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여성 농업농촌 탐색교육 ‘시골언니 프로젝트’
귀촌 꿈꾸는 ‘도시언니’에 ‘비빌 언덕’된 지역여성들
청도, ‘공동육아’ 가능한 끈끈한 공동체가 자랑거리
참가자 “공동체 덕분에 시골살이 막연한 두려움 사라져“
“시골언니들, 농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하며 살고 있어…
다양하고도 소소한 즐거움 도시언니들에게 소개하고파”

'시골언니 프로젝트' 청도 1기 참가자들이 '농부언니' 신인숙 씨와 함께 청도읍 논길을 걷고 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시골언니 프로젝트' 청도 1기 참가자들이 '농부언니' 신인숙 씨와 함께 청도읍 논길을 걷고 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시간 나면 진짜 언제든 놀러 와요!”

지난 9월 12~17일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진행된 ‘시골언니 프로젝트-청도’ 1기 마지막 날. ‘시골언니’는 ‘도시언니’에게 진심 어린 목소리로 연신 당부했다.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외지인에게 이토록 조건 없는 환대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제2의 고향’이 생겨 든든한 기분을 안고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누구나 한 번쯤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복잡하고 치열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농촌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해본 적도 없는 농사로 먹고살긴 힘들 것 같고, 연고가 없다면 어느 지역으로 가야 할지도 막막하다. 게다가 대다수의 농촌은 여전히 ‘이장님’을 필두로 한 중장년층 남성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젊은 여성이라면 진입장벽은 더 높게 느껴진다. 그럴 때 ‘아는 시골언니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 ‘시골언니 프로젝트’다.

올해로 2년 차를 맞은 이 사업은 국민참여예산 제도를 통해 선정돼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있는 ‘청년여성 농업농촌 탐색교육’이다. 기존 귀농·귀촌 지원사업은 주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창업지원이나 농기계 대여 등에 그쳐, 귀촌할 지역을 고르는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는 젊은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었다. 시골살이에 관심 있는 ‘도시언니’와 먼저 정착해 살아본 ‘시골언니’ 사이에 다리를 놔주는 사업이 필요했던 이유다. 올해는 전국 12개 지역에서 250여명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는 단순히 도시와 지역의 여성들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귀촌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초심자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이를 통해, 지역에서의 삶을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낭만화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창업언니' 김은성 씨가 '시골언니 프로젝트' 청도 1기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제로웨이스트샵 창업 과정과 운영 방식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창업언니' 김은성 씨가 '시골언니 프로젝트' 청도 1기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제로웨이스트샵 창업 과정과 운영 방식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청도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살고 있는 다섯 명의 ‘시골언니’를 만났다. 농업 뿐만 아니라 서점, 펜션, 라탄 공방, 제로웨이스트샵까지 사업 분야도 각양각색이다. 언니들은 자신이 어쩌다 청도에 내려오게 됐는지, 로컬에서 어떻게 사업의 기회를 찾아 이어오고 있는지, 시골살이의 장단점은 무엇인지를 아낌없이 전해줬다.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섣불리 퇴사하기보다는 대출을 최대한 받고 나오라”는 현실적인 충고부터, “도시에서보다 노동력이 2배 이상 드니, 오히려 아파서 병원을 자주 다녀야 하는 노년기보다는 젊을 때 귀촌하는 게 좋을 수 있다”는 통념을 깨는 조언도 이어졌다.

지방에서의 삶은 분명 도시와 비교했을 때 ‘불편’하다. 시골언니들은 기술자 등 인력이 적다 보니 많은 일들을 스스로 해내야 하고, 마을 규모가 작다 보니 ‘프라이버시’가 없다고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배민 ‘텅’이 뜬다”(배달 가능한 음식점이 없다)는 걸 단점으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언니들의 얼굴에서는 진심으로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여유와 즐거움이 묻어났다.

좋은 자연환경도 한몫하겠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끈끈한 공동체다. 자신의 강연 순서를 마친 시골언니들은 시간이 맞으면 다른 시골언니와의 만남에도 자연스레 동행했다.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날에는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다 함께 둘러앉아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청도 1기 일정에 동행한 '노는엄마들' 대표 배정란 씨와 아이의 모습. ⓒ시골언니 프로젝트
'시골언니 프로젝트' 청도 1기 일정에 동행한 '노는엄마들' 대표 배정란 씨와 아이의 모습. ⓒ시골언니 프로젝트

이같은 지역공동체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가 청도 지역 여성 양육자들의 모임 ‘노는엄마들’이다. 11명의 엄마들로 구성된 이 모임의 각 가정 평균 자녀수는 3명으로 모두 ‘다자녀 가구’다. 한국의 올 하반기 합계출산율이 0.7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도시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비결은 서로의 아이를 구분 없이 돌보는 ‘공동체 육아’에 있었다. 말로만 듣던 공동육아는 사실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프로그램 내내 어디를 가든 갓난아기가 동행했다. 엄마가 봐줄 수 없다면 다른 엄마가 아이를 안아들고 달래거나 밥을 먹였다. 노는엄마들 대표 배정란 씨는 “아이를 낳고도 자유롭게 활동이 가능하니, 더 낳을 생각이 없던 가정도 자연스레 ‘다둥이’ 가족이 됐다”고 설명했다.

1인 가구와 비혼의 증가 등 도시에서 파편화된 개인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도시언니들에게 지역공동체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폐쇄적인 과거의 농촌공동체와 달리, 열린 마음과 젠더 감수성을 갖춘 ‘언니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시골살이의 ‘완충 지대’ 역할을 해준다면 ‘시골은 여자 혼자 살긴 위험하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이번 청도 시골언니 1기에 참여했던 안세희 씨는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갔다 오기 전에 (농촌에 대해) 생각했던 막연한 불안한 지점은 (도시에 비해) 자원과 인프라가 부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거였다”며 “그걸 사회적 연결망, 공동체를 통해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걸 직접 체험해서, 시골이 위험하거나 두려운 공간이 아니라는 걸 피부에 와 닿게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청도 1기 참가자들이 로컬푸드로 끼니를 만들어 먹는 활동을 하고 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시골언니 프로젝트' 청도 1기 참가자들이 로컬푸드로 끼니를 만들어 먹는 활동을 하고 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시골언니들은 참가자들이 당장 귀촌하지 않더라도, 도시에서와는 다른 삶을 모색해보고 싶어질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지역과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며 이 사업에 임하고 있다. 도시와의 “관계인구”를 늘리는 것 역시 지역의 강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청도 시골언니 프로젝트의 현장 운영기관인 온누리국악예술인협동조합 대표 구승희 씨는 “(기존에) 청도에서 농업 외 다른 영역에서 일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시골언니들을 많이 알고 있었어요. 우리의 다양하고도 소소한 즐거움을 도시의 언니들에게 많이 소개해주고 싶었어요”라며 “도시 생활에 지친 언니들이 시골의 여유로움과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농촌의 다양한 삶에 대한 이해도 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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