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예산안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지원예산 삭감
다양성 포럼·성폭력 사례집 등 존폐 위기
창작·제작 등 영화 생태계 예산 일괄 축소
“문화 민주주의 파괴된 예산 개탄스러워”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
한국영화성평등센터가 주관하는 '한국영화다양성 주간' 포럼에서 상영된 영화 '다음 소희'  ⓒ트윈플러스

내년도 영화계 창작·제작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돼 영화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영화계 성폭력·다양성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든든)의 예산도 대폭 삭감된 사실이 드러났다.

넷플릭스·일본에 주목받은 성평등센터, 각종 성과에도 불구하고 예산 삭감

문화체육관광부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2020~2024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 및 성인지 예산안’을 보면 문체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는 내년도 든든 지원예산을 3억5000만원으로 편성했다. 4억5000만원으로 편성된 올해 예산 대비 25%가량 감소한 것이다.

든든은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지원을 받아 발족한 단체다. 2016년 영화계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공론화한 ‘영화계 미투’ 이후 영화산업 내 성평등한 환경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1년여의 준비 끝에 2018년 설립됐다.

영진위 지원금을 기반으로 △성폭력 예방교육 △성폭력 피해자 지원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성폭력 사례집 △한국영화다양성 포럼 △다양성 통계 제작 등 영화계 성평등·다양성 의제를 전문적으로 다뤄왔다.

지난 5년간 든든이 실시한 성폭력 예방교육은 총 652회, 이수자는 1만6671명이며, 영화산업 내 성폭력 예방교육 표준강의안과 해설서도 매년 개발, 공개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가 든든과 협업해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고 자체 가이드라인을 제작했고, 미투가 이어고 있는 일본영화계에서 든든을 취재하는 등 모범사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 5주년 보고회’ 현장. 든든 센터장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 영화평론가 조혜영 운영위원, 영화 ‘애프터 미투’의 이솜이 감독,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세아 기자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 5주년 보고회’ 현장. 든든 센터장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 영화평론가 조혜영 운영위원, 영화 ‘애프터 미투’의 이솜이 감독,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세아 기자

그러나 영진위의 내년도 예산 삭감으로 든든이 맡고 있는 주요 사업들이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든든 관계자는 “성폭력 예방교육과 피해자 지원과 같은 필수사업은 겨우 현행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례집, 영화다양성 포럼, 통계 등 사업을 축소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존속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든든이 실시하는 ‘영화계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는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 3년 주기로 시행하고 있는데, 영진위가 내년에 시행될 실태조사 예산도 절반 이상 축소하면서 연구모델 개발과 면접 조사 없이 온라인 설문조사만 진행하게 됐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든든 지원예산을 축소한 이유를 “영진위 사업 운용에 쓰이는 영화발전기금이 줄었고 든든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영화계 성폭력 피해자 법률지원 건수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든든은 “다년간의 코로나 펜데믹으로 영화인의 수가 줄면서 법률지원 건수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폭력 예방교육 신청 건수가 급증해 교육인력을 늘려야 하는 만큼 예산 축소가 아닌 충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문화 민주주의 파괴된 예산 개탄…재검토해야”

국내 56개 영화제로 구성된 국내개최영화제연대가 21일 영진위에 “2024년 영화제 지원 예산 50% 삭감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국내개최영화제연대 보도자료 캡처화면
국내 56개 영화제로 구성된 국내개최영화제연대가 21일 영진위에 “2024년 영화제 지원 예산 50% 삭감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국내개최영화제연대 보도자료 캡처화면

든든의 사업예산 및 실태조사 예산 삭감은 영화 생태계 관련 예산이 전반적으로 삭감된 것과 더불어 성평등·다양성 정책을 축소하는 현 정부의 기조가 결합된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 6월 15일 ‘영화진흥위원회, 도덕적 해이 심각 방만·부실 운영으로 국민 혈세 낭비‘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독립영화제작지원 사업 집행률 저조’, ‘블랙리스트 특위의 연장 운영’ 등을 지적했다.

영진위는 이를 근거로 ‘독립영화제작지원’ 40% 이상 삭감, ‘국내·국제영화제 지원’ 전년 대비 50% 이상 삭감,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마련’ 사업 100% 삭감 등 영화 생태계와 관련된 예산 전반을 삭감해 영화인들의 반발을 샀다.

또한 지난 7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성인지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서'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도 성인지 예산을 올해(4747억원) 대비 1707억원(-35.9%) 줄어든 3040억원으로 책정했다.

성인지 예산에 포함된 든든 역시 사업예산이 축소됐으며, '디아스포라 영화제', '종로다양성영화제' 등을 지원한 ‘문화다양성 확산사업’ 예산은 12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액 삭감됐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지난 21일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대종상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 주요 영화제들과 영화인들은 성명서를 내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 철회를 촉구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또한 26일 성명서를 내고 “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차기 연도 사업과 예산에 관련해 영화인들과 정책적 토론 및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생략했다”며 정부의 소통 부재를 지적했다.

협회는 “문화 민주주의 자체가 파괴된, 시대를 역행한 문화행정의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에 "2024년 영화진흥위원회 예산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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