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스포츠레저산업전에서 참관객이 운동기구를 체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월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스포츠레저산업전에서 참관객이 운동기구를 체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석 달간 급격한 체중 변화를 겪었다. 주짓수 대회에 참가하면서 체급에 맞게 체중을 감량했고 지금은 11월에 열릴 러닝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급격한 체중 변화’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게 평소 입던 운동복이 헐렁해졌다.

그런데도 운동복 쇼핑은 자제하고 있다. 아무리 장비가 운동의 퍼포먼스를 좌우하고 운동복도 장비의 일종이라지만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물가가 무섭다. 어쩔 수 없이 유물을 발굴하는 사람처럼 서랍 깊숙한 곳을 뒤졌다. 서랍 속에 보관된 운동복은 전부 7년 전쯤 크로스핏(고강도 기능성 운동)에 빠졌던 시기에 사들였다. 기하학적인 패턴의 레깅스, 스포츠 브라, 쇼츠와 무릎을 덮는 긴 양말, 무슨 자신감으로 입었는지 알 수 없는 크롭탑…. 내가 직접 산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희한한 옷들이 튀어나왔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밈을 보면 여성은 운동을 배우기 전에, 혹은 운동에 빠지면 운동복과 운동화부터 사들이는 존재로 묘사된다. 체육관에서 운동은 하지 않고 이른바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 인증샷만 찍는 여성을 희화화하는 콘텐츠도 넘쳐난다. 이러한 콘텐츠의 여성 캐릭터는 허영심과 자기애뿐인 코믹한 인물로 등장하는데 정말 그럴까? 그저 납작하게만 바라보기에는 애초에 여성의 운동은 패션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할 역사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에어로빅의 여왕’이라 불렸던 제인 폰다부터 알아야 한다.

배우이자 정치활동가, 페미니스트로 유명했던 제인 폰다는 미국과 유럽의 여성을 하나로 만들 여성주의 프로젝트 가운데 에어로빅을 포함시켰다. 대중의 인기를 민감한 배우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에어로빅이 힙하다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래서 ‘모든 여성이 제 몸을 통제하고 핏하게 만들고 당당하게 몸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에어로빅 대중화에 앞장섰다.

이 시기에 에어로빅용 운동복의 수요가 급상승했다. 스니커즈 운동화, 레깅스, 레그워머, 레오타드, 헤어밴드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운동복은 과격한 움직임도 방해하지 않는 스판덱스 소재로 만들어졌고 그 결과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지방층은 조금도 가려주지 않았다. 여성들은 운동복을 멋지게 소화하려면 날씬한 몸을 만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더욱 운동에 몰두했다.

피트니스 열풍과 패션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SNS 시대가 열리면서 한층 더 굳건해졌다. 한마디로 말해서 보기 좋은 몸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몸을 가능한 한 멋지게 보여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해졌다(이러한 몸의 물신성이 가장 극화된 트렌드가 만인에게 내 멋진 몸을 소개하는 바디프로필 촬영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데는 인증샷과 인생샷 업로드가 숨 쉬듯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고 어떤 면에선 현실보다 온라인의 인생이 더 중요해진 시대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문득 요즘 어떤 운동복이 유행인지 궁금했다. 구경만 하겠다고 되뇌면서 쇼핑몰을 기웃거린 결과 지금의 트렌드는 골프웨어와 테니스웨어인 걸 알 수 있었다. 하필 골프와 테니스웨어가 열풍인 이유는, 우선 그 옷들이 사진과 영상을 찍었을 때 ‘있어 보이고’ 또 스커트를 운동복으로 입을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넘쳐나는 밈처럼 여성의 운동은 오직 패션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가?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처럼 과도하게 조롱받아 마땅한 일인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인터넷에 전시하는 게 비단 패션이나 몸매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구는 외제차, 누구는 유명세, 누구는 파인 레스토랑의 코스 메뉴를 과시한다. 그런데 왜 운동복 입은 여성만 미움 받는가? 혹시 현실의 성차별과 여성혐오가 온라인에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세세한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허세녀’, ‘셀기꾼’을 무턱대고 조롱하고 싶은 건 아닌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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