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AP/뉴시스]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각) 하원의장에서 해임된 후 의사당을 나서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각) 하원의장에서 해임된 후 의사당을 나서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업무 일시 중단)'이 45일짜리 임시예산으로 미봉됐지만 미국 의회, 특히 공화당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케빈 메카시 하원의장이 사상 처음으로 의원들의 손에 해임됐다. 매카시가 협상의 조건으로 내건 우크라이나 지원예산은 삭감됐다. 

공화당 하원은 매파들에게 휘둘렸으며 앞으로도 그 가능성은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은 여전히 공화당 내분의 화약고가 될수 있다.

미 의회 234년 역사에 새로운 기록 '케빈 매카시'

케빈 매카시는 미 의회 234년 역사상 새로운 기록을 세운 인물이로 남게됐다. 명예로운 기록이 아니라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다.

미국 권력서열 3위에 해당하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해임안이 지난 3일(현지시각) 미 하원에서 가결됐다. 미 하원의장 임기 도중 해임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미 의회 역사에서 처음이다.

미 역사상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이 제출된 것은 1910년 조지프 캐넌(공화·일리노이), 2015년 존 베이너(공화·오하이오) 전 하원의장에 이어 세 번째이지만,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마했던 기록이 순식간에 세워졌다. 미 하원은 이날 맷 게이츠 의원이 발의한 매카시 의장 해임결의안을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통과시켰다. 게이츠가 해임안을 발의한 지 하루만이다.

표결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 208명은 전원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공화당에서도 법안 발의자인 맷 게이츠 의원 등 8명이 이탈했다.

하원은 공화당 221석, 민주당 212석으로 의석 수 격차가 10석이 채 안 된다. 당초 민주당에서 기권표가 많이 나와 결의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왔었다. 4명이 투표하지 않은 민주당에서 반대표가 한 표도 나오지 않은 반면 공화당의 경우 강경파 8명이 찬성 표를 던졌다.

매카시 의장은 지난 1월 취임 후 9개월 만에 물러났다. 

'프리덤 코커스'와의 질긴 악연

케빈 매카시 의장의 해임안을 발의한 맷 게이츠 의원 ⓒ트위터
케빈 매카시 의장의 해임안을 발의한 맷 게이츠 의원 ⓒ트위터

매카시는 공화당 의원 208명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를 해임하는데는 반대자 8명만 필요했다.

AP통신은 이들 8명 대부분은 지금까지 매카시의 팬클럽 회원이 된적이 없었다고 비꼬았다. 이들은 매카시가 연방정부의 '셧다운'(업무 일시 중단}을 피하기 위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맺은 거래에 불만을 나타냈다.

매카시 의장 해임결의안은 민주당이 아닌 자신이 소속된 공화당 의원이 냈다. 맷 게이츠 의원(공화·소속·플로리다)이 그 주인공이다.

게이츠는 공화당 소속 강경파 의원들의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에 소속돼 있다.

해임안을 제출한 공화당 맷 게이츠 의원을 비롯해 앤디 빅스·일라이 크레인(이상 애리조나), 켄 벅(콜로라도), 팀 버쳇(테네시), 밥 굿(버지니아), 낸시 메이스(사우스캐롤라이나), 맷 로젠데일(몬태나) 등 공화당 강경파 8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매카시 하원의장과 공화당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와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 하원의장에 당선될 때에도 매카시는 공화당 내 강경파와의 줄다리기 속에서 15번의 투표 끝에 가까스로 자리에 올랐다. 하원의장이 첫 투표에서 선출되지 않은 것은 1913년 이래 단 두번 있었던 걸 감안하면 매카시 의장은 선출될 때부터 뜻하지 않게 굴욕적인 진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매카시 의장도 친트럼프계로 분류되지만, 공화당 강경파들은 '2020년 대선 부정선거론'에 동조하지 않는 매카시에게 불만을 표출해 왔다. 

매카시는 15번이나 이어지는 투표 과정에서 공화당 강경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획기적인 회유책을 내놓았는데, 결국 이것이 매카시의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당시 매카시는 하원 운영위(규칙위)에 프리덤 코커스 계열 의원 3명을 안배하고, 하원의장 불신임 발의 권한을 의원 1명이 할 수 있도록 조건을 크게 낮췄다. 
 
전날 게이츠 의원이 하원의장 해임결의안을 제출할 수 있었던 것도 매카시 의장이 하원규칙을 바꿨기 때문이다. 
 
협상 파트너 내친 민주당 '하킴 제프리스'

[워싱턴=AP/뉴시스] 하킴 제프리스 미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워싱턴=AP/뉴시스] 하킴 제프리스 미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민주당의 지원 표결 없이는 강경파 '프리엄 코커스' 의원들의 위력은 대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은 자신들과 전혀 성향이 맞지 않은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과 뜻을 같이 했다.

타임(TIME)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민주당 지도부는 매카시 의장을 보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매카시를 몰아내려는 공화당 의원 8명에게 동조했다. 사상 첫 하원의장 해임 성공은 민주당 하원 의원들의 만장일치 찬성 때문이었다.

매카시의 협상 상대인 민주당 하원 원내 대표 하킴 제프리스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해임 찬성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다.  

45일짜리 임시 예산안에 합의해 연방정부 셧다운을 막는데 기여한 매카시 의장이지만, 그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표결 전 동료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하원에서 공화당의 내분을 끝내는 건 공화당 의원들의 책임"이라며 "이들이 진실되고 종합적인 방법으로 MAGA 극단주의에서 탈피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주당 지도부는 의장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카시 의장이 임시 예산안 통과에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부채한도 협상 당시 자신이 했던 약속을 뒤집고 상황을 셧다운 위기까지 몰고 간 잘못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카시 의장이 오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거취를 놓고 민주당과 협상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점도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낸시 펠로시(민주·캘리포니아) 전 하원의장 또한 민주당이 매카시 의장을 도울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결탁했다는 이유로 축출된 매카시 의장은 결국 민주당의 손에 내쳐졌다. 

우크라이나 "셧다운 협상의 인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 의회를 방문해 척 슈머 민주당 상원원내 대표와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만나 지원을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X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 의회를 방문해 척 슈머 민주당 상원원내 대표와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만나 지원을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X

미 의회는 '셧다운' 현실화를 몇시간 앞두고 45일짜리 임시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임시예산안에는 일단 11월 중순까지 정부 지출을 현수준으로 동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화당 내 반대가 많았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빠졌다. 민주당이 반대한 미국 국경강화 예산도 제외됐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이번 임시예산안 통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은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해야할 일이 정말 많은 나라이다. '벼랑끝 게임'을 이제 끝내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임시예산안에 우크라이나 지원금이 빠진 것을 언급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중단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가 침략에 맞서 스스로 방어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을 하원의장이 지킬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매카시 당시 하원의장은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무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미국 국경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440억 달러(약 59조 7700억원)의 안보 지원을 제공했다. 지난 8월 추가 지원을 위해 240억 달러(32조원)를 의회에 요청했다.

CNN은 임시예산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예산이 삭감된 뒤  우크라이나 현지 반응을 전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은 '사건'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쿨레바 장관은 월요일 키이우에서 열릴 EU 외무장관 회담에 앞선 연설에서 "의회와 공화당, 민주당 양측과 매우 깊이 있는 논의를 하고 있으며, 미국의 셧다운 가능성을 배경으로 이 같은 결정을 그대로 내렸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의회 양측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민 테티아나 오스타프추크는 "우리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지원이 정말 필요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갑자기 미국이 더 이상 우리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일이 생겨도 우리는 우리의 땅을 지키기 위해 모두 싸울 것이다. 지원이 있다면 더욱 쉬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군인인 볼로디미르 코스티악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미국 내부의 게임"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이 논의의 인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너무 커서 우크라이나도 그 일부"라며 "내부의 정치적 투쟁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미국내 정치 게임의 화약고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군 제 53 기계화 여단 병사들이 작전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X
우크라이나군 제 53 기계화 여단 병사들이 작전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X

가까스로 의회를 통과한 임시예산안은 말 그대로 45일짜리 '땜질 예산안'이다. 매카시 해임에 앞장섰던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본예산 협상에서 양보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프리덤 코커스는 자신들의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산안 처리 과정에 번번이 제동을 걸어왔다. 

2015년에도 이들은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구제 정책을 비판하며 집단 반대 표결에 나서 셧다운 위기가 불거졌다. 당시 존 베이너 전 하원 의장이 예산안 처리를 위해 민주당과 협상하다 프리덤 코커스의 압박을 받아 의장직을 사임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내년 대선 공화당 당내 경선에서 선두를 달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프리덤 코커스’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17일 방송된 N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다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24시간에 평화 협정을 체결하도록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트럼프는 “그들은 타협으로 살상을 막을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우크라이나가 나라를 빼앗길지 관심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내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CNN은 지난 8월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대부분이 의회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추가 자금 지원을 승인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으며, 미국이 이미 충분한 지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침공 초기인 2022년 2월 비슷한 여론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62%가 미국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은  현재 대부분의 민주당원들과 공화당원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상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강력히 지지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지속적인 지원방안에 지지하고 있으며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같은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포함한 많은 상원 공화당 의원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매카시 의장이 해임되기 전 보도에서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소수의 극우파 의원들이 지출법안에 대해 민주당과 타협할 용의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축출을 추진하고 있는 하원에서는 상황이 훨씬 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임시예산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예산이 삭감된 뒤 CNN과 인터뷰한 우크라이나 주민 "미국이 지원을 완전히 철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미국 내부의 문제가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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