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레나 스키퍼 총편집장
5일 네이처 포럼 기조강연
“과학기술계 여성 진출 늘고 있지만
여성의 성과는 외면·무시당하기 일쑤
성별 고정관념, 과학기술 혁신 방해해”

막달레나 스키퍼 네이처 총편집장이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네이처 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재)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제공
막달레나 스키퍼 네이처 총편집장이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네이처 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재)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제공

노벨상 시즌이다. ‘남성들의 잔치’로도 불린다. 1901년~2023년까지 여성 노벨상 수상자는 70명도 안 된다. 수상자가 일찍 발표된 과학상만 봐도 여성들에겐 문턱이 높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안 륄리에는 역대 5번째, 2020년 이후 3년 만의 여성 수상자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카탈린 카리코는 역대 13번째, 2015년 이후 8년 만의 여성 수상자다.

“최근 120년(1901년~2021년)간 노벨 과학상 수상자 600여 명 중 여성은 23명뿐이었습니다. (...) ‘과학자는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흰 가운을 입은 백인’이라고 합니다. 잘 보세요.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과학을 하나요? 여성들입니다. 피부색도 다양합니다.”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지 최초 여성 편집장이자 유전학자인 막달레나 스키퍼의 일침이다. 그는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네이처 포럼’ 기조 강연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 연구 환경과 그렇지 못한 고정관념을 비판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과학기술 분야 진출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 연구자들은 충분한 보상(credit)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외면당하거나 무시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그는 꼬집었다. 

연구의 영향력은 연구자의 성과나 자질이 아닌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는 인식이 만연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여성들은 ‘소프트’한 사회·문화적·질적 연구 활동, 남성들은 ‘하드’한 경제·기술 관련·정량적 연구 활동을 할당받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젠더 영향력’(impact a-gender)이 연구자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성별에 따라 다른 연구 활동을 하거나 성차별적으로 평가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막달레나 스키퍼 네이처 총편집장이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네이처 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막달레나 스키퍼 네이처 총편집장이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네이처 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스키퍼 총편집장은 이러한 성별 고정관념이 과학기술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강조했다. “과거 ‘연구자’들은 대부분 특정 인종과 지역 출신의 남성이었습니다. 오늘날 점점 다양한 인종과 배경의 여성들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변화입니다. 더 다양한 연구자들이 연구에 참여할수록 더 다양한 질문이 나올 수 있고, 같은 질문도 그 방식이 다를 테니까요.”

“여성 연구자들이 더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make women visible)”고 강조했다. “우리는 연구하고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들의 성과를 일상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성 연구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상을 받아야 하고, 여성들이 연구 성과나 견해를 발표할 자리도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많은 학회나 포럼 발표자는 남성뿐입니다. 여성은 진행만 맡기도 하죠.”

네이처지는 에스티로더와 협약을 맺고 재능 있는 초기 경력 여성 연구자 등을 선정해 시상하고 상금, 네이처지와 에스티로더 계열사 소속 과학자들에게 자신의 연구를 소개할 기회 등을 제공하는 ‘영감을 주는 여성 과학자상’(Inspiring Women in Science award)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연구 설계, 분석, 보고에 이르기까지 여성과 소수인종 등 다양한 성·젠더를 충분히 고려했는지 명시하도록 한 ‘리서치의 성·젠더 평등(The Sex and Gender Equity in Research, SAGER) 가이드라인’도 도입했다.

스키퍼 총편집장은 재능 있는 여성들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교육 단계부터 경력을 쌓아 리더가 되기까지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과학은 협업입니다. 연구할 문제도, 데이터도 더 복잡해진 오늘날 협업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하지만 여성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소수고, 선배 남성 과학자들과 그 남성 제자들로 구성된 ‘올드 보이 네트워크’(old boy network)에 진입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연구에 대한 정당한 인정을 받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연구팀의 최소 25~30%는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로 채워야 그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 아이디어나 보상을 빼앗기지 않도록 특허 출원 등을 도울 멘토도 필요합니다.”

‘네이처 포럼’이 5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렸다. 네이처지 최초 여성 편집장인 막달레나 스키퍼 등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네이처 포럼’이 5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렸다. 네이처지 최초 여성 편집장인 막달레나 스키퍼 등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이번 ‘네이처 포럼’은 ‘성과 젠더 분석을 통한 과학기술 연구 우수성 증진’을 주제로 열렸다. 스키퍼 네이처 총편집장의 기조강연에 이어 니라오 샤 스탠퍼드대 교수, 김은준 KAIST 교수, 카렌 루 UCLA 교수, 제나 윈스 미시간대 교수,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박성미 고려대 교수 등 기초과학·의학·데이터 과학에 성별 특성 반영 연구를 선도하는 전문가들이 주제 강연을 펼쳤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재)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 한국연구재단, 네이처, 네이처 메타볼리즘이 공동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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