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시절 작업한
흑백 드로잉·판화·크로키 등 한자리에
10월22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

최욱경, 〈Untitled〉, c. 1960s, Conté on paper, 33.3 x 51.6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c. 1960s, Conté on paper, 33.3 x 51.6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c. 1960s, Charcoal and conté on paper, 60 x 44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c. 1960s, Charcoal and conté on paper, 60 x 44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한국 추상회화 거장 최욱경(1940-1985)은 대담한 필치와 강렬한 색채로 유명하다. 거장의 흑백 드로잉, 판화와 크로키는 어떨까? 국제갤러리 부산점이 연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A Stranger to Strangers)’에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이방인’이자 작가로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최욱경은 초기 미국 유학 시절 본격적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추상 문법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가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작업한 흑백 드로잉과 판화 29점, 크로키(인체 드로잉) 9점을 선보인다. 부산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제목 “낯설은 얼굴들처럼”은 최욱경이 1972년 첫 번째 미국 체류를 마치고 잠시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시기에 출간한 국문 시집의 제목을 빌렸다. 작가가 ‘뿌리를 흔드는 경험’이라 표현했던 유학 시절 쓴 시 45편과 삽화 16점을 모은 시집이다. 이 중 삽화 6점을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국제갤러리 부산점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작가는 유학 중 잉크, 연필, 차콜, 콩테,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하고 탐구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숱한 실험과 수행을 거쳐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할 수 있었다.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 대학원 과정 진학 후에는 그간 단순히 연습 과정이라 여겼던 드로잉 작업의 중요성을 인지해 다시 기본기에 충실하고자 방대한 양의 소묘를 제작하기도 했다.

작가만의 유머를 기반으로 때론 직설적인 제목이 붙여졌던 다수의 회화 작품이 일견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식이었다면, 이 드로잉들은 작가의 일상을 채우던 생각의 파편들, 일기장 속 미완의 이야기들을 엿보는 듯하다. 종종 의식의 흐름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단어 또는 생각 등이 담긴 텍스트가 등장한다. ‘Untitled’(c. 1960s)엔 작가 자신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질적인 인물 옆에 “I DON’T KNOW WHAT YOUR DOING, BUT. I CAN’T HELP YOU BECAUSE I DON’T LIKE IT. (당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지만. 내 맘에 안 들기에 난 도와줄 수 없겠다.)”라고 썼다.

최욱경, 〈Untitled〉, c. 1960s, Pencil on paper, 21 x 15.5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c. 1960s, Pencil on paper, 21 x 15.5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When the Time Comes)〉, 1969, Ink on shiny paper, 42.5 x 56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When the Time Comes)〉, 1969, Ink on shiny paper, 42.5 x 56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AM I AMERICAN)〉, c. 1960s, Ink on paper, 46 x 31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Untitled (AM I AMERICAN)〉, c. 1960s, Ink on paper, 46 x 31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불안한 현실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상념, 자기 정체성의 혼란도 엿볼 수 있다. 1969년 3월22일이라고 명시한 ‘Untitled’ 작품엔 컴컴한 어둠에서 태아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과 함께 “When the time comes will the sun rise / … / will the time ever come to me? (때가 되면 해가 뜰까 / … / 과연 내게 때가 오긴 할까?)”라고 적었다. 이국땅에서 혼자 작업하고 생활하던 작가가 ‘나는 미국인인가?’라고 스스로 반문한 흔적도 있다(‘Untitled (AM I AMERICAN)’(c. 1960s)).

“그래도 내일은, 다시 솟는 해로 밝을 것입니다. 꽃피울 햇살로 빛날 것입니다.” 최욱경의 시 ‘그래도 내일은’의 한 대목이다. 국제갤러리 측은 “머뭇거림 없이 대범한 자신의 필치대로 꾸밈없이 솔직했던 최욱경의 시와 드로잉 작업을 통해, 제 자리에서 저마다의 혼란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오늘의 우리도 각자의 위안을 얻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10월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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