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프랜차이즈 제빵기사 노동실태조사’ 국회토론회
9시간 동안 빵 400~900여개 생산…점심시간도 반납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근로시간만 9→8시간으로 감축
육아휴직 복귀 신청했는데 자리 없다며 ‘거부권’ 행사
“관리자 교육하고 최소한의 기준인 법만 지켜달라”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프랜차이즈 제빵기사 노동실태조사’ 토론회에서 임종린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프랜차이즈 제빵기사 노동실태조사’ 토론회에서 임종린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쇼케이스랑 매대에 있는 빵을 보면 되게 혐오스럽다.”

14년차 제빵기사 A씨가 퇴사 사유를 밝히며 했던 말이다. A씨는 부모님이 상을 당했는데도 대체근무자를 구하지 못해 임종을 지키지도, 장례식장으로 가지도 못하고 9시간을 근무해야만 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프랜차이즈 제빵기사 노동실태조사’ 토론회에서 과로와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는 프랜차이즈 제빵기사들의 한맺힌 목소리가 전해졌다.

사회를 맡은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수치로 나오는 설문조사 결과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왜 과로하며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는지 알기 위해 인터뷰를 하고 이번 토론회를 열게 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는 제빵기사들이 과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생산해야 하는 물량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점을 꼽았다.

박선영 중앙대학교 중앙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은 “평균적으로 9시간 동안 하루 400~900여개의 빵을 생산해야 한다. 종류는 최소 50개~100개다. 여기에 부수적 업무 1시간 이상이 더해진다”며 “시간 내에 다 생산하거나, 연장수당을 받지 않고 일을 다 하고 가거나, 점심시간에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근무시간을 맞추기 위해 편법으로 단축매장을 운영하는 곳도 늘었다고 지적했다.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하루 근로시간만 기존 9시간에서 8시간으로 감축하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물량과 생산종류는 줄지 않았는데 노동시간만 8시간으로 단축해 도급비를 줄인다. 인건비를 아끼면서 휴무나 노동시간을 줄이는 문제를 기사들에게 감당하게 한 것”이라며 “당연히 기사들은 (시간 내에) 물량을 맞출 수 없다. 점주들은 (퇴근 시간을) 일단 찍으라고 한다. 찍고 일하라는 뜻이다. 현장 기사들은 이를 ‘유령근무’라고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단축근무를 요청했다가 12일만 근무하고 나머지를 본인의 연차로 쉬라고 통보받은 임신근로자의 ‘휴무표’. ⓒ민주노총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제공
단축근무를 요청했다가 월 12일만 근무하고 나머지를 본인의 연차로 쉬라고 통보받은 임신근로자의 ‘휴무표’. ⓒ민주노총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제공

프랜차이즈 제빵기사 중 여성은 80%에 달한다. 대표적인 여성 집중사업장이지만, 모성보호제도는 여전히 교묘한 방식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만삭이 돼도 그냥 일하고, (관리자들이) 기본 노동법도 모르기 때문에 기본 9시간, 10시간씩 연장근로를 시키고, 새벽에 출근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9월, 8시간 단축근무 사업장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임신근로자 B씨에게 점주는 “임신근로자를 누가 원하겠냐”며 8시간 단축근무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8시간 초과하면 너 법 위반이야”라고 역으로 으름장을 놨다. 업무량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해당 근로자는 결국 과로에 시달렸다.

당장 이번달에도 임신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불이익은 발생하고 있다. C씨는 단축근무를 요청했다가, 새로 배치해주겠다는 사업장이 자차 없이는 통근이 어려운 곳이라 거절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회사는 “배치하려고 했는데 안 간다고 했으니 본인 연차로 쉬어야 한다”고 통보했다. 그 길로 C씨는 한 달에 12일밖에 근무할 수 없는 ‘휴무표’를 받았다. 임 지회장은 “해당 기사는 아직도 이렇게 근무하고 있고 해결이 안 됐다”고 전했다.

이어 임 지회장은 “회사는 모성보호 수칙 등을 지키고 있다지만 와닿지 않는다. 현장에 전달이 안 된다”며 “육아휴직 복귀를 신청한 근로자에게 ‘자리가 없다’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 곳도 있다. 휴직을 무조건 6개월씩 나눠 써야 한다고 하는 사업부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근로자가 스스로 (단축근무를) 포기하게끔 만든다”고 꼬집었다.

이어 “회사는 또 억울해하고 ‘회사에 얘기하지 왜 나가서 하냐’고 하겠지만, 이유는 딱 하나다. 관리자 교육하라고 몇 년째 요구했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어서다”며 “여성직원이 많기 때문에 여성친화적인 기업이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배 대표는 “법은 최소한의 것이다. 그 기준만은 지키라고 하는 게 법이다”며 “노조와 척질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협력하며 회사와 노동자 모두 ‘윈윈’할 수 있을지 관리자들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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