양” “박양”으로 불리는 직장인이 많았다. 당시에도 화들짝 놀랐지만 요즘 이런 호칭으로 불리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또 종종 반말이냐 아니냐로 정치권에서는 화제가 되기도 한다. 한국어엔 높임말과 높임표현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는 사람이 나이, 신분, 지위, 친분관계 등을 고려해서 서술어 어간 뒤에 여러 종결어미를 붙여 말한다. 아주높임(합니다, 하십시오), 예사높임(하오, 하시오), 예사낮춤(하네, 하게), 아주낮춤(한다, 해라)이 있지만 요즘은 격식을 차려서 말해야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아주높임이 지켜지는 것 같다. 일상에서는 “요”를 붙이느냐, 붙이지 않느냐로 구분하여 높임말인지 아닌지로 나뉜다. 높임말과 안높임말의 거리감이 좁아졌다. 혹시나의 실수를 순발력 있게 지울 수도 있다.

“고마워요”는 또래의 직장 동료나 후배에게만 쓸 수 있고, 나이가 많은 상대이거나 직장선배, 학교선배에게는 “고맙습니다”로 구분해 썼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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