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상속 분쟁 재판 첫 변론기일
구광모 회장, 큰아버지 양자 입적
하범종 LG 사장 증인으로 출석
“원고 측, 고 구본무 회장 메모 확인”
세 모녀 “유언 있다고 속아 상속 합의”

ⓒ뉴시스·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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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가(家) 상속 분쟁 소송 첫 변론 기일에서 장자인 구광모 LG 회장에게 본인의 모든 경영 재산을 물려주라는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유지가 담긴 메모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세 모녀도 메모를 확인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5일 재판에서는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유지(고인이 생전에 가졌던 생각)가 담긴 메모가 있었고, 원고인 세 모녀도 이를 확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1부(부장판사 박태일)는 이날 오후 구본무 전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가 구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회복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원고 측인 세 모녀와 피고 측인 구 회장은 이날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양측 법률 대리인만 참석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하 사장은 구 전 회장 별세 전후로 그룹 지주사인 LG의 재무관리팀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룹 총수 일가의 재산 관리와 상속 분할 협의 등을 총괄했다.

이번 증인 신문의 쟁점은 세 모녀가 구 전 회장의 유지가 담긴 문서를 인지했는지 여부였다. 원고 측은 “김영식, 구연경 씨는 구 회장이 LG 주식을 모두 상속받는다는 유언이 있었던 것으로 속아서 협의서를 작성하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 사장은 “유언장 언급은 없었다”며 “(원고들에게도) 유언장이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선대 회장의 뜻이 담긴 메모라고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7년 4월 뇌종양 판정을 받은 구 선대 회장이 수술 전에 병실로 불러 경영 재산을 모두 구광모 회장에게 승계하겠다고 했다”며 “그 내용을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정리해 다음 날 선대 회장의 자필 서명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 사장은 “메모는 원고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참고 자료로 활용했다”며 며 “(그룹의)주요 주주들은 장자가 승계해야 한다는, 구자경 명예회장 시절부터 내려오는 컨센서스를 잘 알고 있고 이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 (구 선대회장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 사장은 메모를 원고 측에게 공유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세 모녀 측은 해당 메모를 확인한 기억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 사장은 “상속 절차를 보고하면서 여러 차례 보여드렸다”며 “문서가 유언장 같은 법적 효력을 가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해당 메모는 상속 절차가 마무리된 후 관행에 따라 폐기했다”고 말했다.

원고 측의 증인 신문 이후 피고인 구 회장 측의 반대 신문이 이어졌다. 피고 측은 “승계 과정에서 정식 유언장이 작성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하 사장은 “상속 실무를 몇 차례 담당했지만, 유언장이 작성된 적은 없다. 모두 합의로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피고 측은 김영식 여사가 직접 서명한 동의서 등을 증거로 내밀며 상속 재산 분할 합의 과정을 공개했다.

하 사장은 “처음에는 (원고 측이) 전체 지분이 구 회장에게 가는 것에 동의했다가 김영식 여사가 ‘딸들이 주식을 한 주도 못 받는 것이 서운하다’고 했다”며 “구 회장과 상의해 지분 2.52%를 원고들에게 주는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 측이 제안에 동의해 2차 상속 분할 협의서를 작성했다”며 “2차 초안에 인감을 찍으려고 갔더니 (김 여사가) 기부처를 늘려야겠다고 해서 3차 상속 분할 협의서를 들고 갔고 승인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분할 협의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해서 협의서 작성에 이른 것”이라며 “원고들은 이후에도 상속세 납부나 재산 관리를 평소처럼 재무관리팀에서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구광모 회장은 큰아버지인 구본무 선대회장의 외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2004년 양자로 입적했다. LG그룹 장자승계 원칙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LG가에선 아들 위주로 경영에 참여시키면서, 장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문화를 전통으로 삼았다. 딸들도 경영 전면에 서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LG가에서 딸들의 경영 참여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18년 별세한 구본무 선대회장은 ㈜LG 주식 11.28%를 포함해 2조원 규모의 재산을 남겼다. 이 가운데 구광모 회장에게 지분 8.76%를 상속해 경영권을 물려줬다. 구연경 대표는 2.01%, 구연수씨는 지분 0.51%와 개인재산 등 5000억원 규모를 물려받았다.  

구본무 선대회장 부인 김영식 여사와 딸들은 지난 2월 "상속 재산을 법정 상속비율인 '배우자 1.5 대 자녀 1인당 1'로 재분할해야 한다"며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냈다. 구 선대회장이 아들 구 회장에게 지분을 모두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남겼다고 알고 있었으나, 그런 유언장이 없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며 상속 재산 재분할을 요구한 것이다.

재판부는 다음달 16일 하 사장을 상대로 추가 증인 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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