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예산 정부안서 예산 22억원 삭제
2년 연속 진행으로 공고한 뒤 1년 만에 폐지
사업 담당자는 인건비 없어 해고 위기

ⓒ문화다양성주간 홈페이지
ⓒ문화다양성주간 홈페이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 내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문화다양성 확산사업’ 예산이 12년 만에 전액 삭감됐다. 사업 진행을 위해 내년까지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된 관계자는 단숨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 사업을 주관하는 지역문화재단들은 아무런 예고 없이 이뤄진 결정에 막막함을 호소하고 있다.

18일 문체부가 류호정 의원실에 제출한 ‘2020~2024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 및 성인지 예산안’을 보면 올해 22억의 예산을 편성해 운용되던 ‘문화다양성 확산사업’이 내년도 예산 정부안에서 전액 삭감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19일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문화다양성과 관련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정비를 위해 예산을 삭제하게 됐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문화다양성 확산 사업에서 삭감된 22억원은 유사사업으로의 이전된 바 없다. 상위 항목인 ‘문화정책개발 및 진흥’ 분야의 예산이 올해 90억원에서 내년 63억원으로 27억원 가량이 줄었다.

문체부는 이에 대해 “문화다양성과 관련해 새로운 정책을 계획하고는 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계획된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2년 연속 사업으로 공고한 뒤 1년만에 폐지

ⓒ종로구청
ⓒ종로구청

문화다양성 확산사업은 각자 다른 문화를 가진 집단들이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영화제·교육·포럼 등의 행사로 교류의 장을 여는 것을 말한다.

앞서 한국은 2010년 유네스코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에 비준했다. 이후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해 2012년 ‘무지개다리’ 시범 운영을 시작, 2022년 문화다양성 확산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12년간 꾸준히 사업을 진행해왔다.

올해는 문체부 공모에 선정된 12개 지역문화재단이 각각 20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 상당의 예산을 받아 여성포럼·수어통역·이주민 교류·세대갈등 개선 등 다양한 의제로 사업을 진행했다.

또한 문체부와 각 재단은 유엔이 정한 ‘문화 다양성의 날(5월 21일)’이 포함된 주간을 ‘문화 다양성 주간’으로 명명하고 대국민 캠페인, 체험행사, 축제 등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문화다양성 확산 사업 사업설명회
ⓒ문화체육관광부

당초 문체부는 사업설명회를 통해 올해 문화다양성 확산 사업이 내년까지 이어지는 연속 사업임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지역문화재단들은 2년에 걸친 사업계획서를 준비해 문체부에 제출했으나, 지난 1일 문체부를 통해 내년도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역문화재단들은 당장 내년 사업에 쓸 예산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면서 미리 계획한 프로그램들을 시행하지 못하거나 대폭 축소하게 됐다. 문화다양성 주간에 맞춰 열었던 지역별 행사 또한 전부 폐지됐다.

A재단 관계자는 “문화다양성 사업을 통해 다양성 포럼·수어 통역·아동 축제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고 내년에도 유사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예산 삭제로 내년도 사업은 진행할 수 없게 돼 당황스럽다”고 비판했다.

다양성 영화제를 주최해온 B재단도 “원래대로면 내년에 1억 5천만원 상당의 예산을 받아 영화제에서 각종 부대행사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이 삭제돼 행사를 크게 축소하게 됐다”며 ”문화다양성 확산 사업이 시작된 이래로 12년 동안 사업에 참여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사업이 사라질 줄은 전혀 몰랐다“고 유감을 표했다.

"인력 감축까지 해야 하는데 문체부는 소통 없어"

ⓒPixabay
ⓒPixabay

예산에는 사업 진행 담당자에게 지급할 인건비도 포함돼있는데, 계약직의 경우 내년도 인건비가 삭제됨에 따라 강제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재단 대다수는 1년 단위로 계약한 사업 담당자들과 계약 연장을 못하게 됐다. 특히 일부 재단은 사업을 끝까지 맡을 담당자를 채용하고자 2년 단위 계약을 체결했는데, 내년도 인건비를 지급할 수 없게 돼 계약을 파기하고 해고를 하게 됐다.

지자체 예산을 통해 일부 사업만이라도 지속하려는 재단들 역시 “행사에 필요한 일용직을 채용할 수 없어 운영에 차질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각 지역문화재단들은 계획된 사업들을 전부 폐지하고 관련 인력도 축소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예산을 배분하는 문체부가 한 번도 소통의 장을 연 적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B재단 관계자는 “예산 삭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입장을 낼 수조차 없었다”며 “화합과 공존의 취지로 사업을 운영하는데 한순간에 예산이 없어지고 통보를 받는 소통의 과정이 매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C재단 관계자도 “문화다양성 사업은 지역의 색이 분명하게 담기고 그 단에서도 소수문화를 보존하고 확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갑자기 사업이 없어져버린 상황이 돼 안타깝다”며 “재고의 여지가 있으면 한 번 더 심도 있게 고려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은 “문체부뿐만 아니라 성평등 예산 삭감,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 예산 전액 삭감 등 전반적으로 소수자를 위한 정책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대화나 평가 없이 일시에 사업들이 사라지는 상황은 국가가 소수자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위해 돈을 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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