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키아프는 막을 내렸지만 한국의 ‘미술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전국 곳곳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이어지는 가을, 놓치기 아쉬운 여성 작가들의 전시를 소개한다. 폭력의 아픔을 딛고 여성의 힘과 생명력을 표현한 예술부터, 한국 추상화 거장이 토로한 인간적인 고뇌, 영미권에서 주목받는 젊은 여성 작가의 한국 첫 전시까지 다채롭다. 추석 연휴 가벼운 나들이로도 좋겠고, 몰랐던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과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겠다.

카렐 아펠과 니키 드 생팔 특별 기획전
10월7일까지 서울 강남구 오페라 갤러리

니키 드 생팔, I Am Upside Down (verte), 1997, Acrylic on polyester resin, 117x80x14cm ⓒ오페라갤러리 제공
니키 드 생팔, I Am Upside Down (verte), 1997, Acrylic on polyester resin, 117x80x14cm ⓒ오페라갤러리 제공
오페라 갤러리에서 열리는 2인전 ‘새로운 출발, 아이의 눈으로: 카렐 아펠 & 니키 드 생팔’ 전시 전경. ⓒ오페라갤러리 제공
오페라 갤러리에서 열리는 2인전 ‘새로운 출발, 아이의 눈으로: 카렐 아펠 & 니키 드 생팔’ 전시 전경. ⓒ오페라갤러리 제공

친족성폭력의 상처, 가부장제와 억압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수년간 고통받았다. 정신병원에서 처음으로 접한 그림은 그가 세상으로 다시 힘차게 나아가는 통로이자 위로가 됐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 1930-2002) 이야기다. 풍만한 여성을 대담한 색채로 표현한 조각 작품, ‘나나’(Nanas) 연작으로 유명한 프랑스계 미국인 예술가다.

오페라 갤러리 ‘새로운 출발, 아이의 눈으로: 카렐 아펠 & 니키 드 생팔’전에서 생팔의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새의 머리를 지닌 거대한 여성 같은 생팔의 ‘괴물’들은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거부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한다. 그런가 하면 임신한 여성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나나’ 시리즈는 여성의 긍정적인 힘과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외에도 폴리에스터, 레진, 일상에서 발견된 오브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뱀, 새, 여성 등 다양한 형상을 조각으로 표현했다.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전
12월31일까지 리움미술관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7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강서경 스튜디오, 리움미술관 제공

강서경(46) 작가의 리움미술관 개인전도 놓치지 말자. 신작 포함 총 130여 점으로 작가의 미술관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전통에서 찾은 개념과 미학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재해석해 왔다. 전시장 곳곳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산의 사계, 바닥과 벽으로 펼쳐지는 낮과 밤,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귀.... 하나하나 존재감이 강하면서도 절제된 느낌의 작품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정경이 단아하고 아름답다. 작품과 작품 사이를 산책하듯 거닐어 보면 또 새롭다.

작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산’ 연작은 가을 단풍을 닮은 주홍빛과 적갈색의 실, 겨울 설경을 닮은 흰 실, 비단, 금속체인 등 다채로운 재료의 물성이 인상적이다. 조선 시대 유량악보인 정간보(井間譜)에 착안해 만든 ‘정井’ 연작, 전통 돗자리인 화문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자리’ 연작도 인상적이다. 이외에도 ‘좁은 초원’, ‘둥근 유랑’ 등 기존 연작에서 발전된 다양한 작업과 ‘산’, ‘귀’, ‘아워스’, ‘기둥’, ‘바닥’ 등 새로운 조각 설치·영상 작업을 볼 수 있다.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A Stranger to Strangers)’
10월22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

최욱경, 〈Untitled (When the Time Comes)〉, 1969, Ink on shiny paper, 42.5 x 56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When the Time Comes)〉, 1969, Ink on shiny paper, 42.5 x 56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AM I AMERICAN)〉, c. 1960s, Ink on paper, 46 x 31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AM I AMERICAN)〉, c. 1960s, Ink on paper, 46 x 31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한국 추상회화 거장 최욱경(1940-1985)의 인간적인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전시도 열렸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이 연 개인전은 그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이방인’이자 작가로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한 흔적들이다.

작가가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작업한 흑백 드로잉과 판화 29점, 크로키(인체 드로잉) 9점을 선보인다. 드로잉들은 작가의 일상을 채우던 생각의 파편들, 일기장 속 미완의 이야기들을 엿보는 듯하다. ‘과연 내게 때가 오긴 할까?’, ‘나는 미국인인가?’라는 낙서처럼 불안한 현실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상념, 자기 정체성의 혼란도 엿볼 수 있다.

이시 우드 개인전 ‘I Like To Watch’
11월12일까지 일민미술관

이시 우드 Issy Wood, 이런 그게 맞네 Unfortunately that‘s a hit, 2023, Oil on linen, 225×150.5×5cm. ⓒ일민미술관 제공
이시 우드 Issy Wood, 이런 그게 맞네 Unfortunately that‘s a hit, 2023, Oil on linen, 225×150.5×5cm. ⓒ일민미술관 제공
일민미술관이 연 이시 우드 개인전 ‘I Like To Watch’ 전시 전경. ⓒ일민미술관 제공
일민미술관이 연 이시 우드 개인전 ‘I Like To Watch’ 전시 전경. ⓒ일민미술관 제공

영미권을 중심으로 주목받는 젊은 여성 작가, 이시 우드(Issy Wood·30)의 첫 한국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다. 신작 회화 47점을 포함해 설치·영상 작품, 출판물을 선보인다. 

우드는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미술 외에도 블로그 운영, 작곡, 뮤직비디오 연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관계 맺기의 어려움과 고뇌,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 등이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주된 키워드다.

그의 그림들은 어딘지 음울하고 불길하다. 어두운 색조를 사용하는데, 린넨이나 벨벳을 바탕재로 사용해 더 흐릿하고 불분명한 인상을 준다. 중세 회화에서 본 듯한 고대 유물과 유적, 오래된 그릇, 토끼, 곰 모양의 장식품 등을 그리는가 하면, 까르띠에 시계, 포르쉐, 스틸레토힐 등 현대의 사물들도 등장시켜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안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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