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두 번째 개인전 연 장혜진
코로나19 우울증 계기로 붓 잡아
‘유튜브 독학‘으로 그리며 회복
기후위기 속 생명의 소중함·희망 그려

가수이자 화가 장혜진이 서울 강남구 갤러리치로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지난 1년간 그린 작품 20여 점을 공개했다. ⓒ갤러리치로 제공
가수이자 화가 장혜진이 서울 강남구 갤러리치로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지난 1년간 그린 작품 20여 점을 공개했다. ⓒ갤러리치로 제공

가수이자 화가 장혜진(58)을 만나러 가는 길, 라디오에서 ‘1994년 어느 늦은 밤’이 나왔다. 가을이다. 장혜진의 그림도 가을을 닮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가을 햇살같이 단풍같이 색색의 물결이 춤추는 산을 즐겨 그린다.

데뷔 31년 차 ‘발라드 장인’, 한양여대 실용음악과 전임교수, 암벽등반가. 장혜진은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부지런히 자신의 수식어를 늘려 가는 중이다. 지금은 그림에 푹 빠졌다. 얼마 전 서울 강남구 갤러리치로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가수이자 화가 장혜진이 서울 강남구 갤러리치로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지난 1년간 그린 작품 20여 점을 공개했다. ⓒ갤러리치로 제공
가수이자 화가 장혜진이 서울 강남구 갤러리치로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지난 1년간 그린 작품 20여 점을 공개했다. ⓒ갤러리치로 제공

코로나19를 계기로 붓을 들었다. 2020년 안식년을 맞아 계획한 공연·뮤지컬 일정이 감염병 확산으로 죄다 취소됐다. 좋아하는 여행과 등산은커녕, 사람도 만날 수 없자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러다가 2016년 미국 국립공원 트레킹 여행 사진을 다시 봤다. 자이언 캐년(Zion Canyon)에서 만난 거대한 바위산, 그 사이의 산양들과 작은 나무들이 보였다. “이 세상에 죽은 것은 없구나, 다 살아가는구나.... 그 감동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주로 여행이나 일상에서 만난 자연 풍경을 화폭에 옮긴다. 스위스 마터호른,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성인봉... 유독 산을 많이 그린 건 암벽등반이 취미라서다. 올해로 8년째, 한창 열중할 땐 등 파인 무대의상을 입자 매니저가 ‘거북이 등’ 같다며 감탄했단다. 도봉산 절벽을 오르며 목표 지점인 나무를 바라보던 순간,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장엄한 울산바위도 그렸다.

장혜진 작가가 도봉산 암벽을 오르며 목표 지점인 나무를 바라보던 순간을 그린 작품. Flow Sonata OP 04, 130.4x162cm, Oil on canvas, 2023 ⓒ갤러리 치로 제공
장혜진 작가가 도봉산 암벽을 오르며 목표 지점인 나무를 바라보던 순간을 그린 작품. Flow Sonata OP 04, 130.4x162cm, Oil on canvas, 2023 ⓒ갤러리 치로 제공
장혜진, Flow Sonata OP 01, 100x200cm, Oil on canvas, 2023 ⓒ갤러리 치로 제공
장혜진, Flow Sonata OP 01, 100x200cm, Oil on canvas, 2023 ⓒ갤러리 치로 제공

전시 제목은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소나타’. 환경파괴, 기후위기로 사라져가는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았다. “어차피 우리 모두 돌아갈 곳은 자연이잖아요.” 보이는 그대로 그리기보다 자신만의 선과 색채를 덧입혔다. “색감이 눈에 띈다고들 하시는데 전부 자연에 존재하는 색이지요.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늘 고민해요.”

모든 그림에 피아노가 등장한다. 전시장에도 그랜드피아노를 뒀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작품 안에서 숨 쉬는” 작가 자신을 상징한다. 동선을 따라가면 푸른 초목이 우거진 산과 들판을 그린 작품을 마지막으로 마주하게 된다. 다시 살아나는 자연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

전시장엔 작가를 상징하는 그랜드피아노, 작가가 실제로 암벽 등반에 사용하는 장비들을 뒀다. ⓒ이세아 기자
전시장엔 작가를 상징하는 그랜드피아노, 작가가 실제로 암벽 등반에 사용하는 장비들을 뒀다. ⓒ이세아 기자
아침고요수목원의 천 년 넘은 향나무를 그린 작품. Flow Sonata OP 03, 117x91cm, Oil on canvas, 2023 ⓒ갤러리치로 제공
아침고요수목원의 천 년 넘은 향나무를 그린 작품. Flow Sonata OP 03, 117x91cm, Oil on canvas, 2023 ⓒ갤러리치로 제공
장혜진, Flow Sonata OP 05, 130.4x162cm, Oil on canvas, 2023 ⓒ갤러리 치로 제공
장혜진, Flow Sonata OP 05, 130.4x162cm, Oil on canvas, 2023 ⓒ갤러리 치로 제공
푸른 초목이 우거진 산과 들판을 그린 작품. 다시 살아나는 자연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 Flow Sonata OP 17, oil on canvas, 53 x 45cm, 2023 ⓒ이세아 기자
푸른 초목이 우거진 산과 들판을 그린 작품. 다시 살아나는 자연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 Flow Sonata OP 17, oil on canvas, 53 x 45cm, 2023 ⓒ이세아 기자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유튜브 강의를 보며 독학했다. 화가들은 채색할 때 물감이 번지지 않도록 마스킹테이프나 마스킹 액을 쓰는데, 그런 방법이 있는 줄 몰라 숨도 못 쉬고 집중해서 한 땀 한 땀 붓질을 했다며 웃었다. “미술을 배우지 않았기에 그릴 수 있는 독창적인 그림”이라는 호평도 받았다.

“그림을 원래 좋아했고 어릴 적 사생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혼자 낙서하는 수준이었는데요. 유튜브 강의를 보며 연필, 볼펜, 색연필, 아크릴, 유화까지 도전했어요. 유화가 참 좋아서 계속 배우고 그리다 보니 어느새 힘든 시간을 벗어나고 있었어요. 그림이 절 살린 거지요. 노래할 때처럼 그림 그리는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요. 참 행복해요.”

지난해 연 첫 개인전은 ‘완판’을 기록했고, 이번 전시작품 20여 점도 대부분 팔렸다. 우연히 장혜진의 그림을 보고 전시회를 열자고 설득한 이정권 갤러리치로 대표, ‘전시를 열어 봐야 실력이 는다’며 용기를 준 권지안(솔비) 작가, “엄마가 이렇게 대단한 그림을 그리는 줄 몰랐다”며 기뻐했다는 딸 강은비 씨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가수 장혜진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제 그림을 좋게 봐줬을까 싶어서 제 작품들을 더 돌아보게 돼요. 이번 전시를 열면서 ‘작가로서 발전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칭찬이 참 기뻤어요. 사람들이 가수가 아닌 작가로서 제 그림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올 하반기에도 싱글 앨범 발매 준비와 새로운 음악 작업, 10월 가수 김종서와의 합동 공연 등으로 분주하다. “가수, 화가, 교수, 엄마 등 여러 역할에 그때그때 충실하면서 살려고 해요. 후배들을 위해 길을 닦아놔야 하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지금은 제게 중요한 일들만 잘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하고픈 게 참 많거든요. 죽기 전에 우리나라 50대 명산은 다 가 보려고요. 절반 이상은 벌써 다녀왔어요. 다음 작업 구상도 곧 시작해야죠.”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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