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
작은 나무를 다루는 ‘소목장세미’
조각 전공하면서 나무에 친근감
작업실에 필요한 집기 만들면서 목공 시작
잊힌 우리나라 전통 방식 시도하기도
“필요하지만, 세상에 없는 가구 만들어”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 ⓒ김민정 기자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 ⓒ김민정 기자

여성 1인 가구도 분리와 조립이 쉬운 가구를 만든다. 현대의 감각과 전통 방식을 접목해 작업하기도 한다.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가 이끄는 ‘소목장세미’는 작은 나무를 다루는 장소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유 디자이너는 9월 1일 열린 제16회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에서 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세상에 필요하지만, 없는 가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구 제작뿐만 아니라 DJ, 드래그퀸 등 단 하나의 수식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유혜미 디자이너를 만나봤다.

-10년 전 목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요.

“제가 조소과라고 조각을 전공했었거든요. 대학교 다닐 때 나무나 재질에 대해서 친근감이 있었던 상태에서 내가 쓰는 가구는 내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어요. 작업실을 얻게 되면서 필요한 집기를 만들어 보면서 목공에 발을 들이게 된 것 같아요.”

-‘소목장세미’라는 스튜디오 겸 브랜드를 이끌게 된 계기는요.

“‘소목장세미’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우리가 국가 장인 중에 ‘소목장OO’ 하면 가구 같은 세간을 다루는 장인을 뜻해요. 저는 가구를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어서 소목장세미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목가구에 대한 꿈을 키웠었는데요. 해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미래랑은 거리가 있다고 느꼈어요. 가구 같은 세간살이를 만드는 장인인 소목장이 아니라 작은 나무를 다루는 장소라고 중의적으로 바꿨습니다. 어렸을 때 집에서 쓰던 이름이 세미였어요. 아버님께 ‘저는 이 이름을 다시 갖고 오고 싶습니다’고 해서 세미라는 이름을 쓰게 됐어요.”

“다른 사람이 사용 안 하는 재질로 작업하기도”

-‘소목장세미’의 가구의 차별화된 점은요.

“목공 시작했을 때는 우리나라에 이케아도 잘 없을 때고, 무겁고 화려한 가구가 유행하던 시기였어요. 북유럽 가구도 들어오던 시기였어요. 당시에 저는 1인 가구 여성으로서 가볍고 혼자서 해체 조립이 가능하고 이사도 혼자 갈 수 있는 가구를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사용 안 하는 재질을 사용해 본다든지, 남들이 안 하는 기법을 사용해서 작업해요. 잊힌 우리나라의 전통 방식을 시도해 보는 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가 목공 작업을 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가 목공 작업을 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가구를 제작하시는 이유는요.

“1인 여성만 사용할 수 있는 가구로 제한된 건 아니었어요. 원룸 생활을 오래 하고 여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필요했던 가구를 만드는 순간부터라고 볼 수 있어요. 세상에 있으면 하는 가구를 만들다 보니까 여성 1인 가구들이 관심을 보였어요. 처음에 수요가 많지는 않았어요. 그때는 개인 주문보다 기업과 작업하거나. 전시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 상황이 괜찮아지면서 1인 가구에 맞춰진 주문 제작 가구를 더 만들었던 것 같아요.”

-가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요.

“세상에 많은 가구들이 있잖아요. 똑같이 생긴 가구 혹은 똑같은 기능을 하는 가구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무의미한 걸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대한 이 세상에 없는 이유를 찾으려고 하고요. 누군가는 필요한데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있겠죠. 그럴 때 제가 가구를 만들어 드리거나 새로운 가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요.”

“믹스 테잎 듣다 보니 자연스레 DJ 하게 돼”

- DJ, 드래그퀸 등 가구 디자이너라는 직업 이외에도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노동요가 있어야지 리듬감 있게 일할 수 있어요. 긴 분량의 음악을 엮어놓은 믹스 테잎을 듣다 보니까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생기고, DJ가 생기고, 컬렉션이 생기더라고요. 그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주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서부터 DJ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유혜미 디자이너는 약 8년 전, 또 다른 2명의 여성 음악 리스너를 만나면서 ‘왜 서울에는 여성 DJ만 만드는 파티가 없는지’ 의문을 가지면서 여성 DJ만 나오는 파티를 만들고 DJ 활동을 하게 됐다고 했다.

“‘루폴의 드레그 레이스’라는 프로그램이 미국에서 히트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잘 모르던 때였는데 그걸 봤어요. 신선하게 보이는 거예요. 컨셉에 따라 과장된 표현을 하고 아니면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으로 표현이 될 수도 있는 장르를 발견했어요.” 그는 메이크업에 대한 다른 시각이 생기면서 드래그퀸 메이크업을 하게 됐다.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가 작업실 한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가 작업실 한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기억에 남는 가구 작업은요.

“국제앰네스티하고 같이했던 전시가 있었어요. 코로나 바로 직전에 2019년에 있었던 전시인데요. 인권을 유린당한 해외의 어린 친구를 위해서 열어주는 전시였어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미니 골프 코스를 만들었어요. 친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애물을 가구 안에 표현했어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게임 하면서 친구들의 사연을 소개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서 전시회를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즐겁게 했던 작업이었어요. 여러 사람의 도움이었겠지만 그 후에 사형을 선고받았던 어린 친구가 사형에서 벗어나는 성과도 있어서 의미 깊은 작품입니다.”

“초기 작품 중 뜀틀이 대표적인 작업”

-대표적인 작업은요.

“초기 작품 중에 뜀틀이라고 있어요. 저를 잘 설명해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뜀틀 모양을 하고 있는데 펼쳐놓으면 테이블도 되고 의자도 되고 서랍도 돼요. 원룸 생활을 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 조그마한 단칸방 안에 침대, 테이블, 주방, 화장실도 필요하잖아요. 친구들 오면 벤치도 필요하고요. 가구 안에 모든 기능을 다 넣는 거죠. 뜀틀도 할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고 앉을 수도 있고요. 자원도 아끼고 좋잖아요. 제가 하는 가구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서 뜀틀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 ⓒ김민정 기자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 ⓒ김민정 기자

-소목장세미 가구는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나요.

“샵은 따로 없어요. 주문 제작이기도 하고, 샵이라는 게 유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랑은 좀 성격이 안 맞아서요. 저의 전시는 충정로역에 청년예술청이라고 있거든요. 전시하는 로비 공간이 있는데요. 제 작품을 상시로 가셔서 둘러보시고 구경하실 수 있고요. 그 외에 구입은 저에게 보통 메일을 주셔서 의뢰해 주시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작업 쪽으로 많이 하고 있긴 해요. 상업적인 가구보다는 최근에 무늬목으로 하는 작업이 재밌어서요. 무늬목은 옛날에 사라진 기법인데요. 1960~1980년대까지 성황을 이룬 목공의 한 장르예요. 나무를 아주 얇게 종잇장처럼 켜 내서 마감재로 붙일 수가 있거든요. 나무 수종도 많고, 어떻게 자르냐에 따라서 예술의 영역이 돼요. 조명도 관심 많아서 조명 기구도 만들고 여러 군데 납품도 하고 인테리어 설치도 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남들이 안 해본 영역을 계속 파내고 자꾸 잊혀 가는 것들, 중요했던 것들 우리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재미있는 요소를 파헤치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여성 후배 목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요.

“운동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초반에 작업할 때 허리가 아팠어요. 당시에 허리가 왜 아픈지를 몰랐던 거예요. 등 근육이 발달 안 돼서 허리를 접거나, 허리에 무리한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고요. 손목도 마찬가지였어요. 나중에는 스트레칭부터 운동하는 방법까지 하게 되니까 거의 안 아프거든요. 목공은 평생 직업이어서 할머니 돼도 기력만 남아 있으면 할 수 있는 장르에요. 몸 관리만 한다면 그 뒤로는 걱정할 게 없어요. 몸 관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는?
유혜미 디자이너는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소목장세미’를 열었다. 그는 국제앰네스티 전시 총괄 디렉팅, 청년예술청 sapy 영구 전시 ‘activity lounge’ 기획, 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 2022 전시 참여, 서울역284 ‘오늘전통 뉴스로 페스티벌’ 플레이존 전시 디렉팅 등 다양한 작업을 펼쳐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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